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유기화합물의 수상한 움직임

물방울, 유기물, 사람 - 수동성과 능동성 사이

by 공상과학철학자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에 대해 탐구해 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철학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리즈입니다.


손을 씻기 위해 수도꼭지에 물을 틀어놓으면 가끔 신기한 생각이 든다. 세면대 위에 튄 물방울은 왜 그리 동그랗게 모여 있을까? 마치 세면대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몸을 동그랗게 말아 움츠린 듯하다.


종이 빨대가 한창 장려되던 시절, 아이스 아메리카노 안에 꽂아 놓으면 어느새 빨대 윗부분이 스멀스멀 젖어버린다. 물이 중력을 거슬러 거꾸로 올라가는 것이다. 물은 마치 고양이처럼, 좁고 긴 공간을 좋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생물과 무생물을 나누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능동적으로 반응하느냐 수동적으로 반응하느냐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동그랗게 모이거나 위로 올라가는 물 분자의 특성은 완전하게 수동적인 것일까? 관점에 따라서는 물 분자가 표면 장력을 유지하고 모세관 현상을 선호하는 능동적인 특성을 가졌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물분자 H2O가 다른 원자, 분자들과 결합해 구조물을 제대로 못 만드는 동안, 탄소는 지난 글에서처럼 다른 분자들과 상호작용하며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유기분자들을 만들어 냈다. 지금까지 사람이 특정한 것만 1억 6천만 가지 종류가 넘는다고 하며, 이론적인 조합은 수천조, 수천경 이상도 가능하다.


이 탄소의 친화력은 지구뿐만이 아니라 범 우주적인데, 지구에 떨어지는 운석이나 혜성의 꼬리, 토성의 대기, 저 멀리 떨어진 은하의 구름에서도 나프탈렌, 포름알데히드, 메탄올, 에탄올, 아세톤, 그리고 글리신 등의 탄소 유기물은 무수히 검출된다.


그리고 물이 표면장력과 모세관현상의 특성을 가지는 것처럼, 이 탄소 유기물들 역시 당연하게도 모두 제각각 각자의 특성을 가졌다. 그 유기물 중 하나는 아미노산이었다. 약국에서 팔리는 근육 강화제, 바로 그 아미노산이다.


우주에서 발견된 글리신도 아미노산이지만, 여기서는 '포스파티딜-세린'이라는 아미노산 화합물에 주목해 보자(Phosphatidyl serine, 이름이 왜 이렇게 어렵냐고 약사에게 따지면 곤란하다).


포스파티딜-세린의 대표적인 분자 구조는 C42H82NO10P 인데, 이 유기화합물은 표면장력과 모세관 현상을 일으키는 물과는 달리, 아주 특이한 성질을 가진다.


단단히 결합된 이 화합물은 신기하게도 물을 싫어하면서도 좋아한다.


머리 쪽(세린)은 친수성이라 물 쪽으로 끌리고, 인(P)으로 연결된 꼬리 쪽은 지방산이라 반대로 물을 밀어내는 특성이 있다. 분자 구조일 뿐인데 한 쪽으로는 물로 가고 반대 쪽에선 물을 밀어내는 것이다.


특정 원자들이 풍부히 존재하고, 적당한 열과 압력이 있는 환경이라면 동일한 유기화합물은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 포스파티딜-세린이 바닷물 속 특정 공간에서 한꺼번에 많이 생겨났다면 어떤 모양을 이루었을까?


과학자들은 실제로 이 분자 가루를 물속에 넣어봤다. 그랬더니 이들은 물 안에서 동그랗게 뭉쳐지며, 물을 머금은 동그란 구의 형태들로 저절로 나타났다. 인(P)지(기름)질의 얇은 막, 인지질 소포(小胞, 작은 막)이다. 물 쪽으로 끌리는 세린들은 안팎의 바닷물과 맞닿고, 지방산들은 일종의 막을 형성한 모습이다.


핵이 없는 세포랑 비슷하게 생긴 것 같기도 한데, 아직 놀랄 일은 아니다. 이것은 안에 바닷물, 무기물, CO2, 일부 아미노산들을 채우고 있는 가라앉은 물놀이 공하고 비슷한 상태일 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원시 바다와 대기가 무척 변화무쌍한 환경이었다는 점이었다. 원시 바다의 깊은 곳에서는 맨틀의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열수구들이 풍부했다. 하늘에서는 번개가 쉼 없이 내리쳐 유기물들의 화합을 촉진했다. 바닷물이 해류와 파도로 서로 부딪히면서 마이크로 라이트닝이 발생했고, 유기물이 풍부한 운석도 지구로 수시로 떨어졌다. 이들은 모두 분자들이 결합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미노산들이 여러 개씩 이어져 길고 뾰족한 '펩타이드(Peptide)'라는 것도 만들어졌다.


바닷물 등을 안에 머금은 인지질 소포들 중에서는 그 내부에 펩타이드를 품는 것들도 생겨났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마치 헤엄치듯이 다른 인지질 소포 쪽을 향해 다가갔다. 펩타이드들이 양전하(+)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인지질을 만든 포스파티딜세린은 음전하(-)를 띈 화학적 현상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충격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펩타이드(+)가 자기 인지질을 뚫고 나와 다른 인지질 소포(-)에 척 달라붙어서 구멍을 내고 천천히 내용물을 빨아들여 자기화시켰다. 대략 39억 년 전쯤의 일이었다.


다시 질문해보고 싶다. 펩타이드를 가진 인지질 소포가 다른 인지질 소포로 이동해 구멍을 내고 내용물을 빨아들이는 특성은 완전히 수동적인 것일까? 관점에 따라서는 다른 인지질 소포를 탐지해 이동하고 잡아먹는 능동적인 특성을 가졌다고도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수동 반응은 어디까지이고 능동 반응은 어디서부터일까?


물이 동그랗게 모이고 좁고 긴 곳을 좋아하는 것은, 식물이 물을 빨아들이는 것은, 나뭇잎이 햇빛 쪽으로 향하는 것은, 사자가 사슴을 발견하고 쫓아가는 것은, 우리가 운동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보게 되는 것은?


물론 특정한 기준을 세운다면 에너지 대사의 수동성과 능동성은 어느 정도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심해 열수구가 활발했고 바닷물 안팎에서 번개가 수시로 일어나던 원시 지구는 한 편의 거대한 화학 실험장이었고, 탄소 유기화합물은 점점 복잡, 다양해지고 기능이 많아져 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수동성과 능동성의 경계는 차츰 모호해져 갔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아직도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펩타이드를 가진 인지질 소포처럼 강력한 유기분자도 환경이 바뀌는 순간 터져버리고 나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와 같은 특성이 일정하게 유지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탄소 유기화합물들에 또 다른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짐작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해 보자.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면 당신의 눈이 스르르 감길 수도 있고, 이 글을 적는 나는 당신이 눈 감은 게 수동적인 반응인지 능동적인 반응인지 고민해 봐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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