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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닝닝하고 밍밍한 Sep 20. 2019

나는 이 동네가 이래서 좋은 것이다

- 날씨 좋은 저녁 무렵이면 옛날처럼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곳

  

  남편의 직업상 우리는 매번 짐을 싸고 풀기를 얼마나 자주 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어딜 가든 오롯이 우리 가족뿐이었다. 어딜 돌아다녀도 아는 사람 한 사람 없는 곳에서 늘 살림을 폈다 접었다 했으니까. 그래서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매달렸고, 온전히 서로의 속도에 기대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다가 만난 이 동네.

  나는 이 동네가 참 좋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곳에 잠정적으로 정착했다.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이제 9년쯤 됐나 보다. 2년 정도 살다가 다른 지역으로 옮기겠지 했던 것이 그리 되었다. 여기에 정착할지는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이 곳에서도 세 번을 이사를 했고, 그러다 집을 사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정착의 꿈도 이루었지 아마.

  

  안정에 대한 욕구가 강했던 나는 여행을 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살진 않았지만 가끔 공항을 끼고 있는 도시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젯밤에도 베란다 창밖으로 비행기가 어두운 하늘을 날아오르는 광경을 보았다. 공항을 끼고 있는 도시에 살다 보니 비행기가 내 머리 위로 낮게 날아다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특히나 비가 오락가락하는 회청색 하늘을 볼 때나 안개가 잔뜩 낀 날엔 공항에 가고 싶다. 그건 아마도 알랭 드 보통 때문일 것이다. 집에서 우울할 때면 공항으로 가 비행기가 끊임없이 뜨고 내리는 것을 보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고 알랭 드 보통이 말했다.



  

  공항이 있다는 것, 내가 이 도시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늘 어딘가로 이륙하는 비행기가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될까마는, 그리고 비행기의 탐스러운 육체와 둔중한 무게, 그가 맡았던 세상의 모든 냄새들이 나는 궁금한 것이 아니라 떠나는 사람들과의 마주침과 긴장, 돌아오는 사람들의 피로감과 초조와 권태를 커피 한 잔이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나와 관련되지 않는 많은 나라와 도시들의 이름이 즐비하게 나열된 곳에서 누군가는 출발하고 누군가는 도착하고 누군가는 배웅을 하는 것들을 별다른 감정의 동요 없이, 피로감 없이 그저 바라볼 수 있는 곳이 공항이다. 나는 방부제처럼 안단테적으로 썩어져 가는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라 그런지 사실 눈을 조금만 위로 올리면 보이는 새로운 풍경과 삶의 질서와 위엄들이 탐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나는 이 도시에서 아이를 낳았고, 두 아이를 길러 냈고, 아이들은 이 동네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어린이집, 지나다니며 보았던 아파트 단지 내 유치원, 산책로를 따라가면 나오는 초등학교를 동네 아이들과 우르르 다니고 있고, 특별한 일이 없다면 초등학교에서 얼마쯤만 걸으면 보이는 중학교에도 입학할 것이다 아마.


이 길의 끝과 끝, 봄의 벚꽃과 여름의 초록잎, 가을의 낙엽, 겨울에 소복히 쌓이는 눈은 길 위에 자꾸 서게 만든다.


  아이들은 이 곳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바람과 해를 맞으며 뛰어놀았다. 여름에는 에어컨, 겨울엔 히터를 피해 밖으로 밖으로만 돌아다니던, 우스꽝스럽게도 늘 땀과 콧물 편에 서있었던, 그러면서 유년의 안쪽을 여기에서 보냈다.

  도시에 살면서도 뉴스에 나오는 최고기온과 최저기온을 온몸으로 맛보며 살았던 것이다. 공항을 낀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내가 우스갯소리로 섬이라고 부르는 이 동네는 한 번 들어오면 좀체 나가기 힘든, 그런 매력이 있는 곳이다 내게는. 게다가 아파트 쪽문으로 난 산책로와 산은 이 동네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가을은 밤과 도토리의 계절이다. 아이들 손에 앙증맞게 주어 들고 내려온다.


  언젠가 이런 글을 썼었다.


  나는 이 동네가 이래서 좋은 것이다.
  앞 뒤가 산이고 가로수길 쭉 뻗은 산책로가 좋고 한갓지고 누가 봐도 시골 같고 적당히 촌스럽고 순박하고 쪼그만 아이들이 많고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고 날씨 좋은 저녁 무렵이면 옛날처럼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곳. 흙 만지고 눕고 자전거와 배드민턴, 이곳저곳 엉덩이 깔고 앉아도 좋은 곳, 늦게 가도 조금 모자라도 괜찮은 곳, 여길 이 동네를 떠나면 또 어디로 갈까 뒤돌아보게 되는 곳.

  


   

  나는 오랫동안 나를 냉소하는 일로 어리광을 부렸었는데, 맞다. 나는 경쟁에 그리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닌 척하고 살았지만, 내 옆을 먼지를 일으키며 뛰어가는 것들을 그저 오래 응시해왔다. 나는 경쟁하는 이들 옆에서 매일 밤 어처구니없는 꿈만 꾸다가 스스로 퀭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동네가 좋은 것이다. 스스로를 낮추거나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곳, 경쟁이 사라진 것 같은 그냥 평범하거나 한심하리만큼 주류에서 멀어진 곳, 내가 무엇을 해도 나에게 특별하게 관심이 없는 곳, 숨어 있기 좋은 곳. 나는 이제야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곳에 십 년 가까이 살게 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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