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닿는 대로 가르치자

by 이상수

첫째는 건강하게 자라 벌써 아홉 살이 되었다. 글을 깨우쳐야 된다는 부모님의 바람에 따라 상선이는 간이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비록 2년 제이지만 일제 치하에서 만든 교육제도를 따르는 길이 된다. 말하자면 초등교육 기초에 관한 법에 따라 주로 농촌지역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부족한 교육시설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정책인 것이다. 나름대로 수신, 일어, 국어, 산술, 직업 등 5과목을 가르쳤다. 선이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부지런히 즐겁게 다녔다. 숫자를 헤아리며 책을 더듬거리며 읽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기만 했다. 둘째인 훈이는 누나와 다른 소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학생이 둘이다. 누나와 선의의 경쟁을 하니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기대한다. 소학교는 후에 국민학교,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첫째 선이를 제외하고 아홉은 같은 초등학교 졸업생들이다. 입학식 때마다 어머니께서 손잡고 참여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들에서 흙과 더불어 머무는 시간이셨으니 다른 가정과는 사뭇 별난 그림이었다. 학용품 준비비, 수학여행비, 등록금, 용돈 등 모든 경비는 어머니 주머니에서 해결되니 이 또한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선비정신으로 사는 아버지라서 그랬을까?


큰 누나는 간이학교를 마치고는 부모님을 도와 집 안 일을 해야 했다. 농사일은 물론 2-3년 사이로 태어나는 동생들을 할머니를 도와 보살피는 과제도 있다. 선이 누나는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일군이었다. 훈이 3학년이 되었다. 둘째 형 하가 입학하는 날이다. 어머니는 둘째의 손을 잡고 셋이서 학교로 향한다. 첫째는 앞쪽에 섰었는데 둘째는 키가 큰 편이라서 뒤편 줄에 서 있다. 담임선생님에게 인사하고 어머니는 곧 집으로 돌아왔다. 셋째 딸이 엄마 젖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몸으로 해야 할 일인 너무 많아 걱정스러울 때도 더러 있음이다. 셋째 아들 배가 네 살이니 엄마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떼를 쓸 나이가 아니겠는가. 할머니와 큰 누나의 몫이 실력을 발휘를 할 때이다. 둘째 누나 순은 2년이 지나면 학교에 들어가게 되니 '혼자서도 잘해요' 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아침 식탁에는 열 한 식구가 둘러앉아 감사의 빵을 나누게 되니 복된 하루의 시작이 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도시락을 싸면서 어머니 고생이 더 어려워짐을 보게 된다. 도시락도 하나가 아니라 둘, 세 개를 준비하니 정말 힘든 일이었다. 훈이가 졸업을 하면서 순이의 입학식을 준비하던 해 넷째 아들 수가 태어났다. 훈이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동생들을 위해서도 그리해야만 했다. 법원의 심부름하는 일을 위해 취직을 했다. '소사'라고 부르는 직책이다. 중학교 과정은 강의록으로 공부하기로 했다. 낮에는 출근하여 근무를 하고 밤에는 강의록으로 열심히 읽고 또 읽었다. 다른 친구들이 중학교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것이 부럽기도 했으나 훈이에게도 가슴속에 타오르는 꿈이 있었다. 둘째 형이 국민학교 3학년, 둘째 누나는 2학년이 됐다.


1945년 8월 15일 대한독립만세.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전국에 넘쳐흐르는 해방의 감격과 기쁨이 온누리를 감싸는 뜻깊은 날이다.


셋째 형 배가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처음 학교 가는 날은 하와 순과 함께 하니 네 식구가 행진하는 중이다. 보기에 좋다. 어머니 보기에도 흐뭇한 눈길이다. 둘째와 달리 배는 작은 편이라 앞 쪽 줄에 서 있다. 바로 옆집 경모는 키가 크기에 아주 뒤쪽에 자리가 배치되었다. 담임선생님 얼굴이 낯설지가 않다. 기억을 되돌려 보니 바로 첫째의 담임이셨던 Y 선생님이다.

"선생님. 반갑습니다. 이번에는 훈이 동생입니다." 인사를 했다. "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넷째 딸 흰 4년이 지나 태어났고 2년 후에 아들로 다섯 번째 국이 세상의 빛을 보았고 열 번째로 막내딸인 실은 4년 후에 조카 보다 2년 늦게 태어나 젖이 부족하여 드문 일이지만 올케의 젖을 조카와 함께 먹으며 성장했다. 훈이는 땀 흘리며 노력한 결과 1년 6개월 만에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 주변에서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칭찬을 해줬다. 가족들도 기뻐했다. 이에 멈추지 않고 고등학교 과정에 도전하기로 하다. 둘째는 중학교에 진학을 했다. 셋째 누나가 입학식에 어머니와 함께 했고 2년이 지나 넷째 아들인 내가 어머니 손을 잡고 입학식에 참여하니 만 여섯 살로 생일이 2월이라 작은 키였다. 맨 앞줄이 내 자리다. 1950년이었다. 6.25 전쟁이 일어난 해인지라 피난길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공부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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