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한 맛으로 돌아온 허지웅에게
나는 왜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옆에 있어달라고 말하지 못했나. 나는 언제나 뭐든 혼자 힘으로 고아처럼 살아 남아 버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 인간은 도무지 아무 짝에도 쓸 데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인간은 오래 버틸 수 없다. 오래 버티지 못한다면 삶으로 증명해내고 싶은 것이 있어도 증명해낼 수 없다.
사실 냉소는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편리한 방법 가운데 하나다. 비관과 냉소는 대개의 경우 피폐한 자들의 가장 쉽고 편한 도피처다. 나는 냉소의 영향력 아래 있을 때가 제일 아늑하고 좋다. 글 쓰는 자에게는 냉소적인 태도가 객관성을 담보해 주기도 한다. 뜨겁고 충만할 때보다 냉소적일 때 했던 말과 글이 더 오랜 시간 유효하다. 그래서 나는 곧잘 타인의 진심을 무시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진정성을 주장하는 말들을 무시한다.
실제 모든 종류의 '진심'이란 아무 의미가 없는 호소다. 진심, 진정성은 주관의 영역에 있는 것이지 남에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진심을 몰라준다고 세상을 탓할 일도 아니다. 나의 진심은 너의 진심과 다르고 그것의 공존을 중재하기 위해 법과 제도가 존재한다. 나의 진정성이 타인의 반 진정성을 증명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래서 그리도 짜증스럽다. 그들은 386의 평균적인 멘탈리티를 sns에 소개하는 일종의 봇과 같이 느껴진다. 그 선의와 당위, 정의와 상식, 시민의 힘이라는 단어에 매료된 멘탈이 현실을 얼마나 뜨겁고 멍청하게 기만하는지 잘 보여준다. (p. 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