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일은 2교대 근무로 시작했다.
다른 직원들은 주간, 오후, 야간 스케줄로 일하지만
난 젊은 사장과 같이 일하기 위해 주간, 야간만 하기로 했다.
젊은 사장은 열정적으로 나를 가르친다.
기계 작동법, 원단 짜는 원리, 공장 돌아가는 상황 등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 한다.
다른 직원들은 시큰둥하다.
3일 하고 그만둘 줄 알았는데 계속 나오네?
대부분 며칠하고 그만둔단다.
당연하다.
최저시급 받고 이런 일 할 사람은 없다.
편의점 알바를 하면 몸도 더 편하고
위험한 일도 없다.
내가 공장을 택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업무를 잘 알려주지 않는다.
그들은 기술이 있다.
그 기술을 나에게 전수하는 걸 주저한다.
내가 기술을 습득하면
그들을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사장은 나이 많고 연봉 높은 직원보다
그나마 어리고 돈 적게 받는 나를 택할지도 모른다.
아마 이런 우려 때문에 나를 가르치지 않는 듯하다.
또 굳이?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50~60대 직원들은 앞으로
10년 정도 더 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골치 아프게 신입을 가르치고
후배를 양성하는 일에 몰두 할 이유가 없다.
자신이 그만두면 끝이니까.
이런 이유로 난 냉정과 열정사이를 오간다.
젊은 사장과 일하는 야간조는 정말 열심히 배운다.
기계를 돌리고, 원단을 짜며 기술을 익힌다.
젊은 사장이 없는 주간조는 노가다만 한다.
원단을 자르고 나르고, 트럭에 올라 싣는다.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닌다.
공장일은 정말 위험하다.
기계에 부딪히거나 긁히는 일이 많다.
팔과 다리에 상처와 멍이 수북하다.
손가락 틈사이로 기름 떼가 끼어있다.
손등에는 검버섯이 올랐다.
와이프는 남편을 보며 울상을 짓는다.
작년만 해도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를 두드리던 남편이다.
지금은 공장 막내로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외국인 직원은 그나마 나를 웃게 한다.
다가와 시답잖은 농담을 하고
모르는 걸 친절히 알려준다.
일하다 막히는 게 생기면
손을 들고 외국인 직원을 부른다.
그럼 달려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
설명해 준다.
영어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외국인 직원과 말이 안 통했으면 정말 며칠 만에 그만두었을 것이다.
공장은 24시간 내내 굉음이 진동한다.
수십대의 기계가 내는 소음은 공장을 울린다.
그래서 일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
소리 지르듯 말을 해야 겨우 대화가 된다.
마치 싸움이라도 난 듯 공장 이곳저곳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고성이 들린다.
야간 근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너무 위험하다.
밤 새 일하니 피곤하고 졸리다.
운전을 해야 하는데 눈이 살살 감긴다.
졸음 방지껌을 한 움큼 씹고
콜라도 들이킨다.
샤워를 하고 눈을 붙이면
2~3시간 만에 다시 떠진다.
그리고 잠이 오지 않는다.
몸은 피곤하고 힘은 없는데도 말이다.
다시 잠들어 보지만 또 금방 깬다.
많이 자야 4~5시간이다.
이렇게 일주일을 보내면 몸이 녹는 기분이다.
공장에서 선채로 잠 든 적도 있다.
그나마 와이프가 있어 웃는다.
함께 드라마를 보고 커피를 마신다.
작년까지 몇백 부작이나 되는
튀르키예 역사 드라마를 봤다.
코로나 때 보기 시작해 몇 년이 걸려 완방했다.
러시아 와이프와 드라마를 보는 건 쉽지 않다.
먼저 내 노트북으로 드라마를 재생한다.
소리는 죽이고, 자막은 켠다.
와이프 노트북은 러시아어 더빙 소리가 나게 맞춘다.
노트북 덮개는 살짝 내려둔다.
와이프는 양쪽 화면을 보고 싱크를 맞춘다.
이번에는 브라질 드라마를 보잔다.
한국 드라마도 잘 안 보는데
와이프 만나고 접하기 힘든 해외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드라마의 재미는 제쳐두고 집중이 안된다.
먼저 더빙이 낯설다.
전문 더빙팀이 하면 그나마 낫지만
일반인이 한 경우도 있다.
그럼 목소리 하나로 수십 명을 커버한다.
누가 말하고 있는지 모를 경우도 있다.
또 편집이 상이해 싱크가 잘 안 맞는다.
그럼 건너뛰기를 하는데,
그러니 스토리가 조각조각 나뉜다.
그래도 와이프와 함께 있는 시간이 좋다.
혼자 있을 땐 멍하니 누워 유튜브만 봤다.
와이프가 있어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