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LIE K Dec 25. 2023

모든 것은 반대로 흐른다.

굼벵이가 된 아들..

"일어나~ 얼른 씻고 밥 먹어야지."

약 1년째 아침마다 내뱉는 첫마디다.


우리 집에서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고 유난히 부지런을 떨던 녀석이었다.


아이가 3살쯤이었나..


더운 여름날 새벽, 창틈으로 유난히 반짝이는 햇살에 저절로 눈이 떠져서 일어나 보니, 꼬마 녀석이 새어 들어오는 한줄기 빛에 의지하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기특하고 예뻐서 내 기억저장소에 아직도 선명하게 보관되어 있다.

햇살처럼 눈이 부셨던 너


그랬던 녀석이!

이제는 내가 깨워야지만 일어난다.


중학생이 되고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난 과제 때문이라 생각되어 처음에는 측은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한 달이 되고 석 달이 되고 1년 가까이 지속되는 걸 보니 이것은 분명 습관이리라..



행동 하나하나가 번개같이 빨랐던 아이 나무늘보가 되어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빨랐던 치타가 하루아침에 가장 느린 달팽이로  변한 것이다.


심부름을 시키면 "네~" 하며 바지런히 달려가던 아이는 방 안에서 꿈쩍을 않는다.


가끔 그 모습이 보기 싫어 밖으로 데리고 나올 때면 갓 잡아 올린 문어처럼 빨판을 침대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더 들러붙는다. 그 힘이 어찌나 지 안간힘을 써도 들어먹지 않는다.


이뿐 아니라 밥 차리는 소리가 들리면 1등으로 나와서 앉아 있던 아이는 식사가 의 끝나갈 무렵 어슬렁 거리며 나온다. 


반찬투정은 고사하고 늘 주는 대로 맛있게 잘 먹었는데 뒤늦게 편식을 심하게 하는 중이다. 다행스럽게도 미각은 살아 있어 먹을 때마다 음식 품평회 잊지 않는다. 


녀석에게 엄마 음식은 갈수록 맛이 없나 보다.


매일 깨끗하게 씻고 청결을 중요시했는데 언젠가부터 씻는 것이 가장 귀찮은 일이 되었다. 샤워 한 번 하려면 수 번의 잔소리를 들어야지 움직인다. 그냥 놔둬보니 씻지 않고 잘 때가 많았다. 물론 늦게나마 샤워를 할 때도 있지만 지극히 드문 일이다.


책을 좋아하던 아이의 손엔 더 이상 책이 들려있지 않다. 틈만 나면 책을 읽는데 서점에 데리고 가도 시큰둥하다. 보고 싶은 책이 많아서 즐겁던 아이는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온갖 헛소리만 해댄다.


이 모든 변화는 애벌레가 자라서 나비가 되는 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만 그 과정을 겪고 있는 지금은 하루에도 수 천 번씩 참을 인()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


느릿느릿 아주 천천히 기어가지만 고맙게도 결국에는 엄마 뜻에 따르는 녀석.. 왜 처음부터 움직이지 않는 걸까? 얄밉지만 또 그 모습에 화는 사그라든다.


생각해 보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밖에서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데, 분명 머리로는 대답하고 있 도무지 몸이 따라주지 않다. 에게 시킨 일도 금방 해야지.. 하다가 다른 것에  열중하다 보면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요 녀석도 찬가지분히 이해하지만 막상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아직 터지지 않는 활화산처럼 마음속 마그마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끓어올랐다가 식기를 반복하고 있다.



몇 해 전 베트남으로 가족여행을 갔었다. 아이들이 어려서 멀리 나가지는 못 하고 친절하신 호텔 지배인 덕분에 까운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저녁식사를 했었다. 


오랜만에 해외여행이라 조금 화려한 드레스로 기분을 냈다. 맛있는 음식을 잔뜩 집어 들고 테이블로 돌아갔는데 그 모습을 본 아들이 내 귀에 대고,


"엄마, 연예인 같아요~."

라며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엄마가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던 녀석!!

나보고 아줌마라고 한다!


아줌마를 아줌마라고 하지 뭐라고 부르냐며 뼈 때리는 말과 함께.. 


당히 충격적이다.


내가 녀석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을 아는지 오늘도 내 헤어스타일이 아줌마 같다며 뭐라고 해댄다.


어쩌면 미(美)의 기준이 확하게 자리 잡 것인지도.. 현실적으로 아픈 곳 콕콕 서 얘기하니 맞는 말이긴 해도 가슴 한 켠으로는 씁쓸하다.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을 찬양하던 아이가 모든 것에 반대로 맞서서 대응한다.


엄마가 최고예요~!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던 녀석이 조목조목 따져가며 반문도 하고 아니라 생각되는 것에는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말한다.


아들이 진화하는 모습에 적응하는 동안 참으로 당황스러웠던 일이 많았다. 하지만 괜찮다. 지식도 그만큼 쌓였고 아는 것이 많아진 만큼 주장도 확실해진 것이다. 녀석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훨씬 넓어진 것이리라. 


간혹 맞지 않은 것에 옳다고 고집을 부리도 하지만 그때마다 '틀림'을 확인시켜 주면 그만이다.


지금의 모습이 잠시 잠깐 스쳐 지나가는 것이기에.. 계속해서 성장해 가는 녀석을 올바른 방향으로 잡아 주는 것이 내게 주어진 두 번째 과제 것이다.



"엄마 관절 나이가 70대래.."

라는 말에 걱정은커녕 빙긋이 씨익 웃어주는 녀석.


지금,

너의 모든 것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너와 나 사이의 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