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형과의 싸움

<가족이니까>

by 이상수

늘 가족과 형제 사이에 화목하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가르침은 우리 집 큰 버팀목이 되었다. 열 남매는 우애하며 웃음꽃을 피우는 행복한 모습을 보여 드린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나 셋째와 크게 싸운 일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얘기다. 다섯 살 위의 형에게 저항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희미한 기억으로는 형이 나에게 해야 할 일을 지시했는데 듣지 않고 반항한 탓으로 물리적인 충돌이 있었다. 지지 않으려는 고집을 부리다가 형의 힘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형은 대학교 1학년 신입생이었고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으니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당연히 내 머리에 알 밤이 생기고 백기를 들고 패배를 인정하고 말았다. 이전에 그 런 일이 없었고 후로는 싸움을 한 적이 없으니 일회적 사건이 된 셈이다. 그때 형의 키가 작은 편이라 비숫하다고 착각했었나? 한 지붕 아래 가족이라서 생길 수 있는 끈끈한 정을 엮어가는 과정이었다고 변명을 해 본다.

뒤편에 자은 작은 집은 첫째 형 내외가 생활하는 공간이고 본 채는 두 칸의 방이 있어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다. 딸들이 잠자는 윗방은 출입문이 앞쪽으로 하나이기 때문에 여름에는 더위로 인해 깊은 잠을 자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겨울은 자다가 보면 서로 이불을 끌어당기는 바람에 이불을 뺏긴 채(?) 새우처럼 웅크린 모습으로 아침을 열기도 하여 쑥스럽게 하루를 시작하는 날도 있다. 안방에는 할머니 자리를 마련하고 아버지와 엄마의 자리가 있고 그런 다음 아들들이 함께 누우니 이불 싸움은 무의식 중에 이어지는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알면서도 풀기 어려운 문제로 아름다운 그림이라 여겨진다. 아침밥을 먹는 시간이면 제일 바쁜 엄마의 손길이다. 도시락을 갖고 갈 학생이 매일 셋이나 넷이 되다 보니 준비하는 일도 여간 신경 쓰는 일이 아닌가. 하나라도 아침을 거르는 자식은 없는지 챙기는 일도 엄마의 몫이다. 어느 때는 스무 개의 입이 식탁에 모여야 하니 작은 식당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런 대가족 틈에 살면서 양보와 타협 이해와 화해 그리고 사랑의 따뜻함을 자연스럽게 몸으로 터득한다고 생각한다.

셋째에게 1학년을 마친 후 영장이 전달되었다. 우리 집에서 세 번째로 육군에 입대하는 아들이다. 첫째, 둘째 형 훈련병 시절에도 주말이면 엄마와 함께 면회를 가서 형들을 만났던 것처럼 셋째도 당연한 통과의례로 집에서 8km 넘는 거리를 걸어 논산 연무대 훈련소를 찾는다. 넓게 펼쳐진 붉은 황토 마당의 훈련소에 푸른 제복을 입은 장병들과 전국 각지에서 모인 가족, 연인들이 자리를 펴고 다정하게 앉아 정을 나누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손에 잡힐 듯한다. 1061 XXXX. 형의 군번이다. 앞의 네 자리를 보면 또래의 입영자들이나 그 해에 입대한 장병들이 알 수 있는 암호 같은 숫자이기도 하다. 기초 훈련을 끝낸 다음 전방 보병부대에 배치된 형은 사고 없이 주어진 복무 기간을 건강하게 마칠 수 있었다.


셋째 형은 잠시 부모남을 도와 흙과 더불어 지내기로 하다. 육체적으로 힘이 들지만 마음은 편하고 여유로운 상태다. 그러는 사이에 휴학한 학교 대신 회사에 취직이 되어 집을 떠나 대전에 머무르게 되었다. 3년 일하던 회사를 사직하고 대학교 행정실로 직장을 옮겼다. 형은 성실함을 인정받아 이곳에서 30여 년 근무하고 정년퇴직을 하였다. 몇 년이 지나서 형의 둘째 아들이 대학 졸업 후 경쟁을 뚫고 아버지가 근무하던 사무실로 출근하게 되었다. 대를 이어 학교와의 인연의 끈을 연결하는 조카의 늠름한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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