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늘 찾아오는 마지막, 그 끝은..

여행의 끝

by JULIE K

감정적으로 힘든 상황은 늘 돌아오는 공항에서 일어난다. 여행의 피로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몰려오는 피곤함과 졸음으로 영혼의 절반을 가출시키고 거의 눈이 반쯤 감긴 상태로 다니거나,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한껏 신경질적이 되거나..


요 녀석은 어느 쪽일까..?



게이트로 가는 길이 상당히 멀게 느껴졌다. 바운싱네트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뒤라 몸이 천근만근이다. 더 이상 구경 다니면서 걸을 힘이 없었다.


꼬맹이는 신나게 놀고 난 여운이 남았는지 아직까지는 잘 걷는다. 기념품가게에 있는 인형들을 보며 피로를 잊은 듯했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레고스토어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런! 시간에 쫓기며 열심히 찾아다녔던 지난 시간이 떠오르자 허탈했다.


얼마 남지 않은 현금을 모두 다 쓰기 위해 눈앞에 보이는 게로 들어갔다. 원에게 달콤한 맛의 커피를 추천받았다.


남편을 위해 고른 건데 우연히도 디카페인이군!


어쨌든 기분 좋게 동전까지 탈탈 털어 지갑을 깨끗하게 비운 뒤 게이트 앞으로 갔다.

유일하게 쇼핑한 기념품


이제부터 진정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마침 가는 길에 안락한 의자를 발견했다. 공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의자다. 재빠르게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휴식모드로 들어갔다.


이미 녹초가 돼서 바로 잠을 청할 거란 기대와 달리 꼬맹이는 낮에 산 레고를 조립하겠다고 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인데 녀석은 지치지 않았다.


열심히 사부작대며 조립을 완성하고 피곤한지 드디어 취침모드로 들어갔다. 에어컨 바람이 세서 감기라도 들까 카디건을 입으라고 했는데 녀석은 덥다고 짜증을 냈다.


이제 시작됐구나..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슬슬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지루함을 견디는 방법


생각해 보면 딸아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자리도 불편하고 졸리기도 하고.. 춥지도 않은데 자꾸 옷을 입으라 하니 신경질이 날만하지..


왜 그 옛날 할머니들이 아기만 보면 춥다고 옷을 여며주는지 십분 이해가 갔다. 긴 여정으로 면역력도 떨어졌을 텐데 감기라도 들까 노파심에 나도 모르게 계속 잔소리가 나왔다. 녀석은 마지못해 카디건을 입고 깊은 잠에 빠졌다.



아주 오래전 싱가포르에 처음 여행 왔을 때가 기억난다.


자유여행의 시작이었다. 학교에서 진행했던 미국탐방 기획에서 최종 낙방하고 팀원들과 어디라도 가자며 홧김에 오른 여행이었다.


방학을 맞아 한여름에 호기롭게 떠나왔으나 현지 날씨를 전혀 고려하지 않아 고생을 엄청 했었다.


아침 일찍부터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온종일 녹아내렸고, 숨이 막히는 습도로 걷는 것이 힘들었다.

실제로 해가 더 강한 오후엔 따가운 햇살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마치 불판 위에 올라간 오징어가 된 기분이었다.


건물 밖으로 한 발짝 내딛는 것이 힘들어서 어딘지도 모를 빌딩들을 통과하며 이동했었다. 주위에 양을 피할 곳이 없고, 도저히 더위를 이기지 못해서 눈에 띄는 건물로 무작정 뛰어들어간 적도 있었다.

막상 들어가서 보니 그곳이 은행이어서 어색하게 웃으며 잠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나왔었다.


여행을 많이 다니고 다양한 날씨와 온도를 경험한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봄이라는 계절 특성 때문이었는지 두 번째 방문에서는 조금 적응할 수 있었다. 여전히 기온은 높았지만 습하지 않아서 걸을만했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역대 최고의 날씨를 보여줬다. 햇빛이 필요한 순간에는 쨍한 파란색 하늘을, 걷는 구간에서는 적당히 흐린 하늘과 센스 있는 바람 덕분에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낯선 나라의 날씨를 처음 경험하는 아이들은 어떤 순간이 와도 힘들어할 것이다.



아이를 생각한다면 전 일정 택시를 타고 다녔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조금 더 발로 뛰고 걸으면서 다양한 풍경과 도시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함께 대처해 나가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은 단지 나의 생각과 계획에 그칠 뿐이다.


녀석은 원치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니지만 막상 그 순간에서는 또다시 욕심이 고개를 든다.


엄마의 이기적인 마음!


그래서일까? 생각보다 많이 힘들어 한 녀석이다. 아이들마다 다른 성향을 갖고 있지만, 이미 다 컸으니까 이 정도쯤이야 할 수 있지 않나..? 하고 간과한 부분이 많았다.


놀랍게도 지금까지의 모든 일은 단 이틀 만에 일어났다.


마일리지로 좋은 시간대의 스케줄을 예약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가장 선호하지 않는 밤에 도착해서 새벽에 떠나는 2박 4일의 일정이었다.


앞뒤로 이동하는 날로 이틀을 써버리고 온전히 여행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이틀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정도쯤'이 아니었구나!


바뀐 나이계산 법으로 이제 겨우 8살..


호락호락하지 않은 엄마를 따라서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한 어린 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여행의 끝, 아쉬움 한가득


우리 꼬꼬마, 사랑해~ 다음 여행은 10년 뒤에나 함께 하자!


그러니까..


자꾸 엄마랑 여행 가고 싶다고 이제 그만 말해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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