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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Jun 07. 2024

이 구역의 쇼핑왕

Queen Victoria Building

차로 다녔을 때는 모든 곳이 가깝고 손쉽게 이동할 수 있었는데 걸어서 다니려니 역시 도시는 도시구나 싶었다. 지도상 가까이 있어도 실제로 걸어야 하는 거리가 꽤 있었으니 말이다. 


여행 마지막 날의 오후.. 텔에서 가까운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거리 곳곳에 스타일리시한 옷들과 소품들이 진열장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눈이 바쁘다.


여행의 마지막은 쇼핑이지!



아름다운 쇼핑몰
QVB


마음에 드는 가게가 나오면 들어가서 좀 더 자세히 구경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걷고 있는 나를 자연스레 안내하는 아들..


"엄마, 저기 가서 구경해요!"


아들이 이끈 곳은 서점이었다. 싱가포르에서 도서관에 갔던 것이 떠올랐다. 녀석에게 언어는 큰 장벽이 되지 못했다. 해석하는 것보다 책을 보는 것 자체가 더 좋은 것이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책냄새가 좋았다. 아들과 한참 동안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 몇 번 보여준 만화 캐릭터의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반가웠는지 책을 꺼내서 살펴봤다. 다른 한쪽에는 싱가포르에서 사 왔던 책도 있었다. 녀석은 놀이터에 이어 두 번째로 초집중 모드 들어갔다.

열심히 쇼핑하는 아들



그런 꼬마가 기특해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보라고 했다. 그림 위주로 신중하게 고르는 책들은 녀석이 읽기 어려운 내용들이었다. 기왕이면 독서도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에 간단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을 골라 주었다. 책을 선물 받은 녀석은 행복수치가 최고다.


자~ 그럼 이제 세일하는 물건들을 구경하러 가볼까?


하지만 나의 바람과 달리 녀석의 발걸음이 멈춘 곳이 있었으니.. 바로 한번 들어가면 오랜 시간 시달려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절대 빈손으로 나올 수 없다는 개미지옥!


장난감 가게다.


해리포터의 주인공, 헤르미온느와 론의 등신대가 커다랗게 눈에 띄었다. 그 앞에는 체스판이 놓여 있었다. 여태껏 보지 못한 스케일에 정신줄을 놓은 아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달려갔다.


 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체스말이 신기했는지 한참을 구경했다. 바로 옆에는 아들이 좋아하는 블록 있었다. 역시나 직접 조립해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이들에겐 가장 행복한 곳이다. 한참을 조립에 집중하나 싶더니 녀석은 이내 장난감이 진열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호주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갖고 놀까.. 궁금했다.


"우와~~~~~!! 엄마, 여기 제가 좋아하는 장난감이 다 있어요."


뭐라고? 여기서만 구경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고 동네 마트에 가면 쉽게 살 수 있는 장난감이 여기 있단 말인가! 친숙함에 반가운 녀석은 쭈그리고 앉아서 한참 동안 구경했다.


역시나 뭔가를 사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녀석이 갖고 싶어 하는 장난감은 집에 수두룩하게 많이 있다. 다 똑같아 보이는데 대체 왜 캐릭터만 바꿔서 계속 출시하는 걸까? 시리즈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것은 반갑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한국에 돌아가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을 굳이 여기까지 와서 사야 할 이유가 없다.

온통 너를 위한 세상



이제 다른 곳에 가서 구경하자고 얘기했다. 다행히 쉽게 설득이 되는 녀석과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와~~~ 이게 다 얼마짜리야?"


키즈의류코너에 아무 생각 없이 갔는데 전부 값비싼 명품브랜드 밖에 없었다. 조그만 천 쪼가리가 왜 이렇게 비싼 건지.. 상상 이상의 금액에 놀라며 구경하고 있는데 옆에서 아들이 다급하게 얘기했다.


"엄마, 책을 잃어버렸어요..."


