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명상을 한다. 고요함 속에서 긍정의 확언을 되새기며 마음속으로 따라 하기 시작한다.
나는 오늘 행복할 거야.
나는 오늘 건강할 거야.
나는 오늘 많이 웃을 거야.
영상 속 인물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나지막이 속삭인다.
"다시 오지 않을 오늘, 소중하게 보내세요."
눈을 뜨면 온화한 미소가 입가에 지어진다. 마지막으로 깊은숨을 들이마시면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긍정의 에너지를 가득 채우고 침대를 박차고 나가면 하루가 시작된다. 하지만...
나의 긍정 마인드는 오래가지 못했다.
잠에서 깬 아들은 습관적으로 동생 방을 기웃거린다. 잠결에 인기척을 느낀 꼬마가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매일 반복되는 아이들의 지겨운 싸움이 시작됐다.
녀석들의 싸우는 소리는 겨우겨우 잠재운 나의 용암을 부글부글 끓게 만들었다. 후후... 참자. 마음의 평화를 챙긴 지 5분도 안 돼서 분노를 표출시킬 수는 없다.
차분하게 아침을 챙겨주고 아들의 등굣길을 함께했다. 고요한 차 안은 녀석이 코를 훌쩍이는 소리로 가득했다. 비염이 있는 아들은 미세먼지 가득한 환절기는 기본이고 1년의 절반은 이비인후과 신세를 진다.
"그러니까 어제 코세척 하라고 했지? 약은 맨날 까먹고 안 먹을 거면 병원엔 왜 가는 거야?"
결국 참다못해 폭발해 버렸다. 말없이 듣기만 하는 녀석에게 또다시 잔소리 폭격기를 날리기 시작했다. 약을 자주 먹는 건 분명 좋지 않다. 평소 관리를 좀 잘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은 녀석에게 끝내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사라져 버린다.
결국 오늘도 하루의 시작은 평화롭지 못했다.
일을 하지 않는 매주 금요일은 유일하게 아들 녀석을 데리러 가는 날이다. 아침에 화를 내서 오늘은 안 가야지 해도 나도 모르게 운전대를 잡고 있다.
하루 종일 고생했다고 간식 사주는 것을 아는 딸아이 역시 하교 후 일찌감치 집으로 와서 꼭 따라붙는다. 학교 앞에서 만난 우린 항상 참새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녀석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사주면서 소소하게 보내는 오후가 보람차다.
하지만 이 행복은 얼마 가지 않아 깨져버린다. 차에 타면 꼭 둘이 싸움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정말 별거 아닌 것들로 어떻게 저렇게 진지하게 싸울 수 있는 건지...
분노를 아무리 털어내려 애써도 잔잔한 화들이 켜켜이 쌓여있어 이젠 쉽게 참아지지 않는다. 매번 이런 결과를 맞이하게 될 걸 알면서도 나는 왜 이 시간을 포기하지 못하는가...
어제의 나를 반성하고 오늘의 행복을 빌며 시작하는 반복된 일상은 항상 후회로 끝이 난다.
어젯밤에 꼬마 친구가 꿈에 찾아왔다.
유치원생인 아들이 세상에서 가장 환한 얼굴로 튜브를 끼고 행복하게 물놀이를 하고 있다. 야들야들한 고운 피부, 오랜만에 듣는 티끌 한 점 없이 맑은 웃음소리가 듣기 좋다. 신나게 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연신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며 해맑게 웃고 있는 아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각인된 이 장면은 꿈에서 깨서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주 오랜만에 깨방정 떠는 아들이 반갑다.
매일 전쟁 같은 하루를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나를 위로해 주려고 찾아온 것만 같았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어린 아들을 다시 만난 순간 나는 정말 행복했다.
반가운 마음에 아들 방으로 가서 자는 녀석을 깨웠다.
헉! 녀석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꿈속에서 만났던 활짝 웃는 어린 아들의 얼굴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또다시 현실과 마주한 순간이다.
내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해 준 꼬마친구는 이젠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
아이들이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집 근처로 마중을 나왔다. 매일같이 싸우지만 또 항상 붙어 있으니 떼려야 뗄 수 없는 녀석들을 예전처럼 반겨주고 싶었다.
두 팔을 활짝 벌리자 딸아이가 쪼르르 달려와서 안긴다.
어이쿠! 언제 이렇게 컸는지... 내 키만큼 훌쩍 커버린 딸아이는 이제 더 이상 품 안에 쏙 들어오지 않는다.
이번엔 아들에게 두 팔을 활짝 펼쳤다.
녀석은 나를 외면해 버린다. 서운했다. 포기하지 않고 녀석을 와락 안았다. 이젠 나보다 훨씬 커버린 녀석은 절대 안기지 않는다. 떡볶이를 사주지 않겠다는 으름장에 마지못해 몸의 절반을 내어준다.
즐겁게 떡볶이를 먹는 녀석들은 쫑알쫑알 평소 하지 않던 수다를 이어간다.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아주아주 잠깐씩 찾아오는 찰나의 행복한 순간들 덕분에 오늘도 살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