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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Jan 17. 2024

너를 위한다고 쓰고, 나를 위한다고 읽는다.

Templestay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 친구와 함께 템플스테이를 알아본 적이 있다. 엄청 까불까불하고 주의 산만해서 아이를 진정시킬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은 부모와 꼭 함께 해야 한다는 말에 녀석이 중학생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 당시엔 둘째가 어리기도 했고, 매일같이 붙어 있는 가족과 하루동안 떨어져 지내면서 새로운 곳에서 색다른 경험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했다.


녀석은 부쩍 말수도 줄어들고 행동도 굼떴으며 감정 표현이 거칠게 변하고 있었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예전과는 또 다른 이유로 녀석에게 템플스테이를 추천해 주고 싶었다.


지내는 동안 좋은 말씀을 듣고 명상도 하선 곳에서의 경험은 녀석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마침 우연한 기회로 템플스테이에 참여하게 되었다. 


녀석은 왜 굳이 가야 하냐며 펄쩍펄쩍 뛰었다.


우리끼리였으면 설득하기 힘들었겠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가 함께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렇게 대가족이 1박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여름날, 더위가 기승을 부려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다행히도 우리가 머문 이틀 동안 비가 내다. 덕분에 고요하고 제법 운치 있는 풍경이 함께했다. 


정해진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것이 오랜만이라 신선했다. 모두가 여행 온 듯 즐겁고 들뜬 마음이었다.


가벼운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뒤, 절을 한 바퀴 둘러보며 스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본격적인 템플스테이가 시작됐다.


곳곳에 있는 벽화에 관한 설명을 들으면서 다의 전기(傳記)를 상기시키던 중 스님께서 용하게 소원을 잘 들어주시는 불상이 있다며 한 법당을 가리키셨다.


삼배도 직접 해 볼 겸 들어가서 원하는 소원을 빌어보라고 하셨다.



시어머니는 교회 권사님이시고 친정아버지는 절에 회장님이시다. 그 사이에 낀 우리 가족은 철저한 무교다.


어린 시절 맛있는 과자를 준다는 꼬임에 넘어가서, 때론  친구를 따라서 호기심에 교회와 성당에 다닌 적이 있다. 매주 교회식당에서 점심으로 잔치국수를 먹고 예쁜 성가복을 입고 성가대에도 섰었다.


진실한 신앙심으로 다녔다기보다 그저 어린 마음에 새로운 경험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이 즐거웠었다.


영국으로 처음 어학연수를 갔을 때였다.


외국인에게 무료로 성경공부도 시켜주고 점심을 대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영어를 배우겠다는 목적으로 친구와 함께 교회에 찾아갔었다.


낯선 이방인에게 교회 사람들은 참으로 친절했다.


우리는 매주 교회에 나오시는 할머니댁에 초대받아 맛있는 점심 대접받고 에프터눈 타임도 함께 했다. 디저트로 나온 애플 크럼블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하고 맛있었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정원이 아름답게 가꾸어진 3층집은 할머니댁에 놀러 간 듯 편안했고 따뜻했다.


그 보답으로 장애인 분들을 위한 식사배식 봉사활동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특별했던 한 달의 시간을 보내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다시 평범한 일상에 녹아들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가고 낯선 땅에서 많은 일들을 겪으며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때, 아는 분의 소개로 또 다른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저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대학가 근처에 있던 교회는 신기하게도 저녁에 예배가 진행된다. 젊은 목사님이 스티브잡스처럼 검은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서서 설교하셨다.


로 보이는 두 대의 커다란 스크린에 띄워진 글자들은 그 당시에 상당히 획기적인 시스템이었다.


대학생 청년부답게 젊은이들이 드럼을 치고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신나게 부르는 찬송가는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이렇듯 나의 청년기는 기도만 나오면 자동적으로 '아멘'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에 여러 번 노출되었었다.



