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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이기적인 유전자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아직 컨디션이 100프로 올라오지 않은 상태에서

<탄소중립> 연구팀의 두 번째 온라인 회의가 어제 저녁 7시반 예정이었다.

내가 연구팀원일때의 회의는 그렇게 걱정이 되지 않더니(대강 참여한 것은 절대 아니다만)

연구 대표자가 되니 걱정이 엄청나다.

일단 줌회의 연결이 잘 될지(가끔 버벅일때가 있다.)

다들 그 시간에 잊지 않고 회의에 참석할지(연구위원들을 못믿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사람인지라 더 큰 일이 생기면 잠시 잊을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첫 번째 회의에서 중심을 찾지 못한 듯 한데 나아갈 부분에 대한 방향성을 결정할 수 있을지(이게 가장 크다. 연구 기간이 딱 2달이다.) 등등이다.


그런데 오늘 저녁은 아들 녀석이 와서 밥을 먹는다고 하고(다른 날이었으면 마냥 기쁘기만 했을 것이다만)

남편도 저녁 약속이 없다.(딱 회의 시간 중에 저녁 식사 시간이 있다. 약 먹는 시간 때문에 저녁 식사 시간을 앞당길 수는 없다.)

일단 아들 녀석 밥부터 차려준다.

오랜만에 오니 무조건 고기를 굽는데

요새 다이어트를 하는지 평소 먹는데 소요되는 시간보다 두 배 더 천천이 식사를 즐긴다.

이러면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데 말이다.

저녁을 빨리 먹고 짐 정리도 하고 처리할 것을 처리한 후 아들을 보내고

회의에 들어가면 되겠다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재촉할 수 밖에 없다.

아들 녀석은 약간의 서운함을 표현한다.

미안하기는 한데 마음의 여유가 없다.


간신히 아들을 보내고 나서 재빨리 남편 저녁을 세팅한다.

고기를 먹지 않는 그리고 심심한 반찬을 희망하는 터라 아들과 반찬 세팅이 달라져야 한다.

거실에 있는 식탁에서 온라인 회의를 해야하므로

오늘은 주방쪽 아일랜드 식탁 조리대에 남편 저녁을 세팅한다.

시간이 되면 조용히 나와서 밥만 먹고 그대로 놓고 들어가라고 신신당부를 했다만

손의 작동이 부자연스러운 남편이 어떤 사고를 겪을지는 모른다.

할 수 없다. 되는대로 하고 회의 시간에서 가끔 오디오를 꺼놓는 수 밖에.

참 이상도 하다.

평소에는 그렇게 밥에 진심인 사람이 나인데

오늘은 온라인 회의가 더욱 중요하다.

평소에는 남편과 아들 먹는 것이 나 먹는 거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더니

오늘은 왜 그리고 둘 다 천천이 먹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지극히 이기적인 유전자의 발현이다.

다행히 남편은 별다른 사고없이 조용히 식사를 마쳐주었다.


어제 회의에서는 방향성이 결정되었고(내가 밀어붙인 경향이 없지 않다.)

다음 스텝의 할 일도 일단 나누었고

내가 예시 자료 정리만 잘하면 되는데(오늘 할 일이다.)

어제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약을 먹고 잠에 들었고

오늘 아침은 정말 오랜만에 여섯시 반에 기상하는 푹잠을 누렸더니

온몸 간지러움 증세는 많이 좋아진 듯 하니 열일 스타일 발동 가능하다.

역시 사람에게는 쉬어주어야 할 최소한의 기간이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 그 최소한의 기간이 다르다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다만

그 쉬는 기간동안에는 나를 위해 푹 쉬어줘야만 하고

그 기간 동안에는 철저히 이기적인 유전자 스타일로 살아야 한다.

그 시간 동안에 지극히 이기적이지 못하면 점점 쉬어야 할 기간이 늘어나게 되니 말이다.

어젯밤이 바로 그런 날에 해당된다.

식사를 빨리하라고 일을 빨리하라고 눈치를 준

아들 녀석에게 조금은 미안하다만

그리고 다소 불편한 위치에서 식사를 하게한 남편에게도 조금은 미안하다만

나도 이제 이기적으로 사는 삶을 조금은 누려야 할 나이 아니겠는가?

특수 상황이었으니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가정 내에서 나는 한없이 이타적인 삶을 살아왔다. 가끔은 이기적이어도 된다.

나 스스로를 그리 세뇌시키면서 오늘은 연구 100% 몰입의 날로 만들어보려 한다.

아직 컨디션은 70% 회복 수준이다.


(오늘 대문 사진은 아주 오래전 것인데 어디 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기억이 난다만 이 사진은 영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앞에서 길을 안내하는 확실한 안내 역할을 담당하는 연구 대표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 골랐다. 글을 다 작성하고 휴대폰으로 점검해보니 어딘지 기억이 났다. 컨테이너 건물이 여러개 멋지게 구성되어 있는 핫플이다. 오늘 유달리 주변이 조용한것은 수능일이기 때문일까? 수능관련자 모두들 힘내시라. 오늘은 수험생 빼고 모두 이타적인 삶을 좀 살아주시라.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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