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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현실 08화

대책 없는 공감

by 일용직 큐레이터

젊은 사장은 무거운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밖으로 나가자 했다.


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예상했는지 별로 놀라는 눈치도 아니다.

계약기간 3개월 하고도 열흘을 더 일했다.

약 100일을 일한 셈이다.


그만둔다고 말할 땐 그만한 이유와

각오가 있을 테니 붙잡기 어렵다고 했다.

원하는 날까지 일하고 그만 두라 해서

최대한 빨리 나가고 싶다 했다.


그럼 오늘까지만 일하고 그만두란다.

알겠다고 했다.


다시 공장에 돌아와 나를 성희롱한 직원을 마주했다.

눈치도 없는지 반갑게 웃으며 인사한다.

고개를 숙이며 지나쳤다.

오늘이다. 오늘만 참으면 된다.


젊은 사장이 다가와 나가자고 했다.

차에 태우더니 근처 카페로 향한다.


사실 그날 왜 집에 가셨는지 알아요

바로 옆에서 목격했으니 모를 리 없다.

나뿐만 아니라 젊은 외국인 직원들에게도

불필요한 터치를 자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외국인 직원들이 그분만 보면

슬슬 피하는 거였다.

터치를 하지 말라고 몇 번 주의를 주었는데도

계속 그런단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성희롱하는 직원을 알고도 방치하다니...

직접 목격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안 하다니...


필요하면 그 직원과 따로 일하게 해 줄게요

나는 그만둘 각오를 했다.

평소에 쌓아두었던 불만을 쏟아냈다.


면허도 없는 70대 노인이 끄는 지게차에 올라타

7~8m 높이에 위치한 20~30kg짜리 원단을 내렸다.

너무 위험하다고 소리쳐도 그냥 하라고 나무란다.


35도가 넘는 한 여름에 바람도 안 통하는 탑차에 올라타

수백 개의 원단을 쌓는다.

내가 받은 돈은 최저시급보다 약간 높다.


비가 억수같이 내려도 쫄딱 맞으며

원단을 나르고 쌓는다.


개고생을 하고 공장에 들어가면

기계를 살피지 않았다 타박한다.


칼에 손가락을 베여 살껍데기가 너덜더덜해진 적이 있다.

피가 철철 나 붕대로 감고 일을 했다.

다들 왜 그러냐, 칠칠치 못하다 타박한다.


손에 피가 흐르는 걸 보고도

또 밖에 나가 원단을 나르란다.


관리자로 일하게 해 준다 했다.

힘쓰는 일은 외국인이 하고

난 그들을 보조만 하면 된다 했다.

3개월 후 임금 인상을 약속했다.


단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내가 부족해서, 일 배우는 게 느려

그럴 거라 꾹 참으며 버텨왔다.


그런데 성희롱은 못 참겠다.

아니 이건 참으면 안된다.

성희롱을 목격한 젊은 사장은 공감은 하면서도

아무런 해결책을 내지 않는다.


그만둔다 했다.

다른 부서에서 일하게 해 줄 테니

1주일만 더 다녀보라 한다.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곧 연락할 테니 기다리란다.

알았다고 했다.


1주일 후 메시지가 왔다.

내부적으로 논의했지만 설득이 되지 않아

퇴사 처리를 해야겠다고 했다.


혹시 다시 돌아올 생각이 있느냐 묻는다.


안녕히 계시라 했다.


지난 100일이 지옥처럼 느껴졌다.

최저 수준의 시급을 받으며 일했다.


어디가 나락의 끝일까.

이 넓은 부산에 내 몸 둘 곳이 없다.

제발 부산에서 꺼지라고 누가

고사를 지내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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