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고 힘든 일은 외국인 직원이 할 거예요
젊은 사장은 나를 관리자로 키우겠다 했다.
시작은 어렵지만 기술만 익히면
연봉도 금방 금방 올려준다 했다.
그가 소개해준 공장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위험하고 힘든 일도 없어 보였다.
첫 출근 한 공장은 나이 든 직원들과
젊은 외국인 친구들이 함께 일한다.
외국인 친구들은 엄마뻘 직원에게
누나라 부르며 따른다.
마흔이 넘은 나이지만
여기서는 막내다.
신입일 뿐만 아니라 나이로도 막내다.
"말 놓을게~누나라 불러."
난 그 직원을 단 한 번도 누나라 부르지 않았다.
대부분 나에게 반말을 한다.
오십, 육십이 넘은 분들이니 그러려니 했다.
젊은 사장은 항상 깍듯하다.
사실 나이로만 보면 사장이 가장 막내다.
직원들은 사장을 애 보듯 본다.
막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은 사장이다.
나이 든 직원들은 그가 꼬마였을 때부터 일했다.
누렁이 한 마리가 날 보며 짓는다.
작은 공장에는 왜 꼭 개가 있을까?
누렁이가 먹다 남긴 뼛조각이 흐트러져 있다.
화장실은 매캐한 냄새가 난다.
분명 수세식인데 푸세식 냄새가 진동한다.
"공장 밥 잘 나오지?"
누나라는 직원분이 자랑스레 식판을 내민다.
식판엔 얼룩이 껴 있고,
숟가락은 고춧가루가 묻어있다.
식탁은 끈적하다.
메스꺼움이 올라왔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외국인 직원이 내 숟가락과 젓가락을 식탁에 올리며
옆에 앉으라 손짓한다.
커터칼과 매직펜.
공장 일을 하는데 꼭 필요하다며 손에 쥐어준다.
엄청난 굉음을 내는 기계에서 원단이 짜여 나온다.
일정한 길이로 원단을 자르고 포장해 쌓는다.
원단 무게는 20~30kg이다.
하루 수백 개의 원단을 자르고 나른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일 배우려면 밑바닥부터 해야 돼.
이사라 불리는 나이 든 여직원이 말했다.
원단을 출고할 때 꼭 나를 부른다.
큰 트럭에 올라 타 지게차로 옮겨진
원단 수백 개를 쌓는다.
젊은 사장이 원망스럽다.
그가 나를 보고 깜짝 놀란다.
"누가 시킨 거예요?"
잘 말해 이런 일 더 안 시키겠다 했다.
하지만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까데기라 불리는 원단 나르는 일은 내 몫이다.
가만 보니 젊은 사장은 힘이 없다.
일 배 운지 1년 남짓이라 했다.
직원들은 적게는 10년에서 길게는 30년을
일한 베테랑이다.
기술이 있으니 사장도 깔본다.
그 사장이 고른 나는 외국인 직원과 다를 바 없다.
그나마 마음을 터놓는 건 외국인 친구들 뿐이다.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하며 친해졌다.
원단을 자르고, 나르고, 쌓는 방법을
알려준 것도 모두 외국인 친구들이다.
"그걸 왜 거기다 넣어? 넌 생각이 없니"
여기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다.
생각 좀 해라.
그것도 못하니.
나이 든 직원들은 나를 한심하게 본다.
밖에서 뻘뻘 땀 흘리며 원단을 나르고
들어왔는데, 왜 기계가 멈춰있냐 타박한다.
나 말고도 열댓 명이 있었는데
모든 문제는 내 실수다.
최저시급 가까이 받으며
이런 일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젊은 사장과 일하면 훨씬 낫다.
그는 한 가지라도 더 알려주려 열심히다.
이해가 안 됐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랐다.
"지난주에 무슨 일 하셨어요?"
원단 자르고 까데기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숙인다.
3개월 만에 나를 관리자로 만들어 주겠다 했었다.
3일 만에 불가능한 일이란 걸 깨달았다.
아니, 3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질 게 없어 보인다.
여기서 다시 꿈을 꿀 수 있을까.
야간 근무 때는 점심에 먹던 메뉴가 냉장고에 들어있다.
차갑게 식은 음식은 누런 떼가 낀 반찬통에 담겨있다.
숟가락은 어디다 숨겨 놓는지 보이지 않는다.
다섯이서 숟가락 하나를 씻어가며 교대로 먹는다.
퇴근해 돌아오면 와이프는
양말과 속옷, 외출복을 준비해 놓는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를 찾았다.
달달한 커피와 케이크를 좋아하는 그녀다.
와이프의 머리를 만지며 살포시 안는다.
마치 공장일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땀 범벅이 되어 원단을 날랐는데도 말이다.
"주말에도 일하러 갈 거야?"
와이프가 아쉬운 듯 물어온다.
하루도 쉬지 않는다.
하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을 메꿀 수 없다.
와이프는 다 알면서 묻는다.
살이 15kg이나 빠졌다.
지난 겨울만 해도 92kg까지 나갔다.
발에선 냄새가 난다.
신발은 항상 축축하다.
그래도 버티는 건 와이프 때문이다.
20대 초반이던 와이프는 서른이 코 앞이다.
언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아직은 젊지만 와이프 나이도 생각해야 한다.
벌써 결혼 7년 차다.
나는 이미 마흔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