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시게. 11월.

잘 살아보겠네.

by 태생적 오지라퍼

11월 초가 생일인 나는 젊어서도 생일이 그리 기쁘지 않았다.

언제부터 그랬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초등학교때는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밥을 먹기도 했었던 것 같고

선물을 받고는 좋아라했던 것도 같고

집 근처 놀이터에서 함께 놀았던 기억이 어슴프레 나지만

아마도 엄마의 한숨소리와 그 뒤를 따라오는 혼잣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니가 아들로 태어났어야는데...>

그렇다. 나는 종가집의 외아들이신 아버지 밑으로 태어난 K-장녀이고 줄줄이 여동생만 있다.

그게 내 잘못은 절대 아닐테지만 내 잘못인것처럼 미안한 마음이 드는 시대 분위기가 분명 있었고

생일날 듣는 결코 덕담이 아닌 저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었다. 어린 나이에도.


대학 시절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 생일 모임과

환갑 기념 그리고 퇴직 기념으로 제자들이 자리를 만들어준 골프 모임의 기억조차 이제 점점 아스라해진다.

작년 생일에는 무심한 스타일의 아들 녀석이

유명한 피자레스토랑을 예약해서

같이 저녁을 먹고 한강뷰를 감상했지만

음식이 기똥차게 맛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아들 녀석에게 무지 고맙기는 했다만

이제 내 입맛에는 정신없이 먹을 정도의 맛있음은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서 슬펐다.

그리고는 내 생일때쯤이면 꼭 선물처럼 첫 추위가 찾아오곤 했었다. 그런 선물은 사양하고 싶다만.

그 추위와 함께 11월은 나에게

심난함과 한 해가 다가는 것에 대한 회한과 아쉬움이 몰려오는 시작점이었고

연말에 드는 그 마음이 생겨나는

생일날이 결코 즐겁지 않은 날이었다.


올해 후배 두명이 11월 생일인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친한 제자들 그룹에도 11월 생이 세 명이나 있어서 함께 HBD 톡을 주고 받긴 했었다만.

제자와 후배는 또 느낌이 다르다.

11월 생일을 기념하여 같이 공을 치러가자고 의기투합했는데(자발적인 자체 기념 행사인 셈이다.)

오른손 첫째 손가락과 지난번 무릎 부상 이후로 한번도 연습을 한 적이 없다.

부상 이슈가 아니어도 그리 자주 연습하는 스타일은 절대 아니고

이제 골프도 놓아주어야 할 때가 점점 가까워짐을 부쩍 느끼고 있지만.

즐거운 시간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기대된다.

마치 출근길 내가 셔틀버스타는 옆에서

대절버스를 타고 지방 핫플 나들이를 떠나는

화려한 색상의 한 무리의 여행객들과 같은 마음이 된다.


이번 11월.

나는 연말의 기분으로 쳐지지 않겠다.

내 생애 최고로 젊은 11월이다.

어서오시게.

내가 멋진 생일달 11월을 불살라주겠네.

나를 낳고서 아들이 아니라고 눈물을 흘리셨다는 어머니 몫까지 즐겨주겠네.

내가 나에게 축하를 보내지 않는 생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기쁘게 11월을 즐겨보겠네.

함께 즐겨줄 후배들에게 미리 감사하고 축하하네.

생일인 제자들에게도 미리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나와 생일이 똑같은 첫사랑도 축하해. 우리 꽤 살았다.


(대문 사진은 지인의 SNS에서 캡쳐한 것이다.

한때 내가 좋아했던 스누피가 요새 역주행중이다. 반갑다.

스누피처럼 내 골프 실력의 역주행을 꿈꿔본다만

그럴리는 절대 없고

오랫만에 연습장에나 가볼까한다.

힘빼고 공보고 맞추는게 목표이다.

그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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