다중 결합에 최적화 된 원소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에 대해 탐구해 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철학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리즈입니다.
※ 이번 편은 과학적 설명이 다소 들어가 있어, 천천히 읽어주시기를 권장드립니다. 천천히 따라와 주시다 보면 쉬운 내용입니다 :)
빅뱅과 초신성 폭발이라는 초고압, 초고온의 환경에서 우라늄까지 어렵게 태어난 원자들은 이후 또 한 번 새로운 무대를 준비했다.
과거의 극한 환경과는 달리, 이번 무대는 비교적 온화했다. 일단 한번 만들어진 원자들은, 고작 수백 도에서 수천 도 정도의 열기와 적당한 압력만 가해지면 서로 손 잡고 광범위한 결합을 시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중에서 원소번호 6번. 양성자, 중성자, 전자 모두 6개씩을 가진 특별한 존재, '탄소'의 특별함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 한다. 탄소를 정확하게 이해해야만 인간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한 번은 본듯한 원소 주기율표, 그런데 한 번쯤 여기서 의문을 가져본 적은 없었을까?
왜 첫번째 줄에는 원자를 달랑 2개만 표시하고, 1번 H와 2번 He 사이를 저렇게 크게 태평양처럼 넓은 공란으로 놔두었을까?
또, 왜 두번째 줄 4번 베릴륨과 5번 붕소 사이, 세번째 줄 12번 마그네슘과 13번 알루미늄 사이는 텅 비어있을까?
줄을 나누어 써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원자들이 속해 있는 줄마다. '전자의 위치'에서 차이가 난다.
아래 그림으로 보면 이해가 비교적 쉬운데, 모든 '전자'는 원자핵과 가까운 1층(1주기)에서 최대 2개까지만 위치할 수 있고, 2개일 때 가장 안정적이게 된다.
그런데 전자가 2개를 넘어서 3개가 되는 순간부터, 3번째 전자는 1층(1주기)에 더이상 들어갈 수 없고 2층(2주기) 위치로 가버린다(2주기에서는 전자가 8개일 때 가장 안정적).
마치 서울 주변 제1순환고속도로에서는 경찰차 2대까지만 달릴 수 있고, 제2순환고속도로에서는 경찰차 8대까지 달릴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제1순환고속도로에서 경찰차가 1대만 보이면 서울 사람들이 치안을 불안해하고 2대까지를 가장 적정하게 느낀다. 3대가 있으면 너무 시끄럽다고 한대를 제2순환고속도로로 보내버린다.
1층 방에는 싱글 침대 2개밖에 놓을 공간이 없어서, 커플 두 명이 먼저 방을 차지해 버리면 세 번째 손님은 자연스럽게 2층 더 넓은 공간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경찰차나 침대가 아니라, 각 층마다 전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숫자가 제한되어 있다. 중심 원자핵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허용된 음의 에너지량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자 개수가 1개, 2개뿐이라서 1층에서만 출현하는 수소와 헬륨을 1주기(1층) 원소라고 부르고, 주기율표 맨 윗줄 1행에 표시한다.
전자가 2층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3번 리튬(전자 3개)부터 10번 네온까지의 2주기 원소들은 두 번째 줄에 표시한다(3주기 원소는 11~18번, 4주기 원소는 19~36번).
1주기 원소는 전자 2개가 아니면 불안정해서 다른 원소와 결합해 2개를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전자가 1개인 수소는 보통 혼자가 아니라 H2, 전자 2개를 가진 분자 형태로 존재하기를 좋아한다.
반면, 전자가 원래 2개인 헬륨은 다른 원소와 굳이 결합하지 않고도 헬륨 자체로 안정적이고 독립적이게 된다. 다른 물질과 잘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아웃사이더 비활성기체가 된다.
마찬가지로 리튬에서 네온까지의 2주기 원소들은 2주기 위치의 전자가 8개가 아니면 불안정해서 다른 원소와 결합해 8개를 채우려고 하거나(네온은 이미 8개 완성. 비활성원소!), 아니면 전자를 잃어버리고 전자 2개만 가지는 1주기 성질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8이라는 숫자다. 제2순환고속도로에 경찰차가 8대가 되어야 서울 사람들이 안심한다.
이제 탄소를 보자.
6번 탄소는 전자가 총 6개니까, 그중 2개가 먼저 1주기에서 나타나고, 나머지 4개는 2주기 위치에서 나타나게 된다.
반면 같은 2주기 원소인 리튬(원소 기호 3번, 2주기 전자 1개)은 전자 7개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전자 1개를 과감히 버리고 가벼운 몸으로 양이온이 되기를 선택한다. 리튬 입장에서도 그게 더 쉽고 간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주 듣는 리튬 이온이다.
산소(원소 기호 8번, 2주기 전자 6개)는 전자 2개를 더 끌어들여 음이온이 되거나, 수소 2개와 결합하며 전자 2개를 공유해 8개를 채워 우리에게 친숙한 H2O를 흔하게 이룬다.
그러나 탄소는 8개의 절반인 4개 그 중간에서, 전자를 잃지도 않고 받지도 않은 채, 네 개의 빈방을 열어 서로의 전자들을 공유하며 관계를 만든다(물론 탄소는 2주기 전자의 숫자가 4인 덕분에 다른 원소와 놀지 않고 자기들끼리 단단하게 뭉쳐 숫자 8을 만들기도 용이하다. 그래서 온도와 압력에 따라 어떤 것은 연필심이 되고 어떤 것은 다이아몬드가 된다.).
이 유연함 덕분에 탄소는 지구상의 분자 무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연이 되었다. 전자 2개가 부족한 산소 2개와 쉽게 손잡아 CO2 이산화탄소가 되고, 전자 하나를 가진 수소 4개와 결합해서는 우리가 겨울에 난방 연료로 활용하는 천연가스 CH4가 되었으며, 포도당 C6H12O6은 주요 탄수화물로서 초콜릿처럼 우리의 에너지로 쓰인 후, 우리의 뱃살 중성지방 C55H98O6으로 축적된다.
심지어 탄소는 무려 9284개의 원자가 결합된 거대한 유기분자, C2952H4664N812O844S8Fe4, 피의 성분인 헤모글로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렇게 탄소는 각기 다른 원자들을 뭉쳐 복잡한 화합물을 만드는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복잡한 화합물 분자식에는 무조건 C가 들어있었다. 원자들의 복잡하고 무궁무진한 결합의 경우의 수, 바로 유기물(有機物, Organic compound)이라는 뜻의 정의 자체가 된 것이다.
네 개의 빈 방을 가진 집주인이었을 뿐이었던 탄소. 그러면 그 빈방에 들어온 손님들은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꿔 나갔을까...
우리가 위기가 있을 땐 우리 편끼리 단결하지만, 평상시엔 이방인들과 개방적으로 교류하기도 하는 것은 혹시 우리 몸속에 가지고 있는 탄소를 닮아서인 것은 아닐까...
다음 편에서 이야기를 더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