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은 쿠폰과 함께

선물같은 오전이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생일 주간에 들어선 것을 저절로 알겠다.

문자로 톡으로 생일 축하 쿠폰들이 들어오고 있다.

물론 내가 구입하고 회원 가입도 했던 곳들에게서

할인 쿠폰이 자동 발급되는 것이고

그 쿠폰을 사용하려면 그 업장을 다시 방문해서 무언가를 사야하니 엄밀히 말하면 선물은 아니다.

호객 행위용 마케팅 상품이다만 그래도 홀낏 하기는 한다.

물욕이 아직 남아있다.


아침 일찍 다음 주 강의 자료를 정리하고

(다음 주 일정이 바쁘다.)

연구 자료도 정리하고 톡으로 전달해두었다.

주말 아침부터 연구팀 단톡에 자료를 올리는 일은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야 주말에 조금이라도 살펴보고 월요일 온라인 회의에 참석하지 싶은 노파심에서였다.

연구대표자가 되니 마음이 바뀐다.

그리고는 아침으로 내가 좋아라하는

제주 해장국 밀키트를 팔길래 하나 사둔 것을 끓였는데

을지로 식당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니다.

그 집 해장국의 킬포인트는

대파를 왕창 썰어넣어 올려주는 것인데

그게 없으니 일반 육개장과 다를 바가 없다.

역시 식당에 가서 먹는 것과 밀키트는 같을 수가 없다.

시그니처와 킬포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세탁기를 눌러두고 골프 연습장을 방문하러 나섰다만

사실은 골프 연습을 빙자한 단풍놀이이다.

그 연습장이 워커힐 호텔 내에 있기 때문이다.

아차산을 혼자 올라갔다오는 것은

겁도 나고 무릎 부상 이슈도 있어서 쉽지 않으니

근처 워커힐에서 아차산뷰와 한강뷰나 보고 오겠다는 야무진 계획이고

오른손 엄지손가락과 무릎의 부상 정도가 골프스윙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해보겠다는 숨은 뜻도 있다.

새로 리뉴얼한 연습장은 다소 비싸기는 했다만

6시간의 워커힐 무료 주차 서비스가 되고

쾌적한 환경에서 탁 트인 곳을 보면서 연습을 하니

(공이 어떤 방향으로 휘어지는가가 잘 보인다. 똑바로 가면 좋으련만. 거리는 포기한지 오래이다.)

아파트 커뮤니티센터 3,000원짜리 연습과는 비할바가 못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값이 10배이다.

돈의 값어치는 속일 수가 없다.

골프 연습은 대강 대강 설렁설렁하고

연습장 내에 있는 유명 베이글집에서 베이글 두 개를 포장하고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받아

마치 그곳에서 1박 숙박을 한 사람인양

워커힐 구석구석을 걷는다.

작년에 몇 번 걸어봤다고 위치와 지리를 알고 있으니 자신감 뿜뿜이다.

그리고는 워커힐의 식물들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이제 당분간은 너희를 보러 올 수 없다고.

무슨 무슨 날이어도 이곳에서 식사를 할 기회가

이제는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고.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왜 왔었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만)

그리고 결혼 첫 해 생일때는 남편과(그때만 해도 영원히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리고 작년에는 아들 녀석과 왔던 이 길을(벌써 1년이 훌쩍 지났다니 믿을 수가 없다.)

천천이 걷고 느끼고 눈에 담아두고 사진을 많이 찍어두었다.

이 정도면 되었다.

마침 날씨가 딱 좋아서 11월의 첫날이 기쁘기만 했다.

톡이나 문자로 날라오는 쿠폰보다 오늘의 날씨가 백배는 더 고맙고 선물같았다.

쿠폰보다 오랫만에 나의 안부를 물어보는 톡이 백배는 더 기쁠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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