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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May 31. 2024

너의 핫플레이스

Bondi Beach

온전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밝았다. 전히 이른 아침부터 알찬 여행을 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 본다. 오늘을 버텨 줄 아침밥을 꼭 챙겨 먹고 든든하게 호텔밖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아이 처음보고 신기해했던 2층기차가 들어왔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텅텅 비어있는 2층으로 올라가서 자리를 잡았다. 즐거움에 연신 까르르 웃는 꼬마, 소소한 것에도 행복감을 감추지 못하는 녀석이다.


본다이정션에 도착해서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이동했는데 분위기가 꽤나 익숙했다. 시골의 옛 버스터미널도 떠오르고, 런던에서 지방이나 파리 놀러 갈 때 갔었던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도 생각났다.


친숙한 분위기에 마음이 편안해진 나는 목적지로 가는 333번 버스를 찾아갔다. 내를 달리고 마을을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의 첫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심에서 약 30분 정도 달리면 바다를 볼 수 있다니! 정말 낭만적인 곳이다.



고운 백사장이 아름다운
Bondi Beach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직 태양에 덜 말린 하늘은 흐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비예보는 없었으니 조금 기다리면 금방 쨍한 모습을 보여주리라. 그토록 가고 싶었던 이곳의 유명한 카페! '아이스버그'로 직진했다.


바다 바로 옆에 지어진 수영장에서 보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굳이 수영을 하지 않더라도 카페에 앉아서 바라보는 인피니티 풀장의 경치가 일품이다. 철썩거리며 몰려오는 커다란 파도가 수영장에 부딪쳐서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드디어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걸어갔다.


사람들이 길을 걷다 말고 일제히 서서 사진을 찍는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를 놓칠 리 없는 나 역시 옆에 서서 사진을 찍어본다.


그러니까! 이번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ICEBERGS OF BONDI BEACH'였다.


심장이 콩닥콩닥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설렘지수를 한껏 끌어올리며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그때!


"엄마! 여기로 가봐요!"

라며 소리치는 꼬마가 있었으니...


'응? 아니 왜?  여기 들어갈 건데.. 대체 어딜 가자는 거니?'


엄마의 다급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절한 우리 꼬마님께서 산책로를 발견다며 안내해 주었다. 그, 그래.. 카페는 돌아오는 길에 가면 되지 뭐.. 이른 시간이기도 했으니 일단 아들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잘 다듬어진 해변길을 따라서 걸으며 녀석이 폭풍 수다를 떨었다. 오늘따라 에너지가 솟아 오른 녀석의 몸은 가볍다. 호기심이 왕성한 아들은 지나가면서도 주변 환경을 매의 눈으로 관찰했다.


"엄마, 저기 좀 봐요. 이끼가 왜 여기 있어요? 이끼는 습한 곳에서 자라니까 동굴 속에만 있는 거 아니에요?"


정말 신기한 능력을 가진 아이다. 모두가 그냥 지나치는 것을 녀석은 호기심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녀석과 이끼에 관해 한창 진지한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눈앞에 독특한 모양을 한 바위가 나타났다.

자연의 선물


"우와~~ 바위에 구멍이 뚫렸어요! 저건 왜 저렇게 생긴 거예요?"


엉뚱한 꼬마박사의 궁금 보따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과학시간에 배웠던 지식을 총동원해서 설명했다.


"저건 말이지.. 오랜 세월 동안 풍화, 침식 작용이 일어나서.. 그러니까 여기는 바닷바람이..."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 꼬마의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렇게 시드니 해변가에서 아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 동안이나 지구과학에 관해 떠들어댔다. 여행 와서 과학이야기라니 상상도 못 할 노릇이다. 아들의 못 말리는 호기심이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멀리 카페를 상징하는 우뚝 솟은 깃발이 하염없이 펄럭이고 있었다.


어서 오라며 손짓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호주의 거대한 자연에 푹 빠진 우리에게 핫플레이스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풀장에 부딪히는 파도를 밖에서도 원 없이 볼 수 있어서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재미없는 카페에 앉아서 창밖만 바라보는 것보다 흥미진진한 것들이 많은 산책로가 꼬마에게는 핫플레이스가 아닐까?


한참을 걸으며 진지하게 열변을 토한 우린 음료대신 밥을 선택하기로 했다.

