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게 행복을 주문합니다.
"아 쫌! 나가라고!"
"아 진짜, 하지 말라고!!"
오늘을 시작하는 알람이 울렸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소리로 일상을 맞이하는 지금의 소음이 이젠 익숙하다. 다만 날이 더워지면서 창문을 열어놓으니 녀석들의 고함소리가 밖으로 새나가는 것이 신경 쓰일 뿐이다.
사사건건 부딪히며 정말 별거 아닌 일에 열을 올리는 차고 넘치는 에너지를 꺾을 길이 없다. 내 귀를 닫는 수밖에... 하지만 점점 더 심해지는 말들이 급기야 내 속을 긁었다.
둘이서 벌이는 감정싸움에 쉽사리 진정이 되지 않는 아이들은 내게도 거침없이 속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친구 같은 부모가 되자 했건만 진짜 친구보다 못한 언행은 참기 힘들었다.
아... 목소리를 아껴야 하는데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만다. 뭐라고 뭐라고 잘도 혼내는데 사실 기억에 남지 않는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왜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까?
격하게 혼자 있고 싶다.
가슴이 벌렁벌렁 거리기 시작했다. 나이가 드니 분노가 차오르면 몸이 견디기 힘들다는 신호를 보낸다.
후... 후... 하... 후...
깊게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이유 없는 과호흡이 오면 응급실을 찾을 정도로 쉽게 진정이 안되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애들은 원래 싸우면서 크는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왔다. 저러다가 말겠지 하며... 물론 뒤끝이 있는 아이들은 아니기 때문에 반짝 화기애애하기도 하지만 어김없이 냉전은 지속되고 있다. 말려도 보고 중제하려 나서기도 하고 혼을 내도 다 소용없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저들의 아우성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결국 이 상황이 오기까지 나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매일이 기적이었고 그 행복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매사 성실하고 착실하게 살아왔는데 나의 삶이 전부 부정당하는 것만 같아 괴롭다. 왜 이렇게밖에 키우지 못했나 싶은 자괴감도 들고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 쓸데없이 열심히 살았나 하는 후회가 들며 울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활활 타들어가는 내 속도 모르고 철부지 어린것들은 오늘도 뭐 사달라 뭐 해달라 잘만 요구한다. 말도 듣지 않고 싸우기만 하는 녀석들에게 더 이상 무모한 봉사를 하고 싶지 않다.
모든 것에 지쳤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파업이 시작됐다.
반짝이는 가로등 사이를 차들이 쌩쌩 달린다. 어디를 그리 바쁘게 가는지 속도가 제법 빠르다. 이제 막 시작된 도심의 밤은 수천 가지 색으로 눈부시게 물들었다. 강 건너에 있는 고층빌딩숲은 잠시도 쉴 틈 없이 돌아가는 기계처럼 보였다.
오랜만에 강바람을 쐬니 이제 좀 살 것 같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뒤를 돌아보니 텅 빈 공터가 컴컴한 어둠을 지키고 있었다.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밤은 서늘하고 외롭다.
혼자 있고 싶어 어디든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은 항상 마음속 깊이 내재되어 있지만 막상 나가자! 하면 어디로 가야 하지? 하는 물음표만 머릿속에 맴돈다. 결국 오늘도 나의 방황은 상상 속에서만 이루어진다.
화려한 도심의 밤 대신 수다스러운 TV 만이 공허함을 달래준다.
아침밥을 차려줘야 하는데 그냥 계속 빈둥거렸다. 학교가라고 깨워야 하는데 모른 체했다. 나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아들은 슬금슬금 기어 나와 가스불을 켠다. 계란프라이라도 해서 먹을 모양이다. 반찬도 있는데... 또 잔소리하려는 입을 꾹 닫았다.
잠시 뒤 딸아이가 촐싹대며 걸어 나온다. 잠시 눈치를 살피던 녀석은 김을 꺼내서 밥을 싸 먹기 시작한다. 아... 요 녀석도 반찬 없이 먹기 시작한다. 김치라도 내서 먹지...
아이들이 모두 등교하고 나서 주방으로 나가봤다. 삐쩍 마른 그릇들이 자유롭게 싱크대 안에 방치되어 있었다. 후... 집안일을 일절 하지 않겠다던 결심은 사라지고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냉장고 안을 살피며 저녁거리를 고민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파업과는 거리가 멀다.
일 끝나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분명 각자의 방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어쩐 일로 거실로 나와서 반겨주었다. 샤워도 하고 문제집도 다 풀었다며 둘은 배시시 웃어 보였다.
"오늘 엄마가 하라는 거 다 했으니까 피자 사주세요!"
아...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오랜만에 보는 녀석들의 해맑은 웃음값으로 흔쾌히 피자를 지불했다. 파업은 역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침에 주문한 행복이 단발성으로 배달 됐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행복이 가득 충전되었다. 요 근래 침대와 붙박이 되어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 모처럼 활발하게 움직이는 아들의 모습이 사람다워 보였다.
오늘도 일상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집에 꼭 붙어 있는 비글 두 마리 때문에 결국은 다시 제자리에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꼭 탈출에 성공하리라...
멀리서 지켜보면 별일 아닌 일들을 극대화시키고 있더라.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크게 화낼 일도 아닌데 말이야...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땐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해. 성질을 내기 전에 5초만 잠시 생각에 잠겨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