특히 재물 소원을 잘 들어준다는 스님의 말씀에 귀가 솔깃해져서 주저 없이 법당으로 들어가서 삼배를 했다. 진심을 다 해서 마음속으로 나의 소원을 빌었다. 


각을 끝내면서 나도 모르게 '아멘'란 두 글자를 떠올렸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다. 앞에 있는 불상을 똑바로 바라보면 큰일 날 것만 같았다. 당황한 나머지 혼자 실소가 터졌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끝맺음이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습관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깜짝 놀라 황급히 '죄송합니다!' 다시 부르짖었지만 이미 늦었을 것이다. 


허탈하게 나의 금전소원을 한방에 떠나보낸 순간이다.

허망하게 날아갔을 소원



저녁 공양이 시작되었다.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다.  


요즘 들어 밥을 잘 먹지 않는 아들 녀석도 밥을 두 번이나 가져오며 맛있게 잘 먹었다. 왜 집에서는 안 먹는 건지..


음식에 관심이 없다는 녀석! 


한창 커야 할 성장기인데 걱정이 한가득이다. 이 시기에는 무거나 줘도 맛있다고 다 잘 먹는다는데 입맛 까다로운 녀석은 편식을 심하게 하고 있는 중이다.


나와서라도 잘 먹으면 되었지.. 하며 심심한 위안을 삼아 본다.

밖에서는 잘 먹고 설거지도 잘 하네


저녁공양이 끝난 후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 방에 둘러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며 108개의 구슬을 꿰었다. 한 문장 한 문장 쓰여있는 108개의 문장도 가슴속에 새겨보며 별일 아닌 일에도 마냥 즐겁다.


힘들다는 108배 역시 모두가 참여했다. 막내는 어려서 끝까지 못 할 줄 알았는데 큰아이와 함께 묵묵히 108배를 끝까지 해냈다. 진지하게 임해주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다.


기대 이상으로 열심히 해준 아이들을 보며 깜짝 놀라신 스님께서도 중간중간 간식을 주시며 아이들을 살뜰히 챙겨주셨다.


차담시간에는 절을 찾게 된 계기와 고민 허심탄회하게 얘기다. 


뭔가 일이 풀리지 않아서, 취직을 앞두고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각자 다른 이유로 이곳에 왔지만 뜻하는 바는 거의 비슷했다. 함께 온 사람들 중엔 아들 또래의 학생이 있었는데, 그 친구 가족분들도 나와 같은 이유로 오게 됐다고 했다.


사춘기자녀를 둔 부모들의 고민.. 왠지 모를 동질감이 들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들



고즈넉이른 아침, 울려 퍼지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맑고 청아하다. 보슬보슬 내리는 빗소리의 작은 울림이 평온하게 들려온다.


새벽 명상시간.


어두운 곳에서 가만히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소중한 시간이다. 평소 틈틈이 시간이 날 때면 집에서도 혼자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즐겨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불꽃처럼 타오르는 내 마음을 식혀주기에 이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새벽공기를 마시며 절에서 하는 명상은 색다르다. 힘들었던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깨끗하게 정화된 느낌이었다.


스님께서 요가니드라를 제안하셨다.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가만히 누워서 생각을 비워내고 오로지 호흡에만 집중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날의 빗소리와 이제 막 떠오르는 아침의 은은한 밝음이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내 평생 가장 잊을 수 없는 평온한 아침이다.



사회생활 만렙인 녀석은 걱정과 달리 금방 적응하고 주어진 시간을 즐기며 누구보다 하게 프로그램에 임했다.


목소리도 커지고 말도 많아지고 행복하게 웃는 아들의 모습을 오랜만에 보니 함께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은 아들을 위해서였으나 지나고 보니 내가 더 많이 웃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지난날을 반성해 보며 무언가 깨닫고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 보냈다.


어쩌면 이곳에서의 하루는 녀석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조금 더 돈독한 시간을 보낸 우리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다음 템플스테이를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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