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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Oct 04. 2024

마지막은 언제나 런던에서

London


Victoria Station, London


런던에 왔다. 기차역에서의 수많은 추억들이 머릿속을 오고 갔다. 영국에 왔으면 대도시에서 한 번은 살아봐야지 않겠냐며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지냈던 곳이다.


따뜻했던 브라이튼과 달리 런던에서의 생활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결코 만만치 않았던 도시에서의 삶은 묵직한 생채기를 남겼지만 지나고 나니 이 또한 아련한 추억이더라.



길었던 여정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캐리어는 어느새 공간이 꽉 차있었다. 무거워진 짐보따리를 끌고 마지막 숙소로 향해본다.


 토닥 톡 톡...


지금까지 한 번도 내리지 않던 비가 런던에 오니 반갑다고 인사한다. 하...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예전 같았으면 이까짓 비쯤이야 하며 티셔츠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쓰고 걸었겠지만 이미 오래전 외국물이 빠져버린 지금은 다르다. 미리 준비해 온 우산을 펼쳐 들었다.


끝없이 펼쳐진 큰길을 따라서 계속 걷고 있는데 도무지 숙소가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 걸었으면 벌써 나오고도 남는데 이상하다. 주변을 살펴보니 두 블록이나 더 지나와 있었다. 이런.. 자신 있게 펼쳐든 우산에 가려서 이미 지나온 숙소 간판을 못 보고 지나친 것이다. 차피 금방 그쳐버릴 비였는데 거추장스러운 우산을 꺼내서 난리를 떨었나...


마지막 숙소는 옥스퍼드에서 지냈던 호스텔과 같은 회사의 유스호스텔이다. 물가가 높기로 악명 높은 런던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지내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체크인을 하고 모든 짐을 맡겨버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다. 


익숙하게 '옥스퍼드 스트리트(Oxford St.)''리젠트 스트리트(Regent St.)'를 넘나들며 평일 오후를 즐겼다. 좁은 강물에서 헤엄치다가 넓은 바다를 만나 해방된 물고기의 기분이 이런 걸까? 조용했던 시골을 벗어나 도시에 니 모든 긴장의 끈이 풀려버렸다.


오랜만에 보는 건물과 거리의 상점들이 눈물 나게 . 변치 않은 거리를 걷고 있자니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여행 내내 함께 했던 과거의 '나'가 있어서 외롭지 않다.



빠질 수 없는 랜드마크
in London


어느 곳을 여행하든 랜드마크는 꼭 찾는 편이다. 이미 미디어와 책에서 많이 소개된 곳들을 굳이 찾아가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대중화되고 사랑받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미 많이 알려졌지만 실물을 직관하고 그것이 어떠한지를 판단하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꼭 가봐야 하는 곳들은 놓치지 않는다. 마음에 면 몆 번이고 다시 찾기도 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이 있는 곳이 '랜드마크'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빅벤(Big Ben)'을 찾아갔다. 맨 처음 런던으로 여행 왔을 때 가장 먼저 달려온 곳이 바로 '국회의사당(Palace of Westminster)'이었다. 한 고딕양식 건물의 북쪽 끝에 이 솟은 시계탑이 예술이다. 때마침 울려 퍼진 종소리가 환영의 인사로 들렸다. 깊고 성대한 울림소리가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일정 시간간격을 두고 계속 종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스트민스터역을 빠져나가면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던 장대한 빅벤의 빼어난 자태와 함께 귓가를 간지럽힌 종소리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었다.


템즈강을 가로지르면 런던의 또 다른 상징인 '런던아이(London Eye)'를 만날 수 있다. 빙글빙글 느리게 돌아가는 관람차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학생 신분으로 비싼 관람차는 사치였다. 언제가 꼭 타봐야지 하던 것이 아직까지 미뤄지고 있다. 또다시 기회가 주어졌지만 템즈강변을 따라 걷는 것을 택했다. 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걷기에 최적의 날씨를 선사한 덕분이다.


강을 끼고 계속해서 걷다 보면 언젠가는 '타워 브리지(Tower Bridge)'를 만날 수 있다. 약 1시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지만 날 좋은 날이라면 충분히 걸어볼 만하다.


가는 길에 공원, 갤러리, 행위예술 하는 아티스트, 거리의 악사 등 시선을 빼앗을만한 구경거리가 한가득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 특색 있는 다리들을 구경하는 것 역시 재미있다. '테이트 모던(Tate Modern)'과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을 이어주는 '밀레니엄 브리지(Millennium Bridge)'는 꼭 한번 가봐야 하는 아름다운 현수교이다.


혁신적인 디자인을 자랑하는 교량은 개통 당시 문제가 있었지만 보수공사를 통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밀레니엄이 주는 이름처럼 새천년을 앞두고 지어진 다리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인트 폴 대성당과 대비되는 미래지향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런던 필수코스
박물관 투어


런던여행은 늘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에서 시작된다.


중심지이기도 하고 다양한 관광지로 뻗어가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에는 유명한 '내셔널 갤러리(The National Gallery)'가 있다.


