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다섯째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by 이상수

중학교 졸업반이 된 다섯째 아들이 늦은 사춘기가 시작되었나? 엄마 말씀이라면 순한 양처럼 온순하기만 했는데 뭔가 모르게 엇박자가 있음을 느꼈나 보다. 2학기 중간 어느 날 엄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아무래도 막내가 학교에 가지 않고 엉뚱한 일을 하는지 염려스럽다."는 것이다. 분명 도시락을 가방에 넣고 시간에 맞춰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고 오후에는 "학교 다녀왔습니다." 어제 하던 대로인데 느낌이 다르고 아들도 시선을 피하는 어색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가까이하는 친구들에게서 어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결석하고 엉뚱한 곳에서 놀다 도시락을 먹었다. 오후도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하늘만 바라보며 흩어지는 구름만 쫓다 공부 끝날 때쯤 집으로 왔다. 하루를 보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그런 용감한 동생이 아닌 것을 알기에. 나는 나의 의견을 말씀드렸다. 먼저 다른 가족들에게도 일절 알리지 않도록 했다.

"엄마. 절대 모르는 척 지나가세요. 아들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곁에서 지켜보고 계시면 됩니다."

"자기의 길은 자기가 결정할 일이니 너무 예민하게 하지 않음이 좋습니다."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엄마가 계신 부엌을 향해 보고하고 어색한 얼굴 표정을 엄마가 볼 수 없어 다행이라 여기며 서둘러 방으로 들어간다.

"응. 수고했다. 쉬어라." 엄마의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가 작은 골방으로 숨어버린 동생에게도 메아리 되어 되돌아 나오면 좋겠다.


긴 방황의 끝은 졸업으로 정리가 되었다. 함께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숲 속에서 뒹굴던 또래들도 흩어지니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저마다 느낌은 다르겠으나 소꿉놀이 같은 유치함이 묻어나는 시간등이었음을 생각한다. 그냥 웃음이 난다. 하나의 성장과정으로 겪어야 하는 아픔이라면 더 큰 상처 없이 통과하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당연히 고등학교는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학교로 진학하는 것이 순리라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기차로 통학할 수 있는 공업고등학교를 선택했다. 물론 혼자 결정한 것이다. 이제 오히려 내가 걱정이 되었다. 한 발자국 멀어진 거리감 때문이라 여겨진다. 기차를 타려면 역까지 30여 분 걸어야 하는 시간도 있다. 중간에 스스로 자신을 관리해야 한다. 고등학교 3년을 개근하고 졸업 때 상으로 거울을 받은 나를 돌아보며 다섯째가 탈없이 3년 과정을 마쳤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이미 나는 따로 분가하여 갈 길을 가고 있었다.

문제는 그 누구의 통제를 받지 않고 생활하는 데 있다. 물론 학교에 가면 당연히 선생님과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규제를 받으며 지내야 하니 억지로라도 지켜야 함은 당연하다. 틀에서 벗어나 혼자 있을 때 어떤 자세로 자신을 통제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생은 넘어지고 일어서가를 반복하면서 잘 견디었다. 여러 차례 위기도 겪으면서 버티어 마침내 3년 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했다.


다섯째의 배움은 여기까지다. 자원하여 군에 입대했다. 우리 가정에서 다섯 번째 입대한 셈이다. 언젠가 언급했듯이 위로 세 형들의 훈련병 시절은 면회 제도가 있어 주말이면 부모님 따라서 형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으나 지금도 형들의 군번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면회를 신청할 때마다 군번을 적고 아름을 싸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입력이 된 것이다. 그 후로는 제도가 사라져 그리움을 안고 가슴에 숨겼다가 첫 휴가 때 풀어놓게 되었다. 막내는 잘 견뎌내고 전역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몇 달이 지났을까? 교도관 시험에 합격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나는 전화를 연결하여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다섯 째는 지방에서 근무게 되었다. 한 번은 내가 알고 있는 청년이 제방에 목줄이 달린 다른 사람의 염소를 끌어다가 팔아넘긴 실수로 동생이 근무하는 곳에 수감되었다. 그 친구 면회를 갔다가 정복을 입고 근무하는 동생을 보니 지난날들이 그림이 되어 펼쳐진다.


이제는 가정을 이루고 남매를 둔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며 사는 성실한 모습을 보여 준다. 공무원의 한 사람으로 책임을 다하고 있다. 무엇보다 부모님 걱정하는 짐을 보내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이 또한 작은 효도라 할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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