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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구슬에 대한 단상

작은 것이 더 힘들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내 어린 시절에는 남녀의 놀이가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남자애들은 고무줄총 놀이, 구슬치