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한 살에 한글을

by 이상수

넷째 아들인 내가 성직자가 되려고 신학교를 지원하였다. 나의 진로에 대하여 관심을 별로 갖지 않던 형제들은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누나들은 관망하는 입장이었다면 반대하는 의견은 형들 쪽이었다. 일반 대학으로 방향을 돌리면 지원을 하겠지만 끝내 고집하면 도와줄 수 없다는 얘기다. 시대의 흐름도 어려웠던 때다. 결혼 상대자로 성직자는 순위에서 밀려 뒤 쪽에 헤매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신학교를 선택했다. 말씀도 없이 지켜보던 엄마의 도움으로 마침내 등록을 하기에 이르렀다. 뿐만 어나라 엄마는 아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길이라면 교회에 등록하는 게 좋으리라는 판단이 들었다며 곧 나와 함께 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아버지는 그런 엄마가 이해가 안 되었다. 우리 가정에 교회와 인연이 된 시작은 이미 출가한 둘째 누나부터이다. 둘째 누나는 제일 가까운 옆 집에 살고 있던 <경자>라는 친구와 우리 가족은 모르게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들켜 매를 맞기도 하고 혼나기도 했으나 포기하지 않고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결혼을 해서 남의 식구가 되면서 내가 이어받은 결과가 된 셈이다. 나는 아직은 읽을 수 없지만 교회 출석 기념으로 성경과 찬송가를 엄마에게 사드리고 기숙사로 들어갔다.


처음으로 집과 가족 곁을 떠난 낯선 생활은 서먹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 방침에 따라 네 사람이 함께 한 방을 사용하게 되어 서로 도움을 받게 하였다. 첫 학기에 3학년 선배와 졸업반 선배 또 한 사람은 같이 입학한 신입생이다. 그런데 늦깎이로 시작하게 되었으니 나의 아버지와 같은 나이다. 군청에서 현역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사임을 하고 도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분은 아쉽게도 한 학기를 마치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하였다. 너무 늦은 나이라서 공부를 마쳐도 목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지나쳐 버리기에 할 수 없이 목사가 될 수 있는 길로 옮겨야 했음이다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표정이 밝아졌다. 찬송가를 읽을 수 있는 부분도 생겼다. 성경도 더듬적 더듬 적 거리며 읽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신기하여 여쭈었다. 찬송가는 주로 많이 부르는 내용을 외우면서 글자 모양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 같은 모양의 글자가 반복해서 나오면 새겨서 기억 속에 쌓인다는 설명이다. 얘기를 듣고 엄마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쉰한 살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딸에게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한글의 원리에 맞춰 써보는 엄마의 심정을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 혼자의 힘으로 한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된 시작이 크고도 넓게 발전하기를 마음으로 빌었다.


엄마는 아버지에게도 체면이 서게 됐다. 아버지는 일찍 소년 가장이 되었으나 할아버지가 서당 훈장이셨기에 한문공부도 조금은 할 수 있었다. 한자와 한글로 된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 한글을 익힘으로 열등감을 극복하는 엄마의 작은 힘이다. 엄마는 남편인 아버지를 교회로 안내하기로 다짐하였다. 나와 함께 권고하기로 하여 말씀을 드리니 무조건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신다. 일요일이면 이른 시간에 삽을 들고 들로 외출이다.

엄마와 나는 계획을 세웠다. 일요일에 할 일을 먼저 다 한 다음 '한 번만 교회에 가시지요'라는 방법으로 하자는 의견을 모았다. 아버지도 '한 번'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셨다. 더위가 남은 8월 중순이다. 60년을 살아오면서 처음 출석하는 교회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두루마기를 입고 머리에는 갓을 쓰고 대님까지 졸라맨 조선시대 선비 그대로다. 교회에 들어서니 패션쇼인양 시선 집중이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반응을 살핀다. 아버지는 정면만 바라보며 집중하고 있다. 광고 시간이다. "오늘 처음 오신 이 00 어르신을 환영합니다" 소개에 따라 요란한 박수소리가 가득하다.


집에 돌아와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모두가 침묵이다. 그러나 우울한 분위기가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느낌이 좋았다. 아버지의 입술이 무겁게 열린더. '한 번'이라는 덫이 있었기에 가족들은 어떤 발표일까? 긴장하고 있다. "나 내일 새벽부터 교회 가기로 한다." 엄마를 비롯 가족들은 손뼉을 치며 "잘하셨어요."로 격려하며 좋아했다. 한 번의 기적이다. 다음 날 새벽 아버지는 어제와 똑같은 복장이다. 갓을 쓰고 대님을 맨 모습을 상상하면 보는 이도 부담스럽다.

"이버지 그냥 편리하게 입고 가세요."

"대통령 앞에 갈 때도 예의를 갖추는데 어찌 소홀히 할 수가 있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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