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대, 당신의 잘못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에 대해 탐구해 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철학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리즈입니다.
지난 회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돌아온 우리, 제일 먼저 유전자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우리 몸의 DNA는 23쌍, 46개의 염색체로 이루어져 있고, 여기에 2만 가지 이상의 유전자 정보가 실려있다. 이 유전자들은 조합에 따라 각기 다른 사람들을 만들어 낸다.
이 유전자들 중에서는 절대 변하지 않는 유전자, 천천히 변하는 유전자, 비교적 빨리 변하는 유전자들이 있다. 대체로 생명의 계통에서 오래전에 형성된 특성일수록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예를 들어 38억 년 전 루카는 생존과 번식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현재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변하지 않는 유전자이다.
반면 그 이후에 형성된 내장기관, 팔다리, 손발의 구조 같은 것은 서서히 변화한다. 박쥐의 앞다리가 날개로 변화한 것, 고래의 다리가 퇴화된 것이 그런 예이다.
그리고 비교적 빨리 변하는 유전자들도 있다. 도시의 공장과 매연이 증가하자 검은색 나방만 살아남아 차츰 주류를 이루게 된 것, 인위적 개입으로 먹기 좋은 품종의 식물들이 번성하는 것이 그렇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환경의 변화에 비교적 빨리 따라오는 유전자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유전자들이 대부분이다.
공상과학철학자는 평소에 달리기를 꾸준히 하는 편이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10km씩 뛰고, 가끔 대회에도 참여하며, 25년 2월에는 썩 좋은 기록은 아니지만 네 시간 반 만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적도 있다.
달리기를 하고 나면 상쾌하고 뿌듯한 마음이 든다. 문제는, 달리기를 며칠만 안 해도 바로 몸에서 부정적인 신호가 온다는 것이다. 몸이 왜인지 개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체중이 슬슬 불기 시작한다. 마치 달리기를 하지 않는 몸은 고장이라도 나기 시작하는 것처럼.
많은 현대인이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막상 하자고 하면 귀찮고, 게으르게 지내다 보면 몸이 나빠지는 느낌을 받곤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정상을 유지할 수 있는 걸까? 몸이 편하게 좀 지내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가 따져봐야 할 사실이 있다. 유전자가 대를 이어 환경에 적응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1만 년 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우리는 아직 농사를 시작하기 전 무리 지어 사냥하고 과일을 채집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 후 1만 년간 인간의 삶은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한 세대를 25년으로 잡는다면 불과 400세대 만에 이런 변화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리 몸의 유전자는 지금도 여전히 수렵채집인의 몸에 머물러 있다.
현대로 가까워 올수록 문명 변화의 속도는 유전자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더욱 가파르다. 100년 전, 아니 10년 전의 세상과 현재만 비교해 봐도 무척 다르듯이.
심지어 인류는 약자와도 같이 동행하려는 의지가 있어 왔다. 오랜 유골 중 하나는 팔이 잘린 사람이었지만, 오랫동안 주변의 보호를 받으며 생존했던 흔적이 있다. 즉, 환경에 부적합한 개체는 도태되어 번식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법칙이 인류에게는 그다지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추운 환경은 추위에 약한 인간 유전자를 도태시키지도 못했다. 사람들은 옷을 지어 입고 불을 피우고 동굴로 들어가 유전자의 변화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환경에 적응해왔다.
이렇게 인류 유전자의 변화는 다른 생명체보다 더더욱 느려왔다.
이 '구형 유전자'가 '최신 문명'이라는 새로운 운영체제 위에서 작동하려니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몸은 하루 종일 사냥감을 쫓고 먼 거리를 이동해 가며 나무의 과일을 따도록 설계되었다. 털이 없고 모공이 발달한 인간의 피부는 땀을 잘 흘려 체온을 효율적으로 낮추면서, 그 어떤 동물보다도 오래 달리기를 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심지어는 운동 등을 통해 몸을 격렬히 움직이는 활동을 하게 되면 쾌감을 느끼는 도파민이 분출된다. 몸을 움직이면 쾌감을 느끼는 개체가 그렇지 않은 개체보다 훨씬 더 먹이 획득에 유리했고, 운동하고 잘 먹으니 건강해졌고, 이성친구를 찾아 후손을 남기기에도 유리했다.
즉, 우리 몸은 움직임 자체를 보상받도록 설계된 셈이다.