아아... 장난감에 정신이 팔려서 아까 산 책을 어딘가에 놓고 온 모양이다. 서둘러서 다녀온 장소들을 둘러봤다. 곳곳을 찾아봐도 책이 담긴 파란색봉투는 보이지 않았다. 직원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설명으로 쉽게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때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핸드폰 사진첩을 켜니 녀석의 손에 들려있는 파란 봉투의 사진이 나왔다.


곧장 직원에게 달려가서 잃어버린 물건을 탐문하기 시작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른다고 했다.


후... 아들은 속상함을 감추지 못했다. 책을 사자마자 잃어버려서 안타깝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이미 일어난 일인 것을.. 체념하고 돌아가려는 순간 저 쪽에서 덩치 큰 남자직원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한 손에 들려있는 파란 봉투에서 빛이 났다. 그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어서 느리게 재생되는 필름처럼 보였다.


아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내가 곳곳에 수소문하는 모습을 보고 지나가면서 본 기억이 나서 찾아왔다고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신 감사의 인사를 했다.

남자직원은 수줍게 웃으며 별일 아니란 듯이 쿨한 제스처를 보였다.



한바탕 소동으로 잠시 정신이 없었지만 친절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 산뜻하게 길을 떠나본다.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는 '퀸빅토리아 빌딩'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몰이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수려한 외관과 내부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그만큼 시드니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규모가 엄청 큰 건물 안에는 고급상점이 들어서있다. 높이 솟은 천장은 돔형태로 시원한 개방감이 들고 상점마다 둥근 아치형의 입구가 부드러운 인상을 줬다. 정중앙에 걸려있는 시계 역시 볼만하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신비로움과 웅장함을 보여주고 싶어서 들렀지만 아들에게는 그저 수많은 쇼핑몰 중 하나일 뿐이다.

문제의 파란색 봉투



녀석의 흥미가 급격히 떨어진 것을 눈치챈 나는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리기로 했다. 그래, 여행지에서 쇼핑은 마트가 최고지!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과자들과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비타민 등.. 마음이 편해지자 장바구니 가득 물건을 담았다. 알뜰살뜰 신나게 쇼핑을 마친 우린 장 본 것을 들고 호텔로 돌아갔다.



마지막날 밤은 작년과 같이 조촐한 파티로 장식하기로 했다. 녀석이 좋아하는 미역국밥과 먹고 싶다는 과자, 주스, 이번엔 딸기까지.. 한상 가득 늘어놓고 나니 제법 그럴듯했다. 국에서 딸기를 처음 먹어 보는 아들은 빨갛게 잘 익은 딸기가 갖고 있는 강력한 신맛에 미간을 찌푸렸다. 세상에서 처음 느껴보는 맛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그 모습이 웃겨서 한참을 웃었다.

여행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컵라면



여행 갈 때마다 그 나라의 감자칩을 꼭 먹어본다. 짭조름하고 바사삭한 과자의 맛.. 다 똑같을 거 같지만 은근히 다른 맛을 찾는 것이 재밌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며 과자를 먹고 있는데 봉지 안에서 커다란 벌레사체가 나왔다.


'엄마야~~! 이게 뭐야?'


깜짝 놀란 나는 온몸이 얼어붙으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증거사진을 찍어서 당장 신고를 해야 하나? 이미 먹은 감자칩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당장 내일 아침 여길 떠나야 하는데 마지막에 일을 키워서 소란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신고를 한다 한들 이들의 대처가 얼마나 빠를까 하는 의심도 었다. 기본적으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해결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경험이 많았다. 물론 다 똑같은 경우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무엇보다 기본 생활영어만 가능한 아줌마가 긴 영문의 글을 쓸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이 사실을 녀석이 알게 된다면.. 어린 아들에게 여행의 마지막을 안 좋은 기억으로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후... 짧은 시간 동안의 혼돈 속에서 빠져나와 결국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꾹 삼키고 아들이 보기 전에 과자를 접고 한쪽 멀리 치웠다. 과자가 잔뜩 들어있는 봉지를 바로 버리면 녀석의 엉뚱한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으니까..


애써 미소를 지어보며 슬금슬금 자리를 정리했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니 이제 그만 자러 가자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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