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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Oct 18. 2024

여행은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해.

Lucy in London

매일같이 출근하고 있는 빅토리아 역으로 가는 발걸음이 오늘따라 유난히 통통거린다. 


"Julie!!!"


"Hellooo~~ G~~~ irllll~~!!!"


두 여자가 역 한복판에서 부둥켜안았다.

Lucy가 런던에 왔다. Phew~~!!!



Who is she?


브라이튼에 어학연수를 와서 첫 등교 날 Lucy를 처음 만났다. 반 배정을 받기 위해 모여서 시험을 봤었다. 외국에서 온 친구들도 있었고 한국에서 온 친구들도 있었다. 입학동기라는 공통분모로 우린 금세 친해졌다.


반배치고사가 끝나고 간단한 식사자리에서 친목을 다진 뒤 각자의 집으로 갈 시간이 다가왔다.


"언니~~~! 어떻게 해요? 버스를 타고 집에 가야 하는데 어디서 내리는지 모르겠어요."


Lucy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긴 파마머리에 뾰족한 턱선이 매력적인 아이다.


이틀 먼저 도착해서 동네 지리를 어느 정도 익혀놨다. 아래층에 나와 같은 어학원에 다니고 있는, 콜롬비아에서 온 친구가 살고 있다며 홈스테이 마더의 소개로 다행히 학원까지 같이 왔다. 집이랑 가까워서 충분히 걸어서 다닐 수 있었던 나와 달리 Hove에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 Lucy는 바로 어제 도착해서 늘이 첫 외출이었다.


"몇 번 버스 타야 하는지 알지? 내려야 하는 역 이름이 뭐야?"


수심이 가득한 Lucy를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다. 


수능용으로 영어공부를 해 온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영어는 사람의 눈을 마주 보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 길고 지루한 지문 속에서 핵심 어휘만을 쏙쏙 낚아채는 ''이라는 것을...


'단순하게 생각하자. 그냥 단순히 길을 묻는 거야... 아주 자연스럽게... 그런데... 역에 도착하면 알려달라는 말을 어떻게 하는 거지?'


Lucy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머릿속으로 무수히 많은 문장들을 떠올리고 조합해 봤다. 아주 기초 생활영어 정도만 알고 온 나 역시 모르는 사람에게 길을 묻는 것이 긴장되는 일이었다. 몹시 떨리는 마음을 감추며 애써 태연한 척했다.


버스가 도착하자 달달달 떨리는 목소리로 드문드문 단어들을 내뱉었다.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버스기사아저씨에게 역이름을 얘기하고 이 친구에게 알려달라고 손짓발짓 한 것 같다.


그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다음날 저녁 펍에서 다시 만났을 때, Lucy의 레벨이 'Advanced'이고 현지인도 감탄할 정도로 좋은 발음으로 유창하게 영어를 잘하는 아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이 아이는 일본어까지 능통했다.


그렇다!! 


나는 영어는 잘 하지만 용기가 없어 말을 못 하는 친구를 위해 오지랖 떨며 하지도 못하는 영어와 바디랭귀지로 대신해서 도움을 줬던 것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


그 뒤로 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Lucy와 나는 나이를 넘어선 절친이 되었다.


어학원을 졸업하고 브라이튼에서 대학을 다니는 Lucy는 이틀밤을 꼬박 새워 맡고 있던 프로젝트를 끝내자마자 내가 있는 런던으로 달려왔다.



We're in London


"배고프지? 뭐 좀 먹을까?"


감격적인 상봉을 뒤로하고 자연스레 빅토리아 역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우리의 밀린 수다는 끝이 없었다. 아주 오랜만에 봤지만 과거에 매일 봤던 사이처럼 시간을 거슬러 온 듯했다. 분명 어제도 그제도 왔던 곳인데 아주 먼 옛날 함께했던 시(時空)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가 불러 신이 난 우린 '켄징턴 파크(Kensington Gardens)'로 향했다. 정갈하게 펼쳐진 둥근 연못을 바라보며 잔디 위에 철퍼덕 앉았다. 그 시절 진정 자유로웠던 영혼이 소환됐다. 죽이 척척 맞는 Lucy와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중이다.


에너지 발산을 수다로 내뿜은 우린 켄징턴 궁전을 가볍게 둘러본 뒤 오후의 티타임을 갖기 위해 '티하우스(The Orangery Restaurant)'로 향했다. 학생신분으로 쉽게 가지 못했던 곳을 여행자의 신분으로 방문하게 될 줄이야... 잘 다듬어진 거대한 나무들이 규칙적으로 늘어서 있는 길을 따라 걷는 우리의 설렘지수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하고 있었다.


온통 순백의 하얀색으로 꾸며진 실내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정면에는 각종 디저트가 진열되어 있었다. 과감하게 에프터눈티 세트를 주문했다. 3단 트레이에 콜드 샌드위치와 스콘, 케이크가 담겨 나왔다. 


우리의 로망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맛은... 정말 달다. 동네에서 파는 케이크가 훨씬 맛있었다. 궁전 안에 있는 카페는 비싼 만큼 맛있을 줄 알았는데 대했던 만큼 실망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이탈리아에서 야간열차가 지연되어 차디 찬 플랫폼에서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할 때도 밤새도록 노래 부르며 그 시간을 즐기던 우리였다.


긍정의 대명사였던 우린 아랑곳 않고 차가워서 얼어붙어있는 것 같은 참치 샌드위치를 따뜻한 차로 녹여먹으며 수다를 이어갔다.


"그래서 프로젝트는 잘 끝냈고?"


