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형은 학구열이 대단했다. 여러 형제인 까닭으로 첫째 형이 그랬듯이 둘째 형도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공부는 하고 싶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야간 중학교에 다녔다. 3학년 때에 정규학교 1학년에 들어가게 됐다. 늦은 탓에 열심히 공부하여 우등생이 되어 교장 선생님의 권유로 사범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자취를 하면서 교사의 꿈을 키워나갔다. 훌륭한 교사가 되기 위해 음악, 미술, 체육, 서예, 무용까지 연마했다. 최선을 다한 결과 우등생으로 졸업을 하였다.
꿈을 이룬 둘째 형은 첫 발령지인 모교 초등학교로 걸어서 출근하였다. 아침 조회시간이다. 넓은 운동장에 전교 학생들이 반 별로 서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의 선배로 이 자리에 서게 되었으니 기쁨이 가득합니다. 훌륭하신 선생님들의 지도와 여러분의 협조로 좋은 선생님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디." 인사말에 모두 박수로 환영한다. 스물한 살의 봄이 희망의 날개를 펼치다.
둘째 형에게는 여러 곳애서 중매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가 정해 주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했다. 아무리 시간에 쫓겨도 평생을 동행할 부부인데 한 번은 얼굴을 봐야 하지 않겠니? 하는 엄마의 성화에 따르기로 하다. 부모님의 마음에 들면 그 사람을 반려자로 삼겠다는 단순함이다. 할머니도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뤄야 한다. 아이도 있어야 한다는 등 은근히 압력을 보태신다. 친척의 소개로 두 살 아래인 아가씨를 마음에 둔 엄마는 형에게 한 번 만날 것을 권고했다. 해가 바뀌어 교사로 시작한 지 2년 째다. 들이서 만나기로 하여 약속 장소를 대전으로 정했다. 5월 하순의 토요일 대전 역 가까운 곳에 위치한 다방에서 오전 11시에 만나기로 하다. 10시 50분에 도착한 형은 두 살 아래인 아가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며 문쪽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은 긴장이 된다. 11시가 되자 다방 문이 살며시 열리며 사진에서 보던 익숙한 얼굴이 들어온다. 두리번거리는 아가씨를 향해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낸다. 아가씨가 수줍은 얼굴로 다가온다. 자리에서 일어난 형은
"오느라고 고생했습니다. 앉으시죠."
"네, 처음 뵙겠습니다." 둘 이선 오랜 친구와 같이 스스럼없이 대한다.
"부모님은 평안하시지요?" 형의 말에
"두 분 다 건강하십니다." 아가씨의 대답이다.
"제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집에는 여러 형제가 있어 힘이 들 텐데요." 어쩌면 양 쪽 부모님들이 이미 결정한 일을 확인하는 자리인 듯하다. 잠깐 주고받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식당으로 옮겨 점심식사를 하고 곧바로 대전역으로 갔다. 같이 기차를 타고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 호남선이다. 다음을 약속하며 아가씨는 가수원이라는 역에서 내리고 형은 강경 역에서 내렸다.
그 해 가을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었다. 본채 오른쪽에 급하게 지은 사랑채가 둘째 형과 형수의 보금자리가 되었지. 교사 생활은 하루하루가 분주했다. 펜글씨는 물론 붓글씨 쓰는 재주가 있어 학교 환경미화와 상장을 쓰는 일에 수고를 하였다. 가족 중에 특별하여 사물놀이를 익혀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시대에 드물게도 무용을 배워 교사들에게 방학을 이용하여 강습회를 열어 사물놀이와 함께 전달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바쁜 일과 속에서 달콤한 신혼생활이 흐르고 해가 바뀌다. 아직 조보 신혼 신랑에게 소집영장이 전달되다. 6월 25일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여 전반기 훈련을 마치고 부관학교에 압교하여 인사행정반에서 교육을 받았다. 논산훈련소 부관참모부로 보직이 되어 근무하다. 다음 해 10월 5일에 전역하여 초등학교로 돌아오다. 한 울타리 안에 첫째 며느리는 본채 뒤켠에 둘째는 옆에 살고 있으니 새벽부터 부엌은 세 여자가 분주한 시작이다. 아침 식탁은 한 방에서 열 다섯 식구가 두 개의 상에 앉아서 밥을 먹는다는 그림을 상상해 보라. 복잡한 구도가 떠오를 것이다. 형수들도 고생이 많았을게다. 시아버지 곁에서 메스꺼운 입덧도 숨겨야 했으니 말이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구도이다.
엄머에게 감사할 이유가 있다. 마을에는 중간 지점에 공동 우물이 있다. 비가 내리면 우물에 들어가지 않도록 지붕을 만들어 세운 지하수다. 고인 물을 두레박으로 퍼내어 두 개의 물통에 담아 지게로 지고 가서 주로 부엌 한쪽에 묻은 커다란 오지항아리에 물지게로 지고 온 물을 붓는다. 다시 가서 물을 담아 온다. 낮 시간은 여인들의 빨래터가 되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정보를 교환한다. 여기가 문제다. 긍정적인 면이 있으나 더러는 부정적인 내용이 있다. 다른 사람의 흉을 보는 것이다.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의 얘기를 하게 되고 시어머니들은 며느리 얘기를 하는데 우리 엄마는 절대 며느리 흉을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다. 옆집 어머니는 입만 열면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좋은 얘기는 지우고 반대쪽에 대한 이야기만 하니까 사람들이 좋아할 이유가 없다.
부엌 세 여자들의 배가 비슷하게 불러오는 게 아닌가? 두 며느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마흔여섯이 된 시어머니는 어쩌란 말이냐? 2년 전 지난번 출산이 막내라 여겼는데 웬일인가. 따져보니 큰며느리, 시어머니, 둘째 며느리 차례로 출산 예정이다. 첫째는 두 번째 출산으로 아들을 기다리는 중이다. 9월 17일 첫째 형수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4년 전 태어난 첫째가 딸이어서 모두 기대하고 기다리는 중 새 생명의 울음소리가 터진다. 으앙! 으앙!. 그런데 이내 침묵이 흐른다. 열흘 뒤 어머니가 덤으로 여동생을 열한 번째 세상의 빛을 보게 하는 생명이 되게 하다. 그리고 11월이 끝날 즈음에 둘째 형수가 첫아들을 품에 안고 젓을 물리다. 한 울타리 안에 열여덟 대가족이 웃음꽃을 피우다. 지난번 큰 형수의 젖을 나눠 먹고 성장한 다섯 번째 시누이인데 새로 태어난 시누이는 첫째와 둘째 올케의 젖을 나눠 먹으며 자라야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