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꼭 이를 뽑을 거야!
설거지를 하는 동안 화장실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꼬마.
'어쩐 일로 밥 먹자마자 양치하러 들어갔데?'
혼자 착각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속으로 기특해하고 있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다가가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녀석이 황급히 화장실에서 나왔다.
"예뻐 보일라고 연습했어, 히히~~"
하... 그러니까 거울 좀 그만 보지... 요즘 들어 부쩍 거울 앞에 서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역시나 앞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거울을 보고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가만... 예뻐 보일라고?
저 말이 무슨 뜻일지 순간 궁금해졌다.
"근데 아까 예뻐 보일라고 연습했다고 했잖아. 무슨 표정을 연습한 거야? 보여줘 봐. 응?"
"아 그거? 이 뽑는 거 연습했다고."
"뭐? 예뻐 보이려는 게 아니고 이를 뽑으려 했단 말이야? 대체 그걸 왜 연습하는 거야?"
꼬마는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렇지도 않은 거 빨리 뽑아버려야 편하지.
안에 새 이가 나고 있는데 얘가 앞길을 막고 있으니까 못 자라는 거야."
놀라서 토끼눈이 된 채 그대로 멈춰있는 내 모습이 재밌다는 듯 녀석은 활짝 웃어 보였다.
"내가 앞니 처음 뺐을 때도 엄마한테 보여줬더니 엄마가 놀랬잖아. 지금처럼~~!"
새로운 놀이를 찾은 꼬마는 호탕하게 웃더니 다시 연습해야 한다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으~~ 무섭게 왜 그래... 그냥 치과 가서 뽑자. 응?"
겁에 질린 엄마의 말이 귓전에서 흘러나간 꼬마는 열심히 집중하며 이를 뽑기에 한창이다.
"항상 오른쪽이 먼저 뽑히더라고... 신기하지?
오늘 꼭 이를 뽑을 예정이야. 이걸 왜 뽑겠어. 내가 음식 먹을 때도 불편하니까 그런 거 아니야. 치과에서도 5, 6학년 때 이가 우르르 빠진다고 했어."
어쩐 일인지 꼬마는 이를 뽑지 않고 자꾸만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수다를 이어갔다. 방문 앞에서 서성이며 계속 말하는 딸아이에게 말했다.
"왜 계속 거기 서서 얘기해?"
"뽑는다고, 뽑는다고! 내가 이 뽑는다고 머리까지 묶었잖아. 뽑고 아빠한테 바로 전화할 거야. 걱정하지 마. 이 뽑을 거야. 말리지 마!"
어째 저 말은 좀 말려달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만하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또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으아~ 무서워 왜 떨리지?"
그럼 그렇지. 녀석도 겁이 나나보다.
"아 떨려 떨려! 엄마, 근데 앞부분이 조금 뽑혔다? 이제 뒷부분만 뽑으면 돼!"
"악~~~!!"
이쯤 되니 녀석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괜찮아, OO야. 할 수 있어. 오늘 그냥 뽑히는 게 나아.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내일 학교생활 잘하려면 해야 돼. 괜찮아! 제주도 가기 전에 꼭 뽑을 거야!!"
녀석은 스스로 최면을 걸며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는 듯했다.
"엄마, 긴장돼서 자꾸 물만 뱉어. 아, 솔직히 할 수 있는데 아파."
"그니까 하지 말라고!!!"
녀석은 오두방정을 떨며 화장실과 안방을 계속해서 왔다 갔다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지쳐갔다. 뽑을 거면 차라리 빨리 뽑아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커져갔다.
"엄마 지금 피나거든? 그니까 뽑힐 희망이 있는 거야."
"그니까 저절로 빠지게 놔둬."
"놔두면 저절로 안 빠져."
"치과 가서 뽑아!"
"치과 가는 게 더 무섭단 말이야."
끝나지 않고 되풀이되는 말들로 점점 지쳐갔다. 예전에 어느 영화에서 봤더라. 악당과 싸우던 주인공이 점점 지쳐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아무리 공격해도 쉽게 꺾이지 않는 악당에게서 잠시 도망치며 재정비하는 숨 막히는 진공상태의 분위기가 떠올랐다.
지금이 딱 그 타이밍이다.
하필 나가봐야 해서 끝까지 옆에 있어 줄 수가 없었다. 딸아이에게 주의사항을 신신당부하며 집 밖을 나서면서도 한편으로는 포기하기를 바랐다. 주말에 치과에 가면 깔끔하게 해결될 일이었다.
"엄마~~!! 히히히~! 나 드디어 뽑았어!"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딸아이의 목소리가 밝다. 기쁨과 환희! 성취감에 가득 차 있는 자신감 넘치는 말투였다.
녀석은 결국에 해낸 것이다. 지혈도 잘하고 있고 아빠한테도 전화해서 소식을 전했다고 했다.
저런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걸 대견하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모든 이를 치과에서 뽑았고 항상 병원을 나서는 길에 엄마는 방울빵을 사주셨다.
나와는 정말 다른 딸아이가 그저 신기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