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력이 쇠했다.
단단하던 무릎은 드득 소리가 나고,
유연했던 허리는 구부졌다.
타이핑을 치던 손은
얼룩 덜룩한 검버섯이 피었다.
하루 5시간 남짓 자며
주 7일 일했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대출금, 생활비 쓰기에 빠듯하다.
러시아 갔던 와이프가 돌아왔다.
6개월 만에 만난 남편을 보고 눈물짓는다.
"여보,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불과 작년만 해도 탈 없이 잘살던 우리다.
7평 원룸에서 시작해,
13평 투룸으로 넓혔고,
마침내 30평 아파트로 이사 왔다.
새로운 도시,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사업을 꿈꿨다.
결과는 대실패.
변명의 여지없이 못난 내 잘못이다.
비행기 값이 없어 6개월간 와이프를
러시아에 묶어두었다.
할부로 겨우 마련한 비행기를 타고
와이프가 돌아왔다.
더 이상 아르바이트로 버틸 수 없다.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근처 공장을 찾았다.
50여 군데 넘게 지원했지만
딱 한 곳만 연락 왔다.
차로 1시간 떨어진 작은 공장이다.
"일할 생각 있으시면 면접 한번 오시죠."
까만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공장으로 향했다.
좁은 도로를 꽉 메운 트럭이 앞 길을 막는다.
젊은 사장은 반갑게 나를 맞는다.
"대학원까지 졸업하신 분이 왜 공장을..."
구구절절 설명하기 싫었다.
부산 이사 후 재취업이 안돼
공장일을 알아보고 있다 했다.
그는 더 묻지 않았다.
젊은 사장은 공장 이곳저곳을 소개해 준다.
친절하다.
부산에 내려와 만난 사람 중 가장 살갑다.
그만큼 사람이 절실하단 의미다.
반대로 경력없는 나를 써야 할 정도로 일이 힘들다는 의미다.
면접 후 젊은 사장은 최저시급을 제안했다.
주간, 야간 교대근무인데 실수령액은 220만 원 남짓이다.
이게 현실인가?
사무직으로 일할 땐 팀의 리더로
나쁘지 않은 연봉을 받았다.
그 자리를 버리고 이사 왔는데
여기는 최저시급이다.
대답을 않차 젊은 사장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대학원 나오신 분에게 최저시급은 좀 그러니, 10% 더 드릴게요."
이것저것 다 떼면 240만 원 남짓이다.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불평했던 전 회사가 꿈인 것 같다.
금방 창업해 큰 돈 벌 것처럼 떠든 내가 원망스럽다.
날 믿어준 와이프 볼 낯이 없다.
11살 어린 와이프는 대학 졸업하자마자 시집왔다.
결혼하며 와이프에게 약속한 게 있다.
"너의 일상을 지켜줄게."
평범한 음식을 먹고,
카페를 가고,
데이트를 즐기는
일상을 지켜준다 약속했다.
와이프가 없던 6개월 간
먹지 않고, 사지 않으며
악착같이 일했다.
와이프에게 똑같은 삶을 요구할 수 없다.
예전과 같이 카페를 가고 레스토랑에 데려갔다.
와이프만은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나 하나 믿고 수천 킬로 떨어진 이국에 살고 있는 그녀다.
평일에는 공장을 나가고,
주말에는 물류센터, 건설현장에서 일한다.
그럼 300만 원 남짓 번다.
겨우 버티고 있다.
이게 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