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년을 준비해 온 지구 생명

자신을 복제하는 리보자임 이야기. 그리고 루카까지

by 공상과학철학자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에 대해 탐구해 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철학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리즈입니다.


어떤 날에는 몸이 2개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일하는 나, 가족을 신경 쓰는 나, 글 쓰는 나, 노는 나, 쉬는 나... 그러고 보니 몸이 2개로는 부족하구나!


지난 글에서는 탄소화합물이 화학반응을 통해 인지질 소포를 만들 수 있고, 펩타이드라는 것을 만들어 다른 인지질 소포에 구멍을 뚫어 자기 물질화 할 수도 있음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그 탄소화합물의 다른 반응에 대한 이야기다.


크놉스, C H N O P S.

탄소, 수소, 질소, 산소, 인, 황 - 원시지구에 비교적 풍부했던 원자들이다.


화학실험장 같던 원시지구는 수억, 수조 가지의 탄소 유기화합물을 만들어 내는데, 위 풍부한 크놉스 원자들 덕택에 다음의 분자들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이름을 외울 필요는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흔한 원소 CHNOP의 조합이라는 것만 보자.).


A 아데닌 : C10H14N5O7P

U 우라실 : C9H14N3O9P

G 구아닌 : C10H14N5O8P

C 사이토신 : C9H14N3O8P


이 네 가지 분자들을 총칭해 '뉴클레오타이드(Nucleotide)'라고 하는데, 특별한 기능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화학적으로 서로 들러붙는 성질이 있었다. 주로 A와 U끼리, G와 C끼리, 그리고 가끔 U와 G끼리.


그래서 인지질 소포 안으로 들어간 뉴클레오타이드들은 자연스럽게 결합을 형성했다. 바로 아래처럼.


그런데 계속 길게 붙기 어려워진 뉴클레오타이드들은, 옆으로 붙는 것들도 생겨났다. 마치 수많은 자석들이 좁은 공간에 중구난방 어질러져 있으면 보통은 길게 붙지만 그중에는 옆으로 붙는 것들도 생기듯이 말이다. 길게 붙은 자석은 결합이 강력하고, 옆으로 붙은 자석은 비교적 결합이 느슨하게 된다. 바로 이렇게.


이렇게 처음에 붙은 뉴클레오타이드 결합에 옆으로 붙은 결합을 상보 결합이라고 한다.


이렇게 퍼즐 맞추기를 계속하던 뉴클레오타이드들은 인지질 소포의 과부하를 이기지 못하고서는 마침내 둘로 쪼개진다. 나도 못하는 몸 2개 만들기를 이 친구는 해낸 것이다.


이렇게 인지질 소포 안에 뉴클레오타이드 배열을 가지고 끊임없이 퍼즐 맞추기와 분열을 하던 존재. 과학자들은 이를 '리보자임(Ribozyme)'이라고 부른다. 지구상에서 최초로 자신을 복제하던 탄소 유기 복합체 리보자임, RNA 복제 메커니즘의 시초가 된 것이었다.


이후 이 리보자임들 중 정교하게 퍼즐이 맞춰져 구조가 단단한 것들은 계속 복제되며 살아남아서 수가 늘어났고, 바닷속 CO2를 흡수해 몸 안에 탄소 조직을 축적하며 기능이 고도화된 개체들은 더 많이 살아남고 더 자주 복제됐다.


생명의 필수 원소 크놉스(CHNOPS)의 끊임없는 결합과 화학반응들이 개체 구분성(인지질막), 자가복제(리보자임), 에너지대사(탄소 축적)의 기능을 모두 갖추게 만든 것이었다.


오래전 이런 기능들을 갖추게 된 최초의 유기화합물을 과학자들은 '루카(LUCA)'라고 부른다. 대략 38억 년 전쯤의 일이었다.

LUCA 상상도


138억 년 전 빅뱅에서 38억 년 전 루카까지 약 100억 년에 걸친 결합의 역사.


빅뱅에서 출발해 점입자인 쿼크와 전자가 원자를 만들고, 원자는 다시 분자로 결합하고, 이 중 탄소를 중심으로 분자들이 셀 수 없는 유기물을 만들어 내고, 이 유기물들이 각 개체로 구분되어, 에너지 대사를 하고 자가 복제까지 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 그리고 장장 100억 년의 산물이었던 루카.


이는 사실 매우 자연스러운 결합 과정이었지만, 이렇게 된 배경에 중력, 핵력 등 우주 힘 크기의 정교한 세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한편으로는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위 LUCA의 풀 네임은 바로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 모든 지구 생명체들의 마지막 공통 조상이라는 뜻이다. 만약 신이 생명을 창조했다면, 생명의 기본 재료들이 점입자로 쏟아져 나와 결합하기 시작했던, 바로 빅뱅이 일어난 그 순간부터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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