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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닝닝하고 밍밍한 Jun 12. 2019

내가 좋아하던 꽃은

- 인생에서 과연 꽃이 필요 없는 시절이 있을까

  예전의 나는 꽃에 대해 조금 심드렁한 편이었다. 꽃다발에 환호해 본 적도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취향 없이, 배려 없이 내가 알지도 못하는 다수의 기호로 버무려진 꽃다발은 마뜩잖다. 내 입장에선 알록달록은 너무 한 거였다.

  이쯤에서 나는 까다롭다는 얘길 듣는다.

  사실 꽃다발을 들고 다니는 것조차 얼굴 벌게질 일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그 흔한 꽃병이 없었다.


  오래전에 프리지어에 열광하던 친구가 있었다. 노란 니트를 입고 노란 프리지어를 들고 다니는, 그 친구의 까다로움 때문에 나는 프리지어에 곧 질리고 말았지만, 너무 흔한 꽃이라서 나까지 좋아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나는 지금의 남편과 연애 시절 땅끝 마을에 간 적이 있다. 그가 땅끝에서 들려준 달달한 말은 왠지 비장했지만, 트렁크에 숨겨온 꽃다발은 흔하디 흔한 붉은 장미와 분홍빛 장미, 그리고 안개꽃 다발이었다. 역시 표준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법인가 보다 생각했었다.


  대학 시절 잠깐 사귀었던 남자의 꽃다발도 마찬가지였다(물론 내 애인이었던 이들은 꽃을 잘 사주지 않는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밝혔으므로). 저녁 무렵 손을 흔들고 헤어지고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학생들을 태우느라 버스는 한참을 정류장에 서 있었다. 올라탔던 쪽 반대쪽에 앉아 밖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와 창문을 툭툭 두드리는 거였다. 간 줄 알았는데, 창문 사이로 꽃다발을 넘겨주었다. 그때 사실 나는 인상이 약간 굳어지며, 조금 당황스러웠다. 사람도 엄청 많이 타고 있는 데다가 그런 식으로 주목받는 건 썩 유쾌한 건 아니었는지라... 그런데 그때 그 꽃다발도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장미쯤 됐을 거다.


  지금이야 수입꽃들이 넘쳐나고 촌스럽지 않게, 넘치지 않게 믹스한 꽃들이 많지만

  그때 내가 좋아하던 꽃은 카라였다.

  

  길고 하얀 카라꽃을 가슴 그득 안고와 꽃병 가득 꽂아보는 것, 우습지만 그게 내가 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내 곁에 바스락거리던 어떤 누구도 나에게 카라꽃을 사줬던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물어보지도 않고 제 멋대로 장미꽃을 안겼다. 한데 뒤섞인 안개꽃은 딱하기까지 했다.


  

  카라꽃을 좋아한다, 고 말하지 그랬냐 라고 한다면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게 내 대답이다.

  그때의 나는 내가 지닌 판타지를 그렇게 쉽게 깨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누구나 연애에 관한 판타지 하나쯤은 키우는 법이니까!). 생각해보면, 그건 내 연애에서 아주 결정적인 말이었다.


  그러나 욕망에 딱 맞는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나는 서둘러 결혼을 했다.

  둔한 수컷들, 이라는 막말을 삼킨 채.




  

  

  한 동안은 이런 꽃들도 유행했다지.

  꽃을 싫어하는 내게 꽃의 효용에 대해 다시금 생각게 했던.


  누군가는 이런 꽃을 보고 낭만과 현실이 적절히 조화되어 있는 참으로 바람직한 선물이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전부 다 돈다발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뭐, 어쨌든.

  이제와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과연 꽃이 필요 없는 시절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싫어했던 건 딱히 꽃이 아니라

  이벤트는 간지럽고 속내를 들키는 건 여전히 낯설어서였겠지.

  

   촌스러웠던 건,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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