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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닝닝하고 밍밍한 Dec 20. 2019

그랬던 허지웅이 사람들에게 손을 내민다

- 순한 맛으로 돌아온 허지웅에게


나는 왜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옆에 있어달라고 말하지 못했나. 나는 언제나 뭐든 혼자 힘으로 고아처럼 살아 남아 버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 인간은 도무지 아무 짝에도 쓸 데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인간은 오래 버틸 수 없다. 오래 버티지 못한다면 삶으로 증명해내고 싶은 것이 있어도 증명해낼 수 없다.

  

  '방송에 종종 불려 나가고 있지만 글을 쓰지 않으면 건달에 불과하다' 고 말한 작가 허지웅의 기사 내용의 일부분이다("망했다고 생각해?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https://news.nate.com/view/20191220n03533?mid=e1200).


  

  최근 허지웅은 혈액암 투병을 했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느꼈던 자신의 감정들을 담담하게 글로 써서 낭독을 했던 모양이다. 이 기사를 보면서 나는 문득 허지웅이라는 사람의 성장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게 허지웅이라는 사람은 늘 냉소적이고 썩소에 익숙하고 어딘가 삐뚫고 불평을 입에 달고 있고 한껏 자존심에 들떠있던, 그러면서도 왠지 엄마 잃은 어린애 같이 절박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예전에 허지웅의 <버티는 삶에 관하여>라는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다. 에세이를 읽으면서 딱 허지웅스럽다고 느낀 글이 있다. 그의 예민하고 신경질적이고 냉소적인 성향을 오롯이 보여주는 글이었다.


병아리스러운, 온통 노랑이다.



  사실 냉소는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편리한 방법 가운데 하나다. 비관과 냉소는 대개의 경우 피폐한 자들의 가장 쉽고 편한 도피처다. 나는 냉소의 영향력 아래 있을 때가 제일 아늑하고 좋다. 글 쓰는 자에게는 냉소적인 태도가 객관성을 담보해 주기도 한다. 뜨겁고 충만할 때보다 냉소적일 때 했던 말과 글이 더 오랜 시간 유효하다. 그래서 나는 곧잘 타인의 진심을 무시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진정성을 주장하는 말들을 무시한다.  
  실제 모든 종류의 '진심'이란 아무 의미가 없는 호소다. 진심, 진정성은 주관의 영역에 있는 것이지 남에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진심을 몰라준다고 세상을 탓할 일도 아니다. 나의 진심은 너의 진심과 다르고 그것의 공존을 중재하기 위해 법과 제도가 존재한다. 나의 진정성이 타인의 반 진정성을 증명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래서 그리도 짜증스럽다. 그들은 386의 평균적인 멘탈리티를 sns에 소개하는 일종의 봇과 같이 느껴진다. 그 선의와 당위, 정의와 상식, 시민의 힘이라는 단어에 매료된 멘탈이 현실을 얼마나 뜨겁고 멍청하게 기만하는지 잘 보여준다. (p. 101)


  그랬던 허지웅이 사람들에게 손을 내민다.

  누구에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던 멍청이 같았던 자신을 고백하며 말이다. 처음으로 그의 진심에 가 닿은 느낌이었다. 그동안 그의 말과 말투, 그의 여러 가지 글들을 읽으면서도 나는 그가 진심을 말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단지 투정 부리는 어린아이 같다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늘 신경질이 나 있었고 곤두서 있었다. 본인에게, 또 세상에게, 진심을 토해내는 유약한 모든 것들에게 말이다. 삐딱하게 불온하게.


  이제 알겠다.

  늘 진심을 말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말하면 본인이 무너질 것 같아서 그냥 그저 빡세게 서 있었던 거라는 것을. 연약한 속살을 보이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는 것을. 그게 자신을 버티고 있는 유일한 정체성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혈액암을 겪으면서 진짜로 살고 싶었던 자신을 만난 것 같았다. 가난했고 슬펐고 외로웠던, 그래서 버티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던 자신을 책이 아니라 그의 입으로. 그가 외면했던 진심을 진심을 다해 말하고 있는 그를 보니 누구에게나 창피를 무릅쓰고라도 말하고 싶은 진심 하나쯤은 마음속에 오래 숨겨두고 있다는 것을 새로이 깨달았다. 내가 그에게 공감하는 이유도 아마 나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마음일 것이다. 나도 버팅기는 일이라면 도가 튼 사람이니 말이다.


  나는 순한 맛으로 돌아온 허지웅에게 괜스레 마음이 쓰였다. 그의 특유의 날카로움에 처음인 듯한 온기를 더 한 그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그의 글의 냉소는 이제 어떤 모습으로 전향할 것인지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더 이상 진실을 꾸미지 않을 그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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