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형은 이른 아침부터 자꾸만 밖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다. 지금은 겨울방학 때라 집에 머무르고 있는 중이다. 형은 일주일 전에 치른 사범학교 시험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합격자들에게는 전보로 알린다는 학교 방침이다. 나름대로 크게 실수한 부분이 없었으므로 기대는 하면서도 초조한 마음이 더해간다. 잠시 후 자전거 벨 소리에 이어 '전보'가 왔습니다. 하는 우체부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울러 내용을 크게 읽는다. "축하합니다. 이상하 합격" 대전사범학교. 부모님을 비롯 가족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평소 말씀이 없으신 아버지께서도 "수고했다." 하면서 격려를 해주셨다. 300 여 세대 모여 사는 시골 마을에서 생긴 일이니 흐뭇한 얘기다.
입학생들을 처음 소집하는 날 엄마는 형을 따라 학교에 갔다. 강당에 모인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앞으로의 계획과 주의사항에 대한 내용들이 주어진 인쇄물에 따라 전달되었다. 엄마가 함께한 이유가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기에 자취하게 하려고 방을 구하러 왔다. 한국방송공사 대전방송국을 조금 지나 달동네가 있다. 학교까지 걸어서 가기에 멀다는 느낌이다. 엄마는 형이 편하게 생각하는 방을 하나 정하고 3월부터 사글세로 약속했다.
쌀 10kg을 담은 자루를 머리에 이고 밑반찬 보따리를 한 손에 든 어머니. 기차역이 있는 곳까지 십 리의 거리를 걸어야 한다. 머리 위 쌀 무게에 작은 키가 더 작아 보인다. 하지만 일에 밀려 아들 혼자 밥은 제대로 먹는지 궁금하기만 하여 모든 일들을 잠시 접고 시간을 내었다. 머리 위에 쌀도 무거운 줄도 모르고 가볍게만 느껴진다. 마침 학교 공부가 하루 쉬는 날이 되어 지난 주말에 내려왔을 때 미리 약속한 날이다. 역에 도착하니 대전으로 출발하는 열차 시간이 십 분 여유가 있다. 차표를 구입하고 잠시 기다리니 역무원이 플랫폼으로 안내를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대합실을 빠져나온다.
잠시 후 요란한 기계소리를 내며 열차가 들어온다. 차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머리에 이고 온 쌀자루는 의자 밑에 두었다. 옆과 앞자리에도 엄마와 비슷한 나이의 아주머니들이 앉았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지만 어쩌면 닷새마다 열린 장터에서 만나 인사했던 일도 있음 직한 정이 흐른다. 서로 어느 동네에서 살고 있다. 오늘 아들, 딸 보려고 대전에 가는 길이다. 흔히 오고 가는 이야기들이다.
"그래 키가 작은 어머니는 무슨 일로 가는 거요." 엄마에게 묻는다.
"우리 둘째 아들이 사범학교에 다니는 데 혼자 자취를 하고 있어 한 번 찾아가는 겁니다."
"그러시군요. 장한 아들입니다." 엄마에게 질문했던 앞자리 아주머니가 부러운 듯 바라본다.
"그러게요. 장한 엄마입니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도 칭찬의 말을 한다. 엄마는 아들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네'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숨겼다.
오전 열 시가 조금 지나 대전역에 도착했다. 역광장에 나오니 기다리고 있던 아들이 반갑게 "엄마"를 부르며 다가온다. 머리에 이고 온 쌀부터 받아 든다. 무거운데 어떻게 갖고 오셨어요. 엄마는 굳이 괜찮다고 하신다. 오늘은 엄마와 함께 걷기로 했다. 조금은 먼 거리다. 달동네라고 불리는 비교적 싼 방을 구했기에 학교까지도 꽤 시간이 걸린다. 자취방 주인 내외와도 인사를 했다. 인상이 좋은 사십 대 초반으로 내외가 지난번보다 약간 보기 좋게 살이 붙은 얼굴로 넉넉하게 보였다.
"제 아들을 돌봐주신다니 감사합니다." 하는 엄마의 말에 집주인아주머니는
"학생이 착해서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하며 엄마를 안심시킨다.
엄마는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아들이 직접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다. 갖고 온 된장으로 찌개를 끓이는 냄새가 방 안까지 젖어든다. 그야말로 애호박을 넣어 끓인 엄마표 된장찌개다. 김에다 생선도 구우셨다. 형에겐 진수성찬이 아닐 수 없다. 마주 앉은 점심식탁은 그림을 그려도 보기에 너무 좋은 모습이다.
"엄마, 고맙습니다."
"아들. 아들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워." 점심식사를 마치고 엄마는 곧 역으로 나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