아이들에겐 여기가 핫플



결국 그토록 가고 싶었던 카페 문은 열지 못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을 걷고 있다. 새파란 바다와 하얀 모래, 아름다운 풍경의 정점은 다시 생기를 찾은 푸른 하늘이다. 해가 축축한 하늘을 바짝 말리자 모든 것이 쨍한 색감을 드러냈다. 아들은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며 온몸으로 이곳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저렇게 좋을까.. 모래알갱이가 신발에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 한 발짝도 딛지 않던 꼬꼬마가 어느새 커서 맘껏 뛰어놀다니.. 크면서 바뀐다는 말이 정말인가 보다.


넓디넓은 해변을 가로지르면 두 번째 스폿이 나온다. 여기만큼은 꼭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한 나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닷가로 내려오니 사정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모래까지 흩날리기 시작했다. 앞을 보기가 힘든 우린 바람에 떠밀리듯 걸었다. 무게가 가벼운 고운 모래알갱이들이 바람을 타고 다리를 강타했다. 살을 파고들며 한 알 한 알 콕콕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앗, 따가워!"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강력한 모래바람을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마치 모래 총알이 날아와서 살 속에 박히는 기분이었다. 막에서 강풍을 만나면 이런 느낌일까? 아들과 호들갑을 떨며 몸을 앞으로 숙인 채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아프면서 웃기기도 한 이 상황이 재밌는지 연신 깔깔댔다. 이 또한 지나고 나면 한 편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바람이 뒤에서 불어오는 덕분에 식당까지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람 때문에 고생해서 실내에 자리를 잡고 싶었지만 바다를 바라보는 야외에 자리를 잡았다. 그놈의 감성이 뭔지..


오늘의 점심 메뉴는 그토록 먹고 싶던 피시 앤 칩스! 설레는 마음으로 음식을 기다려 본다.

맛있는 점심


기름에 바삭 튀겨진 생선가스와 감자튀김이 바구니에 한가득 담겨서 나왔다. 함께 곁들일 샐러드 역시 접시에 잔뜩 올려져 있다. 음식의 양이 많아서 부담 됐지만 아무렴 어때.. 맛있게 먹으면 그만인 것을..


함께 나온 레몬을 짜서 뿌리고 소스를 듬뿍 찍어서 한입 가득 베어 었다. 바삭한 튀김과 생선살이 고소하다. 레몬의 상큼한 첫 향이 코끝을 찌르고 소스의 매콤 달콤한 맛이 느끼함을 잡아 주었다. 두툼하고 기다란 감자튀김의 짭조름한 맛으로 마무리를 했다.


음~  이 맛이야!


내가 좋아하는 크렌베리와 과류, 치즈가 듬뿍 들어간 샐러드 역시 싱싱하고 맛있었다. 풀떼기가 입맛에 맞지 않은 꼬마는 샐러드만 쏙 빼고 맛있게 먹는 중이다. 몇 차례 권해서 겨우겨우 맛을 본 녀석은 더욱더 먹지 않았다. 애들 입맛에는 튀김이 최고지..


배불리 먹은 우린 말없이 바다를 바라봤다. 잠시 쉬어가는 이 순간이 평화롭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머무르는 지금이 좋았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최선을 다해 즐기고 있는 중이다.


아들은 돌아가는 길에 또다시 모래사장으로 뛰어들어 갔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바람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바람 때문에 파도가 꽤 높았다. 파도를 가르 지르며 서핑을 즐기 서퍼들도 하나둘씩 바다를 빠져나왔다.

멀리서 보면 평화롭다


바다에는 더 이상 아무도 없었다.


모든 것이 멈춘 듯 그림같이 평화로운 모습이다. 쨍하게 빛나는 태양 덕분에 해변이 유난히 하얗게 반짝였다.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바람을 타고 귓가에 울린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눈앞의 풍경을 마음속에 꼼꼼히 새겨본다.


점점 거세지는 바람에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마지막까지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은 원 없이 넓은 해변을 자유롭게 뛰어놀았다.



아들의 일기

제목 : 본다이비취

버스랑 전철을 타고 본다이비취에 갔다. 본다이비취를 구경하면서 신기한 거를 많이 봤다. 신기한 게 뭐냐면 동굴에서만 볼 수 있는 이끼가 밖에 있고 커다랗고 구멍이 많이 있는 바위를 파도하고 바람이 만들어 낸 거다. 엄청나고 너무 신기했다. 본다이비취에서 점심을 뭐 먹었냐면 피시엔 칩스와 샐러드와 사이다를 먹었다. 맛있었다. 다음에도 또 본다이비취에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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