그러나 몸을 움직이지 않는 신체는 혈액순환이 안되고, 근육과 뼈가 쪼그라들고, 먹을 것을 못 찾고,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페널티를 받아 왔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법한데, 우리 몸은 안타깝게도 과거처럼 계속 움직여야 적합하게끔 되어 있다.
대대로 식량 부족에 시달려 왔던 인류는 먹을 기회가 있을 때 무조건 최대한 많이 먹어두고, 섭취한 칼로리를 최대한 많이 지방으로 저장하려 하는 특성이 있다.
과거에는 생존에 필수적인 메커니즘이었지만, 먹을거리가 어디서든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는(특히 한국에서는) 이것이 바로 과체중으로 직결된다는 것이 문제다.
편의점은 집에서 가깝고, 당장 냉장고 문을 열어봐도 먹을 것이 가득하다. 먹을 기회가 있을 때 수시로 먹고, 이를 지방으로 축적하려는 습성, 꼭 당신만의 의지박약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먹을 기회가 있을 때 많이 먹어두었던 인류는 먹을 것이 떨어지면 한동안 굶고 지내는 날들도 길었다.
먹지 않는 상태에도 우리 유전자는 적응했을까?
과학자들은 ‘간헐적 단식’이 건강에 놀라운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 몸은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일종의 청소 모드에 들어가 낡은 세포 구성 요소를 스스로 분해하고 재활용하는 ‘자가포식(autophagy)’ 기능을 활성화한다.
이는 수십만 년 동안 음식이 부족할 때마다 작동해 온 자연스러운 생존 메커니즘이다.
이 자가포식은 단순한 체중 감량뿐만 아니라 염증 감소, 세포 노화 억제, 장기 건강 유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먹을 기회가 있을 때는 먹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한동안 먹지 않고 지내는 것 또한 아주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이 자가포식 현상은 일본의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가 연구해 2016년 노벨상을 받은 주제이기도 하다.
과거 유전자 입장에서 보자면, 늘 먹고 있는 현대사회야말로 무척 적응하기 어렵다고 느낄지 모른다.
과거 인류는 아기 때 모유를 먹다가, 이가 자라고 다른 것을 먹을 수 있게 되면 유당분해 효소가 사라지고 더 이상 우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대략 1만 년 전 목축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반전이 생겼다. 항상 먹을 것이 부족했던 인류는 소 젖을 시험 삼아 먹어봤는데, 운 좋게 성인이 되어도 유당분해 효소가 사라지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고, 그 유전자는 후대로 퍼졌다.
그래서 현재도 목축업이 발달한 북유럽에서는 90% 이상의 성인이 유당분해 효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목축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문화권에서는 유당분해 효소를 가진 인구 비율이 급격히 낮다. 한, 중, 일 동아시아 사람들이 유당분해 효소를 가진 비율은 10% 대에 불과하다(물론 점차 비율이 늘어나는 중).
수렵채집 시절, 작은 상처에도 치명적이었던 우리 몸은 혈액을 빠르게 응고시키는 메커니즘을 발달시켰다. 이는 출혈 시 생명을 구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또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혈액이 잘 뭉치도록 하여 부상 시 대처 능력을 높였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만성적인 스트레스, 고지방 식단, 운동 부족이 겹치면서 이러한 '지나친 혈소판 생성'은 동맥경화나 혈전 형성으로 이어져 심근경색, 뇌졸중 등 치명적인 심혈관 질환의 주범이 된다.
과거의 생존 전략이 현대에는 우리를 위협하는 칼날이 된 셈이다.
그 밖에도 에디슨의 전구에 적응하기에 100여 년은 턱없이 부족한 우리의 수면 패턴, 항상 먼 거리에서 사냥감, 과일나무, 포식자를 주시하던 우리의 눈, 의자 생활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척추 등, 우리 신체의 여러 부위와 기능은 수렵채집인의 삶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문명은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진화했고, 우리의 유전자는 이 급격한 변화를 도저히 따라올 수 없었다.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겪는 수많은 육체적 불편함과 질병들은 단순히 '나쁜 습관' 때문만이 아니라, 세상이 너무 빨린 변한 진화적 불일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신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지금까지, 여러 사례들을 통해서 현대 사회에 아직 적응 못한 우리의 유전자들을 살펴보았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신체적인 많은 문제들을 과거 유전자들이 아주 잘 설명해 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정신적인 문제들 역시도 과거 유전자들이 설명해 줄 수는 없을까?
그 이야기를 다음 편부터 하나씩 또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