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우리 모습의 거울

권력에 다가서려는 치열한 수 읽기

by 공상과학철학자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에 대해 탐구해 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철학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리즈입니다.


700만 년 전.

미아키스의 후손 한 마리가 힘겹게 빗속의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다리가 약했고, 숨결은 가늘었다.

며칠을 굶은 끝에 마지막 남은 힘까지 쥐어짜며 토끼를 쫓았다.

하지만 결국 젖은 땅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였다.

검은 털로 뒤덮인 무리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들은 서로에게 손짓을 보내며 쓰러진 녀석의 몸을 둘러싸고 살폈다. 낮은 웃음, 반짝이는 눈빛, 그리고 들쳐메는 어깨. 그 무리들은 사냥감을 어깨에 메고 느릿하게 거처로 향했다.


멀리 나무 위에서 같은 동족 무리가 그 장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중 한 녀석이 익은 과일을 베어 물며, 이렇게 생각했다.


'여우 맛있나? 난 무화과가 좋은데.'


그로부터 수백만 년이 흘렀다.

검은 털의 후손들은 여전히 옹기종기 집단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그 집단 안에는 「제임스」, 「알랭」, 「프레디」, 그리고 「마를린」도 있었다.


50 남짓의 소규모 사회.

새벽빛이 번지자, 젊은 알랭은 밖에서 들려오는 제임스의 시끄러운 목소리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자, 오늘도 힘차게 과일을 따러 갑시다! 기상 기상!"


이렇게 소리치는 듯 들렸다.


알랭은 생각했다.


'저 늙은이 제임스는 힘도 없는데 왜 저렇게 대장 행세를 하지? 내가 더 빠르고 강한데, 왜 모두가 그를 따르지?'


밤이 깊고 달빛이 희미한 어느 날, 알랭은 기회를 잡았다.

제임스의 거처를 기습하는 데 성공해, 넘어뜨리고서는 얼굴을 심하게 공격했다.

마침내 제임스가 고개를 떨구고 항복의 신음을 내뱉자, 알랭은 만족스러운 듯 천천히 숨을 돌렸다.


그날부터 알랭은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다.

그는 말 안 듣는 친구들을 힘으로 눌렀고, 마를린을 비롯한 많은 이성 친구들을 독점하려 시도했다.

알랭은 건강한 또래 프레디가 은근히 신경 쓰였지만, 그날 아침에도 프레디는 생각보다 순순히 머리를 숙이고 충성스러운 태도를 보여줬다.


오후가 되어, 프레디가 과일을 따면서 은밀히 소통한 대상은 다름 아닌 제임스였다.

그리고 해가 자취를 감추고 저녁이 되자, 프레디는 여러 친구들을 모아 알랭을 급습했다. 그동안 억눌린 분노와 원망이 한꺼번에 폭발하며, 알랭은 무자비하게 구타당했다.


결국, 제임스가 다시 수장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이미 늙고 힘을 잃은 그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프레디는 제임스와 이렇게 될 상황에 대해서 미리 소통했던 것일까?

모든 실질적인 권력은 프레디가 쥐게 되었다. 프레디는 알랭의 몰락을 교훈 삼아, 채찍 일변도가 아닌 당근도 함께 쓰는 전략을 취했다. 친구들과의 유대와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심하게 상처 입은 알랭의 곁으로 여자친구 마를린이 다가왔다.

그녀는 조용히 알랭의 몸을 감싸 안으며 한동안 말없이 위로했다.

서러운 처지 때문이었을까 마를린의 포근함 때문이었을까?

알랭에게서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마를린도 같이 얼싸안고 흐느꼈다.


그리고 그날 밤,

마를린은 알랭이 아닌 프레디와 생애 가장 격정적인 밤을 보냈다.


며칠 뒤, 알랭은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자 나무에 올라가 석양의 노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슬픔과 후회, 그리고 알 수 없는 씁쓸한 평온이 담겨 있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동물학자 '프란스 드 발'이 장장 20년 동안 침팬지들의 실제 생활을 관찰하며 기록한 1982년의 충격적인 명저 『침팬지 폴리틱스』를 살짝 각색한 이야기다.

약간의 의인화가 더해지긴 했지만, 독재자의 등장, 권모술수, 거짓 충성, 세력의 연합, 암침팬지의 복잡한 정치적 선택 등은 모두 실제 관찰된 사실이다.


인간 사회의 정치는 어떨까?

학교 교실에서도, 사무실 한 귀퉁이에서도, 국회의사당에서도 침팬지와 비슷한 행태는 이루어지고 있다.

집단 속에서 펼쳐지는 고도의 정치적 심리전은 결코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회, 정치 외 다른 특성들은 어떨까? 인간을 규정하려 시도하는 여러 가지 정의들을 침팬지에게도 대입해 보자.



[침팬지가 할 수 있는 것들]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동물): 자아 인식, 타인 시선 의식, 문제 해결, 미래 예측

✔️호모 파베르(도구의 동물):

⊙나무껍질을 개미집에 넣어 개미가 많이 달라붙도록 한 뒤 잡아먹음

⊙돌로 호두 등 견과류를 정교하게 깨서 먹음

⊙나뭇잎을 갈아 스펀지를 만들어 나무나 바위 틈의 물을 흡수해서 마심

⊙넓은 잎사귀를 접어 부채를 만들어 벌레를 쫓음

⊙원숭이를 사냥할 때 뾰족한 나뭇가지로 찌름

✔️호모 루덴스(유희의 동물): 물 뿌리는 장난을 즐기고, 서로 쫓고 달리며 몰래 숨기

✔️호모 로퀜스(언어의 동물): 소리와 몸짓, 표정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인간 수화를 100개 이상 배워 사용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동물): 음식을 얻기 위해 털을 골라주는 재화와 용역의 교환

✔️호모 아에스테티쿠스(미를 추구하는 동물): 화려한 물건과 신체 장식을 선호하며, 사람이 음악을 틀어주면 리듬에 맞춰 춤을 춤



구사하는 수준의 차이일 뿐, 침팬지는 우리 사람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여러 가지 행동들을 많이도 해내고 있었다. 우리는 어쩌면 그들과 같은 무엇인가의 기원을 공유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침팬지와 또 다른 영장류 한 무리를 살펴볼 차례다. 석양을 바라보던 알랭의 시선 너머 화려한 불빛 속 또 다른 영장류, 그 무리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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