"응~ 죽다 살아났지 모.. 근데 언니~~! 언니가 아기를 낳은 것이 믿기지 않아.. 애기가 애기를 낳으면 어떻게 해~~!!"


영국에서 지내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로 빵빵 터졌던 우리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현재 지내고 있는 근황 토크로 이어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We will rock you


"언니! 우리 뮤지컬 볼래요?"


"오홋! 나도 그 말하려 했었는데~~!!"


길을 걷던 중 공연장을 본 두 여자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주인공 남자가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들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포스터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Lucy와 처음 런던여행을 왔을 때 같이 본 공연이 '오페라의 유령'이었다. 런던에 오면 꼭 맨 처음으로 봐야지 했는데 생각이 같았던 우린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오페라극장으로 달려갔었다. 취미가 비슷했던 우린 그 뒤로도 종종 뮤지컬 보러 가 했었다.


장 좋은 점은 인터넷으로 수개월 전에 예매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공연이 보고 싶으면 당일 티켓구매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배우의 살 떨리는 표정연기와 흠뻑 젖은 땀방울까지 볼 수 있는 무대중앙과 앞쪽 좌석 늘 누군가에 의해 선점되는 우리의 현실과 달리 자유롭게 선택이 가능하다. 물론 운이 좋아서 갈 때마다 무대 앞쪽 정중앙 좌석이 비어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야무지게 티켓을 구매한 뒤 Lucy가 가고 싶어 했던 '캠든 타운(Camden Town)'으로 향했다. 마켓과 상점들이 밀집되어 있고 패션을 사랑하는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가득한 자유분방함의 대명사이기도 한 곳이다.


스터드 가죽재킷에 찢어진 바지, 뾰족뾰족한 형형색색의 닭 볏 머리를 한 펑크족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림새는 제각각이더라도 스한 봄햇살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다. 그들 틈에 섞인 우리의 얼굴에도 연신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아무 걱정 없이 세상을 즐기던 그 시절로 모처럼 돌아간 소녀들은 거리를 활기차게 휘젓고 다녔다.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를 싣고 하얀 연기가 솔솔 피어올랐다. 마켓이 있는 중심부로 들어서니 고기를 굽느라 분주한 음식점들이 줄지어 늘어서있었다.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작은 운하로 내려가봤다. 건물들 사이로 나있는 물줄기가 낭만적이다.


길을 지나치며 익숙한 옷들이 진열되어 있는 가게가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옷들이 머나먼 도시, 런던에서 팔리고 있는 것이다.


거리에는 차랑 차랑한 액세서리를 달고 역시나 치렁대는 검은색 옷을 걸쳐 입은 자신만의 스타일이 확고한 사람들이 가득한데, 소녀소녀한 퍼프소매 티셔츠와 가녀린 몸매를 잡아 줄 풍성한 스커트가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위풍당당해 보였다.


한편으론 짙은 화장을 하고 화려한 염색머리를 한 사람들이 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상상이 안 가기도 했다. 어쨌든 한국의 패션스타일이 세계 속으로 널리 퍼져나가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정신없이 캠든타운을 누비며 구경하던 우린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차이나타운(Chinatown)'으로 이동했다. 런던에 오면 꼭 한 번씩 들렸던 식당에 가기 위해서이다. 비싼 물가로 외식이 쉽지 않았던 우린 저렴한 가격에 상대적으로 푸짐하게 나오는 식당을 찾아다녔었다.


우연히 발견한 치킨이 푸짐하게 나오는 중국 식당은 우리의 단골집이 되었다. 여전히 소담스레 담겨 나온 치킨튀김이 먹음직스럽다. 디어 아주 오랜만에 그리웠던 음식을 먹게 된 것이다.


젊음을 추억하는 수많은 방법 중 가장 찾기 어려운 것이 '음식'이다. 시도 때도 없이 새로 생기고 없어지고 한자리에서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는 식당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반면 세월이 변함에 따라 맛도 변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아... 예전엔 정말 맛있게 한 접시를 뚝딱 해치웠는데 왜 지금은 먹어도 양이 줄지 않을까? 이 많은 것을 다 먹고도 배고프다며 디저트까지 찾아 헤맸었단 말인가! 기름진 음식이 뱃속을 가득 메우니 조금만 먹어도 헉헉댔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 이제 늙었어요."


"그러니까.. 이게 뭐라고 다 먹지를 못하네."


하하하~~~!! 시간의 숫자만큼 변해버린 몸뚱이에도 즐겁다며 까르르 웃어대는 우리의 마음만큼은 아직 청춘이다.



We will rock you.


공연이 시작됐다. 귀에 익숙한 멜로디의 음악으로 막을 열었다. 몸에 전율이 흐르기 시작했다.  영국의 락 밴드 Queen의 음악으로 만든 잘 짜인 한 편의 뮤지컬은 팍팍한 현실로부터 도망쳐 온 나를 환상의 세계로 데려가기에 충분했다. 신이 나는 노래가 나올 때면 모두가 열광하며 따라 불렀다.


사실 한국에 내한 공연 을 때 크게 재미를 느끼진 못했었다. 관객과의 호흡이 중요한 것처럼 관람하는 분위기 역시 께 보는 사람들에 따라 달라진다.


빼앗긴 음악, 전설의 Rock을 되찾아 세상에 알린다는 다소 심플한 스토리지만 사정없이 불러대는 거장의 노래는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내 안의 혼을 가출시키고 미치광이처럼 공연을 즐겼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자유나!


집을 벗어나 홀로 여행하며 느꼈던 자유로움과 차원이 다른 세계.. 그날 밤 우리는 늦은 시간까지 Rock 'n' Roll을 외쳐대며 인생에서 가장 젊은 순간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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