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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닝닝하고 밍밍한 Nov 05. 2019

추억: 아파트 앤 바이킹

- 내 머릿속에 박제된 어릴 적 추억



현기증 나는 즐거움.

너희들은 언제나 즐겁구나.

너희들처럼 늘 무장해제하면 좋으련만. 




우리 동네에는 간혹 이런 놀이기구가 온다.

'이동식 미니 바이킹'이라고 해야 하나.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의 기막힌 놀이기구에 비해 몹시나 초라하고 사정없이 기구해 보이는 이것 말이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이 트럭에 저 작은 바이킹을 실어 조무래기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 단지들마다 다니며 무고한 아이들을 홀리고 있다. 물론 놀 것이 많지 않은 이 동네 사정상 아이들이나 엄마들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다. 아이들은 바이킹이 오는 날이면 홀린 듯 손에 돈을 쥐고 이 기구 앞으로 몰려든다지. 그곳에서 온 동네 엄마들을 다 만나게 된다. 우리 아이들도 지금보다 더 어렸을 적에는 이 바이킹 앞을 지나치지 못하고 한사코 내 손을 잡아끌어 저 위엄 있는 배 위에 올라앉는 것이다. 뭐라도 된 듯 화사하게 웃어젖히는 아이들 앞에서 나도 돈 몇 천 원에 무장해제되었지만 말이다.


  동네 조무래기들은 좋다고 줄을 지어 탄다. "할아버지 한번 더~"를 외치며 천 원짜리 뭉태기를 할아버지께 바친다. 동전을 짤랑거리며 바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예전처럼 코 묻은 돈이 아니란 말이다. 무튼 다분히 시골 같고 섬 같은 이 고립된 동네에 저런 바이킹이 오는 날엔 동네 조무래기들이 어지간히도 엄마를 졸라서 아파트 빈 공터나 사람이 드문 인도로 몰려든다. 그들은 한 번으로 끝내지 않는다. 한번 더, 한 번만 더, 하며 엄마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간다. 우리 아이들이 더 어렸을 적 1회 2,000원 하던 것이 어느새 1회 4,000원으로 몇 년 동안 가격이 동결되었다. 우리 두 조무래기들도 한 번에 끝낼 리 없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도 가끔 저걸 한 번 타볼까, 싶기도 했었지만 순수에 금이 갈까 봐, 살짝 자제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바이킹을 즐기던 여자였는데! 속엣것이 아주 울컥거리는 게 좋지 아니한가 말이다.


  나 어릴 적에는 동네마다 방방이 왔다.

  원래는 트램펄린이지만 그 누구도 그렇게 부르는 아이는 없었다. 내가 어릴 적 살았던 지역에서는 봉봉이라고 불렀는데 요즘 아이들은 방방이라고들 많이 부르더라. 옛날에는 몰라서도 그랬겠지만 방방만의 감수성이 있었다. 맑은 하늘, 쨍쨍거리는 햇빛, 솜털 같은 구름, 땀을 식히는 바람, 가진 돈만큼의 갈증, 그리고 내가 높이 올라갈 때마다 마주치는 아이들의 시선 같은 것 말이다. 꼭 그렇게 불러야만이 참을 수 없는 몸뚱아리의 가벼움으로 붕붕 날아오를 것만 같았으니까.

  요즘에는 건물 안에 대형 방방이 기가 막히게 잘 차려져 있다. 방방의 사이즈와 종류도 여러 가지일 뿐 아니라 식당과 카페 같은 맞춤 서비스까지 갖춘 부대시설들도 말이다. 한동안은 이런 대형 방방에서 생일잔치를 치르는 것이 유행인 적도 있었고, 어린 자녀들을 두고 있는 엄마들은 이 곳에서 식사를 겸한 모임들도 즐겨한다. 이 대형 방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옛날에 밖에서 바깥공기를 마시며 하늘로 붕붕 날아오르던 그 봉봉이 아니다. 아이들은 놀이터 대신 공기청정기와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있는 실내로 모여든다. 미세먼지와 햇볕과 바람을 피해 요즘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실내 놀이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줄기차게 조르는 아이들을 따라 엄마들도 모여들게 되고 그러다 어찌어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들 '봉봉, 팡팡, 퐁퐁, 콩콩' 등 지역마다 방방의 이름은 다양하게 불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 옛날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우리가 이제 옛날 사람이구나 하고 느낄 정도로 말이다. 방방 하나만을 두고 봐도 아이들의 놀이문화는 눈이 돌아갈 만큼 풍족하고 화려하고 소비자의 특성과 요구에 맞게 무한하게 변한다. 옛날의 봉봉은 주인 마음이었다. 아이들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방방이든 봉봉이든 추억도 확대, 재생산된다.


  추억의 스프링 말은 또 어떤가.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하나 잠시 생각이 많았다.  스프링 말? 리어카 말? 플라스틱 동물 그네? 손수레 말타기?... 내가 어릴 적엔 그냥 그저 말 타러 간다고 했던 것 같다. 말 왔다고, 말 타러 가자고, 그리 말했던 것 같다. 그때도 정확한 용어는 모른 채 그저 타는 데에만 온통 마음이 있었던 거지.

  <응답하라 1988>을 뒤늦게 봤을 때 내가 제일 격하게 공감하며 반가워했던 것이 저 스프링 말이었다. 어렸을 적 저 말을 타 본 이후로 이미지로도 처음 본 것이다. 끄떡끄떡, 쇳소리와 함께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허리를 세웠다가 엎드리며 거칠게 말을 몰았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는 저 말 두 개를 합쳐 놔야 겨우 내 엉덩이가 들어갈까 싶긴 하다. 키가 크거나 덩치가 큰 아이들은 가끔 거부당하기도 했는데, 스프링이 늘어나거나 저 천막 근처로 머리가 뚫고 지나갈 거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아이들도 간혹 있었다. 스프링에 매단 저 말들은 그래서 안전했고,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다 타고나면 다리와 엉덩이가 아프면서도 왠지 속았다는 기분도 잠시 들기도 했다.


  사실 내 머릿속에 박제된 어릴 적 추억들은 저런 것이다. 단순하고 통제 가능하며, 몸을 살뜰히 부딪히는 것들, 기다림이 있는 것들 말이다.


  지금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 아이들조차 특별히 몸을 쓰지 않아도 손가락과 안경 너머로 게임과 유튜브 속을 들락날락 거리며 그들만의 온갖 문화들을 누리고 있다. 내적, 외형적인 이 변화들은 이미 옳고 그르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다르다'의 문제는 온갖 상상을 낳게 하고 몇 차원은 건너뛰는 많은 생각과 방식의 차이들로 범람한다. 이 범람하는 다름을 나는 우리 아이들과 어떻게 넘어갈 것인가, 그저 가끔 생각하게 된다(그래서 이성적으로는 옳고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이동식 미니 바이킹과 같은 저런 놀이 기구들이 오는게 오히려 마음이 놓일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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