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의 첫 출산

<시누이에게 젖을>

by 이상수

훈이가 스무 살 되던 해 봄이 되었다. 할머니는 무엇이 그리 급하신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결혼을 서두르신다. 그러시는 마음이 이해가 된다. 벌써 고희를 넘기셨으니 자손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가 보다. 그렇다 하더라도 손자며느리 될 색시가 열일곱이니 어리다면 어린 나이 아닌가. 하기야 시어머니는 그 나이에 첫 아이를 품에 안았으니 핑계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할머니 의견을 존중하기로 가족들이 뜻을 모았다. 5월 하순 정해진 날에 첫째 아들은 아버지가 혼인할 때와 같은 스무 살의 신랑이 되어 사모관대로 예를 갖추고 신부도 예복을 입고 집안 어른의 진행하는 순서에 따라 어려운 예식을 마쳤다. 신혼여행은 사치로 여기던 분위기라서 그냥 지나가는 아쉬움이 있었다. 다행히 방 둘의 별채가 보금자리로 신혼의 출발을 응원하게 됐다. 조금이나마 색시에게 미안한 마음을 덜게 되어 다행이다. 그러나 짓궂은 신랑 친구들이 새로 사다가 바른 창호지 문창살 사이를 침을 발라 찢는 통에 날이 밝으면 새로 작업해야겠다고 신랑이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싱글벙글이다. 쑥스러운 첫 밤은 얼떨결에 어둠 저편으로 사라졌다.


신혼의 꿈은 너무도 빠르게 지났다. 해가 바뀌면서 군대에 입대하라는 통지서가 훈이에게 날아왔다. 전방에선 북한과 남한의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는 중인데 피할 수 없는 국가의 부름이다. 결혼 한지 갓 일 년이 지났으니 아직 신혼이 이어지는 중이 아닌가. 어린 형수에게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살아야 하는 짐이 되었다. 매부도 제주도에서 훈련을 받고 전방 부대에 배치를 받아 근무 중이다. 누나와 결혼한 매부는 몇 달이 지나 처가가 있는 동네로 이사를 와서 살고 있었으니 시누이와 올케가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는 정이 있으리라. 형은 육군 제2 논산 훈련소에 입소했다. 1953년 5월이다. 황량한 황토 색깔의 운동장에 주말마다 한마당 잔치가 열린다. 훈련병 면회제도가 있었기에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전국 각처에서 아들 혹은 남편 얼굴 한 번 보러 오는 것이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왔기 때문에 여관에서 자고 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돈을 쓰고 가야 했다 하여 논산이 ‘돈산’이라 부르기도 했다. 어머니와 나는 이십 리 넘는 거리를 걸어서 다니는 길이었으니. 둘째, 셋째 형까지 그렇게 면회를 다녔다. 후에 민폐가 있다 하여 면회제도를 폐지하게 되어 내가 훈련받을 때는 옛날의 낭만이 사라지고 말았다. 낭만이라 함은 만남의 기쁨과 웃음 그리고 헤어질 때의 아쉬움과 뒤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던 광경이 그립다는 말이다.


형수에게 첫 출산의 진통이 왔다. 형은 아직 군대 생활 중이었으므로 형수에게 외로운 시간의 연속이다. 다행히 건강한 형수는 집에서 비교적 쉽게 첫아기의 울음을 들을 수 있었다. 예쁘게 생긴 딸이다. 할아버지는 어질 인자를 넣어 인섭이라 이름을 지었다. ‘섭’ 자 돌림으로 첫 번째다. 인섭이가 태어나니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곧바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불리게 되니 너무 젊다. 할머니 되어 임신을 하여 배가 점점 불러오니 며느리 보기에도 눈치가 보인다. 그러나 도리가 없다. 하늘의 뜻이라 여기고 기다려 딸을 낳으니 열 번째로 막내가 되었다.

조카보다 두 살이 늦다. 문제는 엄마에게 젖이 부족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형수, 아니 올케는 먹이고도 넘치는 편이었다. 남는 젖을 시누이가 먹고 고모와 조카가 안 방에 나란히 누워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둘 다 귀엽고 건강하게 자랐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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