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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기간제 근로자의 삶

by 일용직 큐레이터

학부 졸업 후 고민이 많았다.

학교 연구소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선택받지 못했다.


무려 4년이나 헌신했는데

내가 아닌 다른 친구를 뽑았다.

배신감을 느꼈다.


졸업 후 취업도, 대학원 진학도 못하고 집에만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을 놀다 우연히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다.


국립박물관 기간제 근로자, 유물등록 및 전시보조


사실 대학 4년간 문화재 발굴만 했다.

전시는 보기만 했지 어떻게 하는지 전혀 몰랐다.

박물관학을 배웠지만 텍스트만 읽었을 뿐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무작정 도전해 보기로 했다.

채용 서류를 접수하고 면접을 봤다.

운이 좋았다.


당시 정부사업으로 미등록 유물을 관리하기 위해

대규모 채용이 이루어졌다.

갓 졸업한 나에게 기회가 왔다.


그렇게 국립박물관 비정규직(기간제근로자)으로 첫 취업을 이뤘다.


국립박물관에서 받은 월급100만 원 남짓이다.

연봉 1,200만 원.


고시원비 30만 원.

생활비 30만 원.

40만 원대학원 진학을 위해 저축했다.


박물관 일은 적성에 딱 맞았다.


먼저 문화재발굴기관을 찾아 유물을 인수한다.

박물관으로 옮겨진 유물은 신상기록부(유물명세서)를 작성했다.

명세서를 작성하며 수 십만 점의 유물을 접했다.


구석기부터 근현대까지 갖가지 유물을 실견했다.

사진을 찍고, 넘버링을 하고, 수장고 격납까지 직접 했다.


전시 보조 역할도 했다.

국립박물관 전시를 기획부터 조성, 도록 발간, 도슨트 등

전 과정에 참여했다.

도록에 내 이름이 들어갔다.


국립박물관은 체계적이다.

함부로 대하는 사람도 없고 인간적으로 대우해 준다.

급여는 적지만 배울 게 많다.


경력인정기관이라 향후 학예사 자격증 취득에 큰 도움이 된다.


박물관 특성상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다.

힘쓸 일이 생기면 항상 불려 다녔다.


기능직 공무원분께 유물 포장, 해포 방법을 배웠다.

유물 보관 상자를 직접 만들고

작품 받침대를 설치했다.


그렇게 1년 8개월을 일했다.

대학 동기들은 이미 대학원에 진학해 수료를 앞두고 있었다.

2년 가까이 뒤처진 셈이다.


대학원에 가야했다.

박물관을 그만둘 수 없어 1년 치 연차, 12개를 모았다.

대학원 수업과 일을 병행하고 싶었다.


대학 은사님을 찾았다.

교수님 밑에서 공부 하고 싶었다.


서울로 올라가

교수님은 나를 거부하셨다.

내 동기들은 모두 받아 주셨는데 말이다.

내가 하고픈 전공도 교수님과 꼭 같다.


OO대학교, OO교수 밑에서 배워봐

만약 떨어지면 받아주신다 했다.

그렇게 난 연고도 없고 아는 이도 없는 ㅇㅇ대학원에 원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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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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