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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일방적인 이별

그러나 언젠가의 재회를 꿈꾼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남편은 항암일이라 여섯시반에 공복으로 집을 나섰고

(혈액 검사를 해야하니까)

혈액 검사 끝나고 먹으라고 통밀팡에 무당땅콩잼 바르고 치즈 하나 넣어 싸주었다만

항암을 하러 나서는 길은 항상 밝지는 못하다.

매번 비장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당연하다.


간단히 먹고

세탁기를 돌리고

군데군데 청소를 하고

연구보고서 초안 파일을 만들었다만

아직도 10시 셔틀버스 시간까지는 많이 남았다.

그렇다고 멍때리고 졸리는 설이 엉뎅이가 두드려주기는 싫다.

집을 나선다.

날이 별로 춥지않음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잠실역 1번 출구에서 야외로 길을 걸어본다.

대형백화점의 크리스마스마켓이 무엇인지 오늘에서야 보았고(유럽 크리스마스마켓보다는 사이즈가 영 작다.)

아직은 관리잘된 호텔 주변의 식물들도 보았고

7시대보다 걸음걸이에 여유가 묻어나는 사람들도 보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잠실역 출발 10시 셔틀버스 탑승은 마지막일수도 있겠다싶어

석촌호수를 천천이 한바퀴 돈다.

그 이른 새벽의 치열한 러너들은 다 출근을 했을테고

이제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과

자녀들을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낸 젊은 엄마들 무리만 보인다.

그리고 그 초입에서 나는 오늘의 태양을 사진 찍는데 성공했다.

저 사진 세 장을 찍고는 태양은 구름속으로 숨어버렸다.

달 사진보다도 더 귀한 태양 사진이라니

석촌호수가 나에게 준 작별 선물인가보다.


나만의 속도로 석촌호수와 작별을 고한다.

봄에는 벚꽃을 여름에는 시원함을 가을에는 단풍을

그리고 햇살에 출렁이며 반짝이는 윤슬을

아낌없이 무상으로 나에게 제공해주어 고맙다.

언젠가는 재회할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만

그때에도 변함없이 지금처럼 이쁜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고 기억해주면 좋겠다.

오늘 오전. 이렇게 또 내 마음속의 한 공간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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