서양화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시대별로 전시관이 나뉘어 있어서 보고 싶은 그림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림을 잘 모르지만 인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 선명하고 투명한 색채가 특징인 '르네상스' 우아하고 호화로운 '로코코'를 좋아한다.


가만히 서서 그림을 바라보면 그 안에 살고 있는 인물과 대화하는 기분이 든다. 화창한 봄날의 배경 속에서 미소 짓고 있는 그녀들을 볼 때면 당시 어떤 분위기였는지 엿볼 수 있다. 그 시대의 화려한 옷감 보다 더 정교하고 섬세하게 표현돼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전체적으로 영롱한 색감은 인물을 한층 입체적으로 보이게 한다.


하루 안에 약 2,600여 개 이상의 작품을 감상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런던에서 지내면서 수시로 찾은 곳이 내셔널 갤러리다. 여기서 고민을 해결하고 때론 마음의 위안을 받았었다.


마지막으로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감상했다.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오랜 시간 동안 빛을 내고 있는 만인이 사랑하는 작품이다. 행복했던 시절 고흐의 영혼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해바라기를 볼 때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노란색 배경에 노란 해바라기...


아를을 온전히 품고 있나!


다음으로 바로 옆에 있는 '국립 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을 찾았다. 신기하게도 런던에서 지내는 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다. 영국 저명인사들의 초상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하지만 커다란 눈동자들이 사방을 메우니 누군가 계속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 번도 찾지 않은 데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다시 빅토리아 역.


스코틀랜드에서 함께 했던 J와 만났다. 며칠 만에 보는 거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 반가웠다. J가 런던에 오니 길고 길었던 이번 여행의 끝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숙소로 가서 체크인을 하고 같은 방으로 배정받았다. 짐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우리의 뮤지엄 투어가 시작됐다.


과학박물관,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 제프리 뮤지엄 등 던 시내에 있는 박물관들을 모조리 찾아다녔다. 몇 번을 가도 새 흥미진진하다.


학교에서 단체로 견학 온 아이들이 모여 앉아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열심히 적고 있다. 유물과 전시물들을 직접 보고 체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릴 때부터 문화와 역사를 자연스레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정말 좋아 보였다. 게다가 모든 것이 무료지 않은가?


미술관을 다니다 보면 종이를 펼쳐 들고 빠르고 진지하게 스케치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처음 보는 낯선 모습에 깜짝 놀랐었다. 아무 때나 와서 명화를 직접 보고 그릴 수 있다니! 최고의 스승은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 유로운 환경에서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다.



지치지 않는 도시
London


이틀 동안 박물관과 미술관 투어를 하면서도 틈틈이 핫플레이스도 방문했다. 던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해롯백화점(Harrods)'을 찾았다. 다른 백화점과 쇼핑몰들은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해롯백화점은 처음이다.


관광객 모드가 켜지니 지나쳤던 장소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입구부터 화려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백화점 내부는 다양한 테마로 꾸며져 있었다. J와 식당 코너에 있는 카페로 갔다. 싱글잔을 시켰는데 작고 귀여운 에스프레소 잔에 마끼아또가 소담스레 담겨 나왔다. 


£4.75

비싸다. 그동안 다니지 않았던 것에는 나도 몰랐던 이유가 있다.


럭셔리했던 백화점 투어를 마치고 코벤트가든으로 향했다. 마음이 평화롭다. 런던 속 작은 핫스폿 '닐스 야드(Neal's Yard)'를 찾았다. 역시 숨은 곳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찾은 닐스 야드는 생각보다 별로였다. 좁은 공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알록달록한 풍경은 사진으로 보기에 충분했다. J와 런던 곳곳을 누비며 쉬지 않는 수다로 풍경이 상대적으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으로 가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1층 공간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바이올린, 첼로 등 악기연주와 함께 성량이 풍부한 남자의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익숙한 곳에 오니 마음이 편해졌다.


런던 곳곳을 누비느라 출출해진 우린 한국음식이 그리운 J와 함께 한인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짧은 기간 여행을 다녀도 생각나는 것이 한국음식인데 오랜 시간 동안 외국 생활을 하다 보면 더욱 그리울 것이다.


J는 아주 오랜만에 먹어보는 고춧가루 팍팍 들어간 김치찌개에 감탄했다. 고향의 맛이 전해진다며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옛 추억에 잠긴 두 여자의 수다는 마지막 코스인 Pub에서까지 이어졌다. '레스터 스퀘어(Leicester Square)'에 자주 가던 Pub을 찾았다. 그 시절 그대로 모든 것이 여전했다.


늘이 지나면 J는 다시 떠나야 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풍요롭고 알찬 여행을 했다. 타향살이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J와 또다시 이번 여행의 처음과 끝함께 보내니 감회가 새롭다.


When a man is tired of London,
he is tired of life.

- Samuel Johnson -


지치지 않는 도시. 매력이 넘치는 도시!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런던은 에너지가 넘치는 활력 발전소와 같이 더 이상 회색빛이 아닌 긍정 가득한 오렌지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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