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색이기를 기다린다.
올해 2월말로 정년퇴직을 하고(아니 하기 전부터도)
집값이 비싼 서울에 더 있을 필요가 있겠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물론 돈이 많고 서울에 번듯한 내 집이 있으면
왜 굳이 그런 생각을 하겠냐만
그렇지 않으니 이리저리 생각을 해본 것이다.
서울에는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 녀석만 잘 있으면 된다.
먼저 이사할 곳 대상에 오른 곳은 천안아산 지역이다.
남편 회사가 그쪽에 있고 몸이 안 좋은데 회사는 계속 하고 싶다 하니
(내가 보기에는 욕심인데 내려놓지를 않는다.)
내가 그쪽으로 내려가는게 맞지 않나 생각을 자연스럽게 한 것이다.
천안아산역 인근은 교통도 좋고
(용산역까지 한 시간도 안 걸린다.)
한번 가보았는데 생활권도 괜찮아서
1년 정도 재취업에 노력해보다가 안되면
그리로 가야지 마음먹었었는데
남편이 의논도 없이 올라오는 바람에
(병원다니는 일이 컸다. 평소에도 의논을 하지않는다.)
내가 굳이 그쪽으로 내려갈 일이 없어졌다.
물론 남편 회사 근처 대학교 영재교육원에
전공을 살려서 연구요원으로 지원했었고
그곳에 직장을 구했으면 당연히 내려갔을터인데 안되었다.
탈락 이유는 기존에 그 일을 하고 있던 연구원이 있는데 기간제 자리여서 사실상 내정자가 있는
허수의 공고였던 경우였다.
이런 경우가 아주 많다.
운명이 아니었던거다.
두 번째로 고려했던 곳은 시어머님이 살고 계시고
퇴직하는 나에게 제일 먼저 오라고 손을 내밀어 주었던 대학과 영재원이 있던 수원 지역이다.
시댁에 다니느라 익숙한 곳이기도 했고
일단 고령의 시어머님이 혼자 계시니
내가 그 집으로 들어가서 사는 것도
모양새로 보나 실속면으로보나 나쁘지 않은 선택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라오라하던 수원의 모대학에서는
내가 맡아야 할 강의가 새로운 교육과정이 생기면서 폐강되었다는 연락이 왔고
(전공과목이 아니었고 그전 강사가 멋진 강의를 진행하지 않으면 만족도가 나빠져서 이렇게 된다.)
시어머님은 집을 정리하고 요양원에 들어가신다고 중요한 결정을 하셨고
영재원은 1학기 이후 과학고 입시가 끝나면서
중학교 과정의 강좌가 필요없어졌으니
내가 굳이 수원으로 내려갈 이유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운명이 아니었던거다.
그리고는 갑자기 용인과 이천 지역이 물망에 오르게 되었는데
그것은 순전히 지금 나가는 대학교 초빙교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천 지역은 결혼할 때 남편 회사 소재지이기도 했고
용인 지역은 학생들 체험학습 인솔이나 골프치러 다닐 때 가본 곳들도 있지만
나와의 연관성은 전혀 없어서 한번도 그곳에서의 삶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수원이나 천안아산 지역에 비해서는 다소 뜬금없는 지역이었다.
그래도 갑자기 이사를 해야만 하는 이슈가 발생하면서
집도 보러가고 부동산과 연락을 주고 받는 일까지는 진행되었다만
나와 인연은 거기까지였는듯 그냥 끌리지가 않더라.
딱히 학교 바로 옆도 아니고
그래서 어차피 운전을 30분은 해야할 것 같았고
남편이 항암하러 다니기도 쉽지는 않을듯하여
이래저래 안 끌렸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낯선 곳에서
아픈 남편과 단둘이 있을 용기가 나지않았던 것이었을 수도 있다.
운명이 아니었던게다.
결국 나는 돌고 돌아서 막내 동생이 학기 중에 머물러야만 하는 조치원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10년은 족히 남은 막내 동생의 교수 생활동안
학기중에는 조치원에 있어야만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체력이 딸려서 서울에서 출퇴근은 힘들다.)
그리고 제부도 창원에서 주말에는 조치원으로 오기 때문에
북적북적한 가족의 느낌을 가지고 있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또 평소에는 비어있는 서울의 막내 동생집에는
남편이 항암하는 동안이나(병원이 가깝다.)
나의 서울에서의 볼일이 있을 때
우리가 사용할 수도 있는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융통성을 발휘할 수도 있는 선택을 한 것이다.
물론 지금은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이 발생할지도 모르지만
이 또한 부딪혀서 해결해나가면 되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세종시 조치원읍.
입에 붙지 않고 낯설기 짝이 없는 곳이지만
그곳에 오래 머물렀던 동생이 있으므로
그곳에서의 날들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고
당뇨를 걱정하는 남편과 막내 동생을 위해
가급적 설탕을 조금만 쓰는 먹거리에 집중하면 될 것 같다.
서울에서만 사람이 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동생 근처에서 사는 것은 내가 늘상 고려했던 일이었으니
아마도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아들 녀석도 오히려
이모와 이모부가 있으니 안심할지도 모른다.
이런 어려운 결정에 동의해준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해준
막내동생 부부에게 고마울 뿐이다.
내가 잘해야 한다.
그런데 제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에게 내가 이렇게 의지하며 살게 될 줄 엄마는 아셨던 것 같다.
막내 동생에게 내가 나중에 니 근처에서 살거라고 이야기하셨댄다.
엄마는 신기가 있으셨던 것일까?
아니면 엄마만이 알 수 있는 자식에 대한 촉이 발동한 것일까?
조치원댁이 되는 운명.
운명이라고 밖에는 달리 이야기할 수가 없다.
(후배가 찍어보내준 사진을 대문 사진으로 골랐다.
잘보면 무지개가 보인다.
조치원에서의 내 생에도 무지개가 떳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