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입덧

by 이상수

2월 24일 새벽부터 비가 내리니 걱정이다. 우산을 펼쳐 비를 피하며 이발소로 향했다. 평소에 다니던 곳이 아닌 다른 마을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른 시간인데 50대로 보이는 이발사 아저씨가 반긴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았다.

"아저씨, 제가 오늘 결혼식을 하는 날입니다. 머리 모양에 맞게 이발하시면 됩니다."

"영광입니다. 미리 결혼을 축하합니다."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신랑과 신부 입장의 음악처럼 들린다. 포마드를 발라 넘긴 머리가 어색하게 보인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이해하고 귀엽게 보이도록 해야겠다.


정오. 12:00. 작은 시골교회. 나는 주례 목사님 앞에 서 있다. 그리고 신부는 뒤편에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약속대로 정시에 시작이 되었다. 만약에 늦으면 예식은 생략하고 그냥 지나칠 것이라는 예고를 했기에 신부는 시간에 맞춰 서 있었다. 그러나 진행이 되지 않고 침묵이 흐른다.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신부 부모님이 아직 도착을 안 해서 시작을 못하고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주례 목사님의 메시지다. 신부가 당황하여 대기실로 돌아가려고 엉거주춤하는 사이에 신부 측 가족이 도착했다는 연락이 있어 머쓱한 채 그 자리에 서 있게 되었다. 신랑도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행히 비가 그치고 있었지만 비를 핑계하면서 즐거운 기다림이라고 새겨두자.


순서를 다 기억할 수는 없으나 서약은 벗어던질 수 없는 멍에이기에 새김질을 한다.

"나는 그대를 아내(남편)로 맞아 이제부터 평생토록 즐거우나 괴로우나, 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어떤 환경 중에서라도 그대를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죽음이 우리를 나눌 때까지 이 약속을 지키기로 하나님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서약합니다."

또 하나 기억하는 것은 축가를 부른 친구다. 신학교 졸업동기인 J 군이다. 제목과 낭랑한 목소리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 함께 찍은 기념사진 속에 보이는 얼굴이 그리워진다. 졸업 후 일반대학 성악과에 편입하여 계속 공부하기로 하여 진로를 변경하였다. 신혼여행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흘 후에 있을 졸업식에 참석하고 곧 이미 정해진 임지인 교회로 아내와 함께 가야 하기 때문이다. 유별난 신혼여행이라고 변명을 해야겠다..


신랑과 신부가 처음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은 둘째 형과 형수가 첫날밤을 지낸 그 방이다. 큰형에 이어 둘째 형네도 따로 셋집을 얻어 독립하였다. 새로 도베를 하고 아궁이에 장작불도 지펴 따뜻하게 데워진 방이다. 시대가 변하여 문틈으로 엿보고 호기심을 찾으려는 모습들은 이미 지나간 얘기들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방 안에 갇힌 두 사람은 더 긴장이 되어 어떻게 어둠을 밝혔는지 꿈을 꾸는 중이다.


2월 27일 신학교 졸업식이다. 입학하여 공부하다가 병역의무를 위해 다섯 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했다. 3년 여의 군생활을 마치고 캠퍼스로 다시 돌아와 3학년 2학기부터 등록하였다. 오늘이 있기까지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내와 함께 졸업식 행사에 참석하고 정들었던 얼굴들과 헤어지는 시간을 가지다. 곧바로 아내의 손을 잡고 첫 목회지인 논산시 외곽에 위치한 농촌으로 향했다. 이미 2월 초에 부임인사를 했기에 교회 가족들도 아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200여 세대가 모여 논과 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전형적인 시골이다. 교회에 출석하는 30여 가정은 모두 한 가족이다. 아내와 함께 마을 어른들을 찾아 인사를 드리고 교우들의 가정방문을 하기에 바쁜 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아침이다. 아침 식사를 하던 아내가 평소와 달리 입맛이 없다며 수저를 내려놓는다. 피곤해서 그런가? "입맛이 없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하는 내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화장실로 달려간다.

"보여.(나는 여보를 거꾸로 부르기로 했다) 입덧하는 거 아닌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기에 그렇게 말했다. 아내의 입덧이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태 속의 생명은 허니 문 베이비인가? 아내는 너무 심하다. 나도 여자의 입덧하는 것을 처음 본다. 이웃집에서 밥을 할 때 그 냄새만 맡아도 토하고 싶어 지니 어찌할 방법이 없다. 이것보다 더한 게 있다. 담을 넘어 옆집 아주머니가 키로 쌀을 까부르면 쌀 냄새가 자극이 되어 토하려고 하니 너무도 심하다. 한 번은 아내가 "여보, 고모네 집에 가서 총각김치 갖고 오면 좋겠네요." 한다. 겨울이 지나 시어버린 김치국물을 먹으면 혹시 밥맛이 돌아올까 기대하는 마음에서다. 다음 날 새벽 주전자를 들고 4km 떨어진 거리에 살고 계신 아내의 고모 잡으로 갔다. 총각김치를 꺼내 담으니 시큼한 특유의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집에 가까이 도착할 즈음 아직 먼 거리임에도 아내가 문 밖에 나와 "가져오지 마."하고 소리친다. '어이없다'는 말은 이때 어울리는 게 아닌가. 고생하는 아내에게 나이 많으신 할머니 한 분이 찾아오셨다. 손에는 보자기에 싼 계란 한 판이 들려있다. "사모님, 이 계란은 수탉이 있는 암탉이 낳은 것입니다. 이것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답니다." 아주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아내와 나는 "감사합니다." 인사를 했다. 너무도 잔자한 표정으로 하는 얘기를 들으며 사실인 듯 착각을 하는 시간이다. "그렇지 않습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잠시라도 고통을 잊었지만 외로운 씨름은 12월 하순까지 계속되었다.


예정일 전날 저녁 배가 조금 아프다고 했지만 어제와 같이 편안한 밤을 잤다. 새벽을 깨우고 날이 밝았다. 아내는 배가 아프기 시작했나 보다 하며 걱정하는 얼굴이다.


"고생하지 말고 병원에 갑시다."

"뭐. 견디며 집에서 낳지요."


오전 10시쯤 진통이 심해지기 시작한다. 미리 부탁한 두 분 여자 권사에게 연락하니 서둘러 온다. 물을 데우고 줄산 준비를 하며 기다린다. 11시 30분이 지나면서 아주 힘든 진통이 아내의 신음 소리를 삼키게 한다. 경험 있는 두 권사는 힘을 주라고 응원한다. 옆방에 있던 나는 밖으로 나가 마당을 서성이며 손을 모은다.


"자, 힘을 내요. 하나, 둘, 셋." 합창을 한다.

"머리가 보이니까 조금만 힘을 내면 됩니다." 하나, 둘, 셋은 반복되고 시간은 계속 흐른다.


"하 - 나, 두 -ㄹ, 셋... " '으앙', '으앙, ' '으앙!'. '부 - 웅!' 새 생명의 울음소리가 터지는 순간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동시에 듀엣으로 펼쳐지고 있다.

"아들이오." 암 권사의 목소리가 문 밖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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