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잔소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고기 뭇국을 맛있게 끓이기 위해 재료를 손질하던 중이었다. 무를 썰고 그릇에 담아뒀어야 했는데 설거지거리를 만들기 싫어서 한쪽으로 밀어놓고 파를 썰었다.
마지막 부분까지 썰다 보니 자리가 좁아서 왼손을 대충 얹어놓고 자르다가 그만 실수로 엄지손톱을 잘라버렸다.
사고가 날 것을 예감한 것처럼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 낯설지 않았고 크게 놀라지도 않았으며, 나의 행동은 의외로 차분했다.
손톱 윗부분이 잘렸는데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물로 씻어내고 스며 나오는 피를 닦아냈다. 오랜만에 생긴 상처는 상당히 쓰라리고 아팠다.
그 와중에도 하던 일은 마저 해야 했기에 나머지 손가락으로 지혈하면서 오른손으로 열심히 요리를 마무리했다. 설거지는 도저히 할 수 없어서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쪼르르 방에서 뛰쳐나온 딸아이는 내 상처를 궁금해했다. 밴드를 붙여야 한다고 따라다니며 부산을 떠는 꼬마는 모처럼 참견할 일이 생겨서 기분이 좋은 눈치다.
"조금만 더 지혈하고 밴드 붙일 거야."라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와서 쉬고 있었다.
"상처부위는 심장보다 더 높게 들고 있어야 돼. 그래야지 지혈이 빨리되지. 봐봐. 얼마나 다쳤는데? 괜찮아. 계속 휴지로 막고 있으면 세균이 더 생기니까 얼른 물로 씻고 약 발라."
어느새 방으로 따라온 꼬마는 엄마처럼 계속 잔소리를 해댔다.
마지못해 손톱을 감싸고 있던 휴지를 떼어냈다. 다행히 지혈은 어느 정도 된 것 같았다.
"뭐야. 이제 피가 다 멎었구먼. 얼른 가서 물로 씻고 와. 약 바르게. 빨리."
"아까 씻었는데, 또 씻어?"
"휴지로 누르고 있었잖아!"
아... 도저히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은 너무 아파서 상처부위가 물에 닿는 것이 무서웠다. 두려움에 주저하고 있는 나를 딸아이는 아기 돌보듯 다독여줬다. 겨우 물로 씻어내고 나오자 녀석은 구급상자에서 약을 찾아왔다.
손에 짜서 바르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어디선가 면봉을 가지고 왔다. 약을 바르고 꼬마가 준비해 준 밴드를 붙였다.
'이거 뭐지? 나 왜 이렇게까지 아파하는 거지? 요 녀석은 대체 이런 걸 어디서 배웠을까?'
속으로 내심 대견해하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녀석은 덤덤하게 말했다.
"내가 많이 다쳐봐서 잘 알아. 이 정도 가지고 아프다고 하면 안 되지. 그렇게 아파? 이그...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된 거 같네."
하하하하하~~!!
웃음이 나오는데 웃을 수가 없었다. 칼질하다가 처음으로 손톱을 베여서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꼬마야~! 엄마 치약 좀 짜줘."
"으휴~ 내가 이런 거까지 해줘야 돼?"
녀석은 투덜대면서도 아파하는 내가 가여운지 무심한 듯 칫솔에 치약을 짜줬다.
어느새 커서 엄마 간호도 하고... 어딘가 기댈 곳이 있다는 게 든든했다. 하지만 양치하는 내내 문 앞에 서서 쉬지 않고 잔소리를 해대는 꼬마의 모습에 나의 노년이 조금 두려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