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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Jun 14. 2024

여행을 마치며...

Sydney Airport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창밖은 아직 어둠이 깔려있고 가로등만이 거리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머지않아 이 꺼지고 오늘의 태양이 대신하겠지? 짧았던 여행이 끝나고 돌아가야 하는 아쉬움이 가득한 시간이다.


늘 그렇듯 마지막은 쏜살같이 찾아온다. 


서운한 마음을 애써 위로하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 시간을 보기 위해서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시간별로 금액차이가 났다. 교통카드에 남아있는 액을 최대한 다 쓰기 위해 딱 맞는 금액의 시간대를 검색했다. 분단위로 요금이 달라지는 것이 암만 봐도 신기했다. 출발시간을 확인하고 일어나서 분주히 떠날 준비를 했다.


평소 같았으면 번개같이 나가서 조식부터 먹고 왔겠지만 아이가 있으니 챙길 것이 많았다. 공항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기로 하고 조용히 짐정리를 했다.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자 곤히 자고 있는 녀석을 깨웠다. 아침 일찍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들은 다행히 별다른 투정 없이 일어나서 씻고 나갈 채비를 했다.



정말 신기한 것은 집으로 돌아갈 때의 가방은 항상 무겁다는 것이다. 분명 떠나올 때도 한가득 짐을 싣고 왔는데 왜 돌아갈 때가 더 무거울까? 가져온 짐에서 사용한 만큼 채워 넣었지만 돌아가기 싫은 마음이 함께 실려서 유난히 무겁다고 생각되는 게 아닐까?


무사히 체크아웃을 마치고 나왔다.


바깥공기는 상쾌했다. 동트기 전 거리의 모습은 고요하지만 생기가 넘쳤다. 하루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간간이 눈에 들어왔다.

떠나는 아쉬운 발걸음


호텔을 왔다 갔다 할 때마다 항상 지나쳤던 시청사가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이곳에 또다시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자 유난히 발걸음이 떼지지 않았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조금만 더 이 아침을 만끽하고 싶었다. 여행의 수분을 잔뜩 머금고 무거워진 캐리어도 한몫한 거 같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캐리어를 억지로 끌고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익숙한 길을 따라 지하철역으로 갔다. 우리가 가야 할 플랫폼부터 찾았다. 이런! 눈앞에는 엄청난 계단이 있었다. 저길 다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때 기차가 들어온다는 신호가 울렸다.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아들이 후다닥 뛰어 올라갔다. 저 멀리서 기차가 들어오고 있는 것을 목격한 녀석은 빨리 올라오라며 손짓했다.


'그, 그래.. 나도 빨리 올라가고 싶다고.. 그런데 이 놈의 가방이 말썽이지 뭐니.. 눈치 없이 빨리 올라가 버린 아들아.. 엄마를 위해 금 들어오고 있는 기차를 좀 잡아주고 있겠니?'


온몸에 힘을 주고 낑낑거리며 돌덩이 같은 캐리어와 씨름하고 있을 때, 배우 '사이먼 페그'를 닮은 멋쟁이 신사 아저씨가 다가와 재빠르게 캐리어 손잡이를 낚아채더니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아.. 저.. 감사하지만 이게 엄청 무거워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저씨가 가방이 꽤나 무겁다며 특유의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그러니까 가방이 무거우니까 같이 들자고요.."라 말하고 있는데 아저씨는 쾌활한 웃음을 남긴 채 초인의 힘으로 캐리어를 들고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갔다.


와.. 우...!!


마지막까지 친절한 호주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다. 진심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아들이 잡아 놓은 기차를 탔다. 혹시나 기차를 놓칠까 긴장감이 더 컸 녀에게 이럴 때는 다음 기차를 타도 좋으니 함께 짐을 들고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어린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창밖으로 마지막이 될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체크인 카운터로 가서 무거운 캐리어부터 해결했다. 이제야 두 팔이 자유로워진 나는 몸과 마음이 솜털처럼 가볍다. 아침식사를 꼭 해야 하는 우린 천천히 먹을 것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눈에 띄는 반가운 것이 있었으니.. 바로 '초밥'이었다.


외국에서 만나는 초밥은 각별하다. 런던에서 유명한 프랜차이즈 초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주 먹었었다. 아! 아르바이트생에게 할당된 음식은 볶은 음식 메뉴였고 초밥은 내돈내산이었던 거 같다.


윤기도 없는 딱딱한 쌀밥에 커다랗게 올라간 생선 덩어리가 참 맛이 없다. 하지만 그 특유의 맛이 매력 있어 계속 사 먹게 되는 것 같다. 자주 먹던 그 맛이 그리워서 한팩 집어 들었다. 초밥은 아들도 좋아하는 음식이다. 간장소스를 찍어서 맛있게 먹다.


이제 탑승하기 전까지 할 일은 남은 잔액 털기다. 늘 그렇듯 동전 하나까지 탈탈 털어서 지갑을 비워야 한다. 어차피 가지고 가봐야 무용지물 기념주화가 될 것이다. 천천히 면세구역을 살피며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골랐다. 계산을 하려는데 직원이 아들에게 잘생겼다며 초콜릿을 선물로 건넸다.

초밥엔 칼피스~!


뭐지? 얼마 이상을 사면 사은품으로 주는 건가?

그러기엔 너무나도 특별한 선물을 주는 듯 서랍에서 꺼내서 가지고 왔는데..


이유가 어떻든 간에 기분 좋은 선물을 받은 아들은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친절을 베푼 사람들 덕분에 호주에서 아들과 보낸 여행은 평생 '행복'으로 기억될 것이다.



예전에 '딸과 둘이서 유럽여행을 하는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결혼도 하기 전이었지만 엄마와 어린 딸의 여행기가 단란하고 보기 좋아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 후로 나도 모르게 어린 자녀와 함께 하는 여행에 대한 로망을 꿈꾸고 있었 모양이다.


그래서였을까? 어린 아들과 겁도 없이 여행길에 올랐다. 현실은 안타깝게도 책 속의 이야기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또 다른 녀석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런 아들을 대하면서 한 단계 성장한 나의 모습을 만나게 되었다.


막연한 생각으로 거침없이 저질렀던 여행이다.


운 좋게 2년 연속으로 아들과 함께 한 둘만의 여행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세 번째 여행지였던 런던행은 코로나 여파로 안타깝게 무산되었지만, 언젠가 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오지 않을까?

 

기약 없는 여행을 매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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