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빠지면 집이 썰렁해진다.

모든 물질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거참 이상하다.

이사를 앞두고 가열차게 짐을 정리하는 중인데 (버리고 나누고 또 버리고)

그 짐이 빠져나간 무게만큼 집이 썰렁해지는 느낌이 든다.

짐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만큼 온도에 변화가 있는게 틀림없다.

모든 물질은 고유한 값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오래 함께 살았던 나만 느낄수 있는 미묘한 차이이다.


어제로 아들 녀석의 짐을 다 뺐다.

물론 이사갈 때 가져갈 것들은 일부 꽤 많이 남아있다.

(도대체 왜 책을 안버리는 거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기타 다양한 것들도 있는데 아직 버릴 마음의 준비가 안된 것들은 일단 또 가지고 간다. 그래도 꽤 많이 버렸다.)

5월 이후 독립을 했지만 워낙 작은 방 하나인 크기인지라

대부분 짐을 자기방에 그대로 두고 여름옷 종류만 가지고 나갔었다가

이번에 덩치가 큰 겨울옷들을 옮기기 시작했고

어제 거의 마지막 정리를 했고 자전거 등만 남았다.

(친구에게 받은 것이다. 생전 타지도 않는다. 자전거 타기이제 나이가 꽤 들었다만.)

러고 났더니 드레스룸을 가득채웠던 옷장이 텅 비었다.

옷들이 가득 있을 때 고양이 설이는 그곳 탐험을 엄청 좋아라했고

아들 녀석은 옷에 털이 묻는다고 질색을 했었는데

(그리 이뻐하는 고양이에게도 안되는 것은 가르쳐야 한다는 엄격주의자이다.)

옷이 텅비니 문을 열어두었는데도

고양이 설이가 그곳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자기가 누울 자리는 엄청 많아졌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 드레스룸이 몹시 추워보인다.

날씨 탓은 아니지 싶다.

그래서 사람이 든 표시는 안나도 난 표시는 크다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짐들도 그러하다.


우리집 똘똘한 고양이 설이는 요즈음 새벽에는

내 방 화장실 앞에서 나를 지키는 중이다.

내가 일어나면 가장 먼저 화장실로 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느새 내 침대에서 자다가(겨울용으로 침대에 깔아둔 담요의 촉감을 좋아하는 듯하다.)

새벽 취침 시간 쯤에는 화장실 문 앞을 사수한다.

마치 내가 일어나는 것을 절대 놓치치 않겠다는 결의에 찬 표정이다.

그리고 브런치를 쓰는 동안에는 내 작업용 노트북 앞에 딱 붙어 앉아있다.

마우스 움직이는 것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밀착하고 있다.

무언가 이 집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캐치하고 있나보다.

우리집 고양이 설이는 아마도 두 번째 생을 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추론을 해본다.


다음은 버리고 갈 가구들 목록이다.

혹시 필요한 분은 가져가셔도 된다만 당근거래는 하지 않는다. 쿨하게 드린다.

먼저 6인용 식탁과 의자 3개이다.

의자는 설이가 가죽부분을 다 뜯어댔기 때문에 처참한 상태이고

식탁은 잘 닦아서 회의용 탁자등으로 사용 가능한 정도인데

모르겠다. 분리수거장에 놓으면 누군가 가져갈지도.

이전 사직동 집으로 이사갈 때 샀던 오픈 키친용 놓은 철제 의자도 있는데(멋진 카페용 하이췌어이다.)

이제 엉덩이가 아파서 사용하지 않으니 역시 버리고 간다.

3단 서랍장과 2단 미니장도 버리고(이제 그렇게 소소한 것들을 넣어둘 일이 없다.)

김치 냉장고 넣는 공간을 막아서 대신 정리장으로 쓰던 나무 받침대도 버리고

(김치 냉장고까지 냉장고 2대를 사용하는 삶을 계획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그릇과 냄비, 후라이팬, 도마 종류도 몇 개 빼고는

다 버리고 가려한다.(서울이여. 당분간 안녕이다. 언젠가일지 모르지만 영원히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고민 중인 것은 그림 액자인데

(주로 선물로 받은 것들이라)

집에 걸어두기도 그렇고 놓아두기도 그래서

학교에 가져다 놓을지를 계속 고민중이다.

학교 사무실에 갤러리처럼 꽤 멋지게 되어 있어서 그곳에 기증하는 것도 괜찮지 싶은데

아직 마음을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고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주신 가방도 역시 버리기에는 아직은 마음에 걸린다.

물론 명품백은 아니지만.

어제도 분명 가열차게 짐 정리를 했다만 아직도 해야할 일들은 내 머릿속을 짓누르고 있고

(그래서 새벽부터 두통이 살며시 오나보다.)

오늘은 23시 퇴근 예정각이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이 서서히 오늘은 그렇게

가늘고 길게 버텨보자.

그런데 짐이 빠져서 추운거냐 오늘 날이 추운거냐.

아침에 조금 썰렁하다.

분명 이번 주 날씨 예보가 괜찮았는데.

(요즈음 나의 일정을 함께하는 텀블러가 열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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