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누나 스물네 살이 되던 해 봄 결혼 얘기가 시작되었다. 서 씨의 종친들이 모여사는 동네에서 우리가 사는 마을로 시집온 색시가 집 안 총각을 소개하고 인연을 맺어주려고 계획한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로 교회에서 누나를 지켜보았다가 먼 친척 동생쯤 되는 신랑을 우리 집에 추천했다. 부모님 마음은 고생을 덜 하는 집으로 보내고 싶고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위를 찾으려 했지만 누나의 입장애도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니 선택의 폭도 제한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신랑 될 사람은 누나보다 한 해 먼저 태어난 순박한 농부다. 아들 삼 형제 중 장남이고 두 여동생이 있다. 처음에는 부모님 선에서 오고 가는 대화였으나 중요한 것은 혼인을 해야 하는 당사자들의 결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시댁에는 시부모님을 섬겨야 하고, 위로 시할머님이 살아계신다. 그리고 시동생과 시누이도 있다. 누나의 입장에선 힘이 들 수밖에 없는 길이 보인다. 누나는 그런 시집을 택하기로 결심을 했다.
가을이다. 살찐 열매들이 마당 한쪽에 마련된 창고에 차곡차곡 쌓인다. 비록 며칠이 지나면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내놔야 되겠지만 우선은 땀 흘린 즐거움을 누린다. 가을걷이 중에도 둘째는 결혼 준비에 마음을 뺏기고 있다. 우리 집 사정을 생각하면 욕심을 가질 처지도 아니다. 부모님의 배려에 맡길 따름이다.
누나는 새벽 일찍부터 서두른다. 신부화장을 하기 위해서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시집올 때처럼 전통 혼례식으로 하기로 했다. 안 방에서 예사롭지 않은 미용실 원장의 손놀림이 바쁘게 움직인다. 부엌과 과방에선 음식을 만들고 차리는 일에 이웃 어머니들의 솜씨 자랑이 한창이다.
예식장은 열 남매의 놀이터인 마당에 차려져 있다. 음력으로 동짓달 끝날이니 차일을 치고 바람막이를 했더라도 누나가 추울까 봐 걱정이다. 겨울인데도 영하의 날씨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래도 마을 남자 어른들은 차일 밖 안전한 곳에 모닥불을 피우고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큰길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신랑이 부모님과 함께 도착했다. 사돈어른들이 길에서 손을 잡으며 인사를 나눈다.
"반갑습니다. 오시는 길 수고하셨습니다."
"곱게 키운 딸을 우리 가정에 보내주시니 고맙습니다."
"훌륭한 아들을 사위가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신랑, 신부 부모들이 방으로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마당으로 나온다. 아버지 친구 되시는 훈장님의 지시에 따라 전통 혼례식이 진행되다. 차려진 상 위에 기러기(나무로 깎아 만든)를 놓고 신랑이 예를 표하는 '전안' 의식을 하다. 사랑의 언약을 영원히 지킨다는 의미다. 서로 맞절을 하는 '교배'로 평생을 같이 하자는 다짐을 한다. 절을 하고 일어나는 누나의 모습을 보니 시골처녀의 때를 벗은 듯 곱고 예쁘기만 하다. 누군가 추운데 쉽게 끝냅시다 하는 엉뚱한 말에 웃음 가득하다. 그럼 끝으로 '합근'이 있겠습니다 훈장님도 훈수한다. 이는 전생에 한 몸이었던 신랑 신부가 이생에서 남녀로 나뉘어 혼인으로 완전한 몸이 되었다는 의미로 두 쪽으로 쪼갠 표주박으로 만든 술잔에 술을 나눠마시는 의식이다.
겨울 해는 짧아 지친 하루가 커튼을 내린다. 혼자 남은 신랑은 큰 처남의 비워놓은 방에 꾸며진 첫날밤의 꿈을 위해 누나의 손을 잡고 숨는다. 뒤편으로 떨어진 곳에 있어 둘 만의 시간은 깊고 깊은 흐름이 되리라. 그냥 잠든 조용한 어둠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누나와 매부는 법원에 출근하는 첫째 형님의 주선으로 보낸 자동차를 타고 떠났다. 식구 하나가 빠져나갔으니 허전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죠. 내게 할 일이 주어졌다. 누나가 사용할 장롱을 보내야 하는데 같이 다녀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보이는 건너 마을 길가 집에 사는 천 서방이라는 아저씨가 리어카에 싣고 가야 하기 때문에 언덕을 만나면 뒤에서 밀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다. 주소를 적어 묻고 물어 처음 길을 찾아간다. 논산 훈련소 정문을 가까이서 바라보며 지나는 길이다. 12km 거리를 걸어서 갔다. 전형적인시골 농촌이다. '전원교향곡'을 읽는 기분이 든다. 면사무소와 우체국이 보인다. 주위에 출입문이 열린 채 집들이 다정하게 이웃하고 있다.
누나가 살아가야 할 집은 우체국 담장 뒤쪽으로 돌아가면 곧바로 나온다. 문이 활짝 열려있다. 정겹게도 싸리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대문이다. 그러니까 항상 열린 문이 아닐까? 시골 인심을 느끼게 하는 출입문이라는 뜻이다. 안방에 들어가 사돈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린 후 누나의 방에 장롱을 넣어야 했다.
자칫 머리가 부딪칠 염려가 되는 작은 방에 장롱을 들여놓으니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누나가 차려 준 점심식사를 천 서방 아저씨와 같이 맛있게 먹었다.
곧 오던 길을 거슬러 집으로 오며 누나와 매부의 행복만을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