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날이면>
사범학교 졸업반이던 둘째 형이 여름 방학이라서 집으로 왔다. 다른 고등학교 학생들은 군인처럼 짧은 머리였으나 형은 굉장히 긴 머리일 뿐 아니라 장발이다. 장발을 단속하던 시절이라면 걸려 제재를 받을 정도이다. 졸업하면 곧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기에 미리 머리카락을 기르도록 허용했나 보다. 후에 졸업앨범을 보면 긴 머리 때문인지 마치 예술가와 같이 멋진 모습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실제로 형은 예능에 재주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문적인 훈련의 기회는 없었는데도 무용을 먼저 익혀 학생들을 가르쳤으므로 인기가 많았다. 교사 강습회가 있을 경우엔 여자 교사가 아닌 형이 오히려 여자 교사들에게 무용을 가르치는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물론 도움을 받긴 했지만 스스로 연구하고 노력해서 얻은 기능이었다. 또 다른 예로 사물놀이 강사로 교사들을 훈련시켰다. 물론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사물놀이는 백지상태에서 배운 지식이다. 우리 마을 사물놀이 패 어른들에게 막걸리를 대접해 드리며 자세히 묻고 노트에 일일이 메모를 했다. 그것을 풀어 3/4, 4/4박자의 표를 만들어 초등학생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게 가르쳤다.
방학되기를 기다렸는데 바쁘게 움직이니 그냥 기다릴 뿐이다. 오랜만에 비가 내리는 날이다. 모처럼 형이 집에 머무르고 있다.
"수야, (나를 그렇게 부른다) 오늘 비가 오는데 물고기 잡으로 가자."
"네, 기다리고 있었어요."
"엄마, 소쿠리 어디 두었습니까?"
"옆 창고에 가면 있으니 찾아 형과 조심해서 다녀와."
나는 소쿠리와 바켓츠를 들고 형의 뒤를 따라나섰다.
다행히 비가 그쳤다. 집에서 나가 큰길을 건너면 곧바로 벼를 심은 논들이 있다. 비가 많이 내렸기 때문에 논의 물들이 도랑을 타고 넘쳐흐른다. 흐르는 곳으로 송사리 떼가 물을 거슬러 위쪽으로 헤엄쳐 올라온다. 형은 바로 그 자리에 소쿠리를 대고 기다린다. 물은 계속 소쿠리를 지나 빠져나가고 송사리는 소쿠리 안에 갇히게 된다. 많이 모였다 싶을 때 소쿠리를 들어 올리면 송사리들이 온몸으로 춤을 추듯 팔딱거린다. 살아있는 생명의 힘을 느낀다. 올라오는 송사리가 뜸하게 되면 다른 논으로 옮기면 된다. 아니면 논 위로 논에 물을 공급하는 수로가 있는데 여기에도 붕어, 참게, 민물 새우 등 물고기가 있다. 이 수로는 금강에서 끌어들인 물을 다시 샛강으로 퍼올리고 그 물을 한 번 더 퍼올려 사방으로 연결된 배수로를 타고 흘러 끝자락에 까지 물을 공급한다. 가뭄 걱정 없이 벼농사를 할 수 있게 했으니 얼마나 귀한 일인가. 또 감사할 일이다. 퍼올리는 물을 따라 물고기들이 함께 올라온다. 배수로 양쪽으로 우거진 풀 사이에 숨어있는 물고기들을 소쿠리로 건져 올리는 재미도 추억의 페이지에 남아 있다. 커다란 바켓츠를 절반쯤 채워 집으로 왔다. 엄마는 매운탕 끓일 재료를 준비하고 계셨다. 호박, 대파, 양파, 고추장, 된장, 방아잎, 무, 감자, 마늘, 청양 고추, 간장, 후추 등 양념도 갖가지다. 작은 야채가게를 옮겨놓은 듯하다.
마침내 엄마표 매운탕이 부엌에서 끓는 중이다. 구수한 된장의 향이 코끝을 끌고 가려 한다. 기다리는 식탁 위에 차려진 매운탕은 어떤 고급 요리와도 바꿀 수 없는 맛이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상에 둘러앉은 가족 모두가 아주 맛있게 먹으며 행복한 오후를 시작했다. 지금의 잣대로는 거의 불가능한 옛이야기라서 아름다운 추억의 일기장에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