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족의 고백
서울에 부모님 집이 있는 것은 축복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수도권에 자취하는 친구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요새 부쩍 이 말이 가슴으로 와닿기 시작했다.
'뭐래, 난 자취하고 싶은데...'
갓 대학생이 된 20대 초반의 나는 철이 없었다.
성인이 되면 엄마랑 안 싸울 줄 알았는데, 다니는 학교가 고등학교에서 대학교가 된 것뿐
나와 엄마는 그대로였기에 줄곧 마찰을 빚었다.
부모님의 잔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나만의 공간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싶은 철없는 마음.
다행이랄지 그때의 나는 현실감각이 없었고 돈도 없었어서 자취하는 것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20대 후반에 접어들고... 여러 가지 이유
(직장 출퇴근, 결혼 준비 등)로
진지하게 독립을 고민하게 되면서부터
오히려 '될 수 있는 한 부모님 집에 눌러살아야겠다'라고 결심했다.
그리고 직감했다.
이 안락한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부모님 집에 살고 있는 현재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길어야 1-2년이다.
구체적인 독립 계획을 세워보니 더욱 실감이 났다.
내가 원하는 미래는 부모님에게서의 독립이 꼭 필요하다.
20대 초반에는 철없고 치기 어린 마음으로
'자취'를 하고 싶었던 것이지 감히 '독립'을 생각하지는 못했다.
유유상종인지라 주변 친구들도 비슷한 상황이었고,
'부모에게서의 독립'은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 보건대,
'이 평화롭고 아늑한 생활이 어쩌면 내게 안주의 늪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비교적 성숙해진 마음 상태까지 도달했다.
(아주 기특한 부분이다)
과년한 자식 삼시세끼 챙겨주기 귀찮으실 텐데, 올해 처음으로 눈치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전에는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도(집안일, 생활비 등)
이젠 괜히 머쓱하고 민망해져 집안일이라던가 생필품 구입에 일정 할당량을 책임지고 있다.
부모님과의 남은 동거기간을 애틋하게 생각하게 된 뒤부터
더 이상 엄마와 부딪히는 일은 없었고, 되도록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일까? 요새 너무 행복하고 부모님께 감사하다.
부모님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염치불고하고 말씀드리고 싶다.
저.. 얼마 안 남았는데, 조금만 더 같이 살아요 ^^
[덧붙이는 이야기]
최근에 퇴사하고 부모님께 향후 계획(취업 준비, 결혼 준비)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두 분의 상반된 반응이 웃겨서 추신으로 덧붙여본다.
나 : 저 N 년 안에는 독립해서 결혼하고 싶습니다!
아빠 : 애진작에 했어야지~ 빨리 니 인생 살아라
엄마 : 엄마 외롭고 심심할 것 같은데 어떡하지? 조금만 천천히 가렴...
어떻게 이렇게 다르실 수 있는지..
ㅎㅎ 부모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