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과학이 말하는 쇼펜하우어의 비관주의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에 대해 탐구해 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철학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리즈입니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것이 강하다."
이 말은 힘든 우리 일상 속에서도 잘 한 번 버텨내 보자는 위로의 격언이지만, 지구 생명의 모든 변천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도 정확하게 들어맞는 말이다.
조금씩 다르게 태어난 생명 중, 환경에 적합하게 태어난 개체가 살아남았고, 번식에 성공했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나비도, 나도 당신도 조금 부족한 것이 있을지라도, 각자 살아가는 환경에 가장 적합한 유전자들의 누적 결과물이다.
이는 모두 38억 년 전 루카로부터 이어져 온 가장 핵심적인 유전자의 특성 때문이다.
'생존'과 '번식'.
이 두 가지는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가 추구하는 지향점이며, 인간의 유전자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인간의 유전자는 이를 위해 특히 '뇌'를 발달시켰다. 유인원, 까마귀, 돌고래, 코끼리, 개, 고양이, 돼지도 머리가 좋지만, 뇌가 신체 질량의 단 2%만 차지하면서 에너지의 20%씩이나 소비하는 종은 인간밖에 없다.
인간은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많아졌고, 이를 통해 충분한 에너지가 뇌로 공급될 수 있었으며, 이족보행으로 손을 자유롭게 쓰게 되면서 뇌의 발달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오래 달리기 빼고는 신체적인 이점이 별로 없었던 인류는 더 똑똑하게 태어나 고도화된 사고를 할 수 있었던 개체들이 많이 살아남았고 더 많이 번식했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던 똑똑한 뇌는 대를 거듭해 올수록 더욱 발달해 왔다.
뇌는 감각기관(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을 통해 정보를 인식하고, 이것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때로는 본능적으로, 때로는 복합적으로 수시로 계산했다.
뇌는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세로토닌을 분비시켜 기분을 좋게 했고,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코르티솔을 분비시켜 정신 차리게 각성시켰다.
그리고 유리한 결과를 얻었을 때 도파민을 분비시켜 반복 행동하도록 만들었고, 불리한 결과를 마주했을 때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켜 피하도록 만들었다.
찰스 다윈 이전, 소크라테스, 플라톤, 토마스아퀴나스, 데카르트, 루소, 칸트, 헤겔과 같은 철학자들이 씨름하면서 고민했던, 인간의 '영혼', '정신', '이성'과 같은 실체를 현대 과학자들은 다름 아닌, 뇌의 '생존, 번식 사고 작용'으로 본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문제가 발생했다.
첫째, 뇌가 발달하다 보니 오감뿐만이 아니라, 눈을 감고 머릿속에서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가면서까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물론 생존에 유리했지만, 부작용을 꼽자면 생존과 번식에 치명적이지는 않은 상황에서도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과거 먹고 자고, 이성친구를 찾고, 협동하고, 쫓고 쫓기던 단순한 자연환경의 생활방식과 비교해 삶이 너무 복잡해졌다. 각종 사회 제도, 문화, 교육의 홍수 속에서 주입되는 정보량이 너무 많아졌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속에서, 생존과 번식에 불리하다 판단되면 뇌에서 나오는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 이것이 바로 현대인이 지금 이 순간 겪고 있는 정신 문제의 근원이다.
여기에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뇌는 일반적으로 유리하게 판단하는 경향보다 불리하게 판단하려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불리하게 판단하는 쪽이 생존 확률을 훨씬 높였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기 이전, 1만 년 전 우리 조상들의 삶을 상상해 보자.
날씨는 수시로 변해 추위, 폭염, 홍수, 가뭄, 화산에 늘 긴장하며 대비했고, 다른 무리들과의 피 흘리는 영역 다툼에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맹수와 독충과 뱀을 언제나 조심해야 했다.
그리고 이따금 먹이를 발견하고 먹게 되었을 때, 온화한 날씨 아래서 잠시 휴식을 취할 때, 동료들과 몸과 마음의 교감을 나눌 때 아주 잠깐 행복했다가, 다시 긴장과 경계 모드에 돌입해야 했다.
행복을 빨리 잊어버리고, 다시 긴장해야만 엄혹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현재의 인간 유전자도 거의 다르지 않다. 기본값 세팅은 걱정과 불안이며, 행복은 빠르게 잊힌다. (쇼펜하우어의 말이 이 대목에서 옳았다.)
행복을 추구하지만 마음이 어딘가 항상 공허한 당신...
이것은 당신의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그리고 당신만의 문제도 아니다.
사람이 느끼는 불안, 우울함, 공황을 흔히들 뇌의 오작동으로 오해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인 진화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직전 화에서 사람은 기술문명을 발달시켜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많이 충족해 왔지만, 일부 유전자들은 빠른 기술문명을 따라오지 못해 신체적인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음을 살펴본 바 있다.
현대 인류의 정신적인 문제들은 크게 두 가지 상황에서 뇌가 불리하다고 판단함으로써 나타난다.
첫째, 환경이 인간의 생존, 번식 욕구를 충족하지 못할 때이다. 전쟁, 가난한 독재국가, 사회적 소외계층 등과 같은 상황에서 기본적인 욕구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거나, 못할 것으로 우려될 때이다.
둘째, 기술문명을 지키기 위한 사회 공동체의 제도, 규칙, 문화, 교육이 인간 개인의 생존, 번식 본능과 충돌할 때 나타난다.
세계 경제규모 10위권의 대한민국.
대부분의 국민은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생존 욕구를 충족하며 살아간다. 노숙자라도 굶어 죽지는 않는 사회이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정신적인 문제는, 생존의 위협 그 자체보다는 대개 두 번째 원인, 곧 사회가 우리의 생존·번식 본능과 충돌할 때 나타난다.
그런데 단지 그 본능과 조금 어긋났다고,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흔들릴 수 있는 걸까? 다음 편부터 그 속사정을 하나씩 들여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