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2년 만에 대학원에 가기로 했다.
모교로 가고 싶었지만 지도 교수님은
서울권 대학원을 추천해 주셨다.
OO교수에게 이야기해놓을 테니 지원해 봐
교수님 말씀에 용기가 생겼다.
원서를 작성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서류는 합격이다.
면접 보러 서울로 향했다.
지방 촌놈티 안내기 위해
나름 멀끔하게 꾸미고 갔다.
교수 6명이 내 앞에 앉아 있다.
돌아가며 한 마디씩 질문을 한다.
왜 지원했나?
뭘 하고 싶나?
잘하는 게 뭔가?
게다가 영어 시험도 있다.
지문을 읽고 독해해야 한다.
영어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못하는 과목이다.
대충 아는 단어를 연결시켜 주저리주저리 적었다.
합격할리가 없다.
답변을 잘 못했고, 독해도 엉망으로 적었다.
그런데 결과는 합격이었다.
역시 교수님이 말씀해 주신 덕분일까?
합격 후 대학원 교수님 연락을 받았다.
자네는 대학원 입학 전 미리 컨택하는 걸 모르나?
몰랐다.
대학원은 지도교수가 될 분께
미리 연락을 드리는 게 예의, 매너, 과정이라고 한다.
OO 교수님이 연락드리지 않았나요?
아니 아무 말 없으셨는데?
그 양반 또 까먹었나 보네...
그랬다...
교수님은 추천도 연락도 하지 않으셨다.
차후 여쭤보니 잊으셨단다...
어쨌든 합격했다.
이제 지방에서 서울을 오가며
일과 공부를 병행할 일만 남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대학원 지도교수님은 일하는 걸 허락지 않으셨다.
우린 전일제 대학원이야
전일제 대학원은 학교에서 공부만 해야 한다.
용돈 명목으로 적은 돈을 받지만 진짜 푼돈 수준이다.
현재 일하고 있는 박물관은 2년까지 다닐 수 있다.
2년 후 무기직(공무직)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운이 아주 좋으면 말이다.
미련 없이 박물관을 포기했다.
짐 싸들고 서울로 올라와 고시원 생활을 했다.
월 30만 원짜리 고시원으로 화장실, 샤워실은 공용이다.
밥, 김치, 라면, 계란이 제공된다.
학교에서 가까워 식비를 아낄 수 있다.
대학원생은 학교 박물관에서 일한다.
발굴 유물을 실측하고
보고서를 작성 했다.
합격은 했지만 교수님은 내 수준이 낮다고
판단하셨다.
틈틈이 학부 수업을 청강해야 했다.
동기 중 나만 학부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지방대 출신, 많은 나이, 낮은 수준...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학원 수업은 고통 그 자체였다.
통계 수업을 듣는데 교재가 원서(영어)다.
매주 일정 분량을 미리 읽고 해석해가야 한다.
과제도 주어진다.
과제 때문에 매 주말 대학원생들은
박물관에서 밤을 지새운다.
당시 흡연을 했는데
과제 때는 하루에 2갑씩 피워댔다.
내일 북한군이 쳐들어와 전쟁 나면 수업 안 들어도 되겠죠?
대학원 동기가 과제를 하다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수업은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다.
과제를 잘 못했거나, 원서를 이상하게 해석하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심한 경우 수업에서 내쫓기는 학생도 있다.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교수님의 질문 공세가 시작된다.
주말을 꼬박 새고 전쟁 같은 수업을 듣는다.
교수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수업만 끝나면
대학원생들을 이끌고 회식을 가신다.
교수님과 술 마시며 맞담배를 피운다.
당시 실내 흡연이 가능하던 시기였다.
뒤 끝없는 교수님이 싫지 않았다.
회식이 없으면 퀭한 눈을 하고
고시원으로 돌아간다.
가는 길에 1리터짜리 맥주를 산다.
좁은 방에서 칼칼한 맥주를 들이킨 후
잠든다.
이렇게 2년을 보냈다.
수료하던 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더 이상 공포스러운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된다.
허나 수료는 수료일뿐이다.
내게 필요한 건 졸업이다.
석사학위를 받으려면
논문을 써야 한다.
더 큰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