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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JULIE K
Dec 25. 2023
모든 것은 반대로 흐른다.
굼벵이가 된 아들..
"일어나~ 얼른 씻고 밥 먹어야지."
약 1년째 아침마다 내뱉는 첫마디다.
우리 집에서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고 유난히 부지런을 떨던 녀석이었다.
아이가 3살쯤이었나..
더운 여름날 새벽, 창틈으로 유난히 반짝이는 햇살에 저절로 눈이 떠져서 일어나 보니
,
꼬마 녀석이 새어 들어오는 한줄기 빛에 의지하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기특
하고 예뻐
서 내 기억저장소에 아직도 선명하게 보관되어 있
다.
햇살처럼 눈이 부셨던 너
그랬던 녀석이!
이제는 내가 깨워야지만 일어난다.
중학생이 되고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난 과제 때문이라 생각되어 처음에는 측은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한 달이 되고 석 달이 되고 1년 가까이 지속되는 걸 보니 이것은 분명 습관이리라..
행동 하나하나가 번개같이 빨랐던 아이
는
나무늘보가 되어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빨랐던 치타가 하루아침에 가장 느린 달팽이
로 변한
것이다.
심부름을 시키면 "네~" 하며 바지런히 달려가던 아이는 방 안에서 꿈쩍을 않는다.
가끔 그 모습이 보기 싫어 밖으로 데리고 나올 때면 갓 잡아 올린 문어처럼 빨판을 침대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더 들러붙는다.
그 힘이 어찌나
센
지 안간힘을 써도 들어먹지
않는다.
이뿐
만
아니라
밥 차리는 소리가 들리면 1등으로 나와서 앉아 있던 아이
는 식사가
거
의 끝나갈 무렵
어슬렁 거리며 나온다.
반찬투정은 고사하고 늘 주는 대로 맛있게 잘 먹
었는데
뒤늦게 편식을 심하게 하는 중이다.
다행
스럽게도
미각은 살아 있어
먹을 때마다
음식 품평회
는
꼭
잊지 않는다.
녀석에게 엄마 음식은 갈수록 맛이
없나 보다.
매일
깨끗하게
씻고 청결을
중요시했는데
언젠가부터
씻는 것이 가장 귀찮은 일이 되었다.
샤워 한 번 하려면 수
십
번의 잔소리를 들어야지
움직인다. 그냥 놔둬보니 씻지 않고 잘 때가 많았다. 물론 늦게나마 샤워를 할 때도 있지만 지극히 드문 일이다.
책을 좋아하던 아이의 손엔 더 이상
책이 들려있지 않
다.
틈만 나면 책을 읽
었
는데
서점에 데리고 가도
시큰둥하다. 보고 싶은 책이 많아서 즐겁던 아이는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온갖 헛소리만 해댄다.
이 모든
변화는
애벌레가
자라
서 나비가 되는
것
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지
만 그 과정을 겪고 있는 지금은 하루에도 수 천 번씩 참을 인
(
忍
)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
느릿느릿 아주 천천히 기어가지만 고맙게도 결국에는
엄마 뜻에 따르는
녀석..
왜 처음부터 움직이지 않는 걸까?
얄밉지만 또 그 모습에 화는 사그라든다.
생각해 보
면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밖에서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데
,
분명 머리로는 대답하고 있
지
만
도무지 몸이 따라주지 않
았
다.
나
에게 시킨 일도 금방 해야지.. 하다가 다른 것에 열중하다 보면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요 녀석도
마
찬가지
라
충
분히
이해하지만
막상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아직 터지지 않는 활화산처럼 마음속 마그마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끓어올랐다가 식기를 반복하고 있다.
몇 해 전
베트남
으로 가족여행을 갔었다. 아이들이 어려서 멀리 나가지는 못 하고 친절하신 호텔 지배인 덕분에
가
까운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저녁식사를 했었다.
오랜만에 해외여행이라 조금 화려한 드레스로 기분을 냈
다. 맛있는 음식을 잔뜩 집어 들고 테이블로 돌아갔는데
그 모습을 본 아들이 내 귀에 대고
,
"엄마, 연예인 같아요~."
라며 폭풍 칭찬을 해주었
다.
엄마가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그
.
랬
.
던 녀석
이
!!
나보고
아줌마
라고 한다!
아줌마를 아줌마라고 하지 뭐라고 부르냐며 뼈 때리는 말과 함께..
상
당히 충격적이다.
내가 녀석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을 아는지 오늘도 내 헤어스타일이 아줌마 같다며 뭐라고 해댄다.
어쩌면
미(美)의 기준이
명
확하게 자리 잡
은
것인
지도
..
현실적으로 아픈 곳
만
콕콕
찔
러
서 얘기하니 맞는 말이긴 해도 가슴 한 켠으로는 씁쓸하다.
내가 하는 모든
것들
을 찬양하던 아이가
모든 것에 반대로 맞서서 대응한다.
엄마가 최고예요~!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던 녀석이
조목조목 따져가며 반문도 하고 아니라 생각되는 것에는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말한다.
아들이
진화하는
모습에
적응하는 동안
참으로 당황스
러웠던 일이 많았
다. 하지만
이
젠
괜찮다.
지식도 그만큼 쌓였고 아는 것이 많아진 만큼 주장도 확실해진 것이
다.
녀석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훨씬 넓어진 것이
리라.
간혹
맞지 않은 것에 옳다고 고집을 부리
기
도 하지만 그때마다 '틀림'을 확인시켜 주면 그만이다.
지금의 모습이 잠시 잠깐 스쳐 지나가는 것이기에..
계속해서 성장해 가는 녀석을
올바른 방향으로 잡아 주는 것이 내게 주어진 두 번째 과제
일
것이다.
"
엄마 관절 나이가 70대래.."
라는 말에
걱정은커녕
빙긋이
씨익
웃어주는 녀석.
지금,
너의 모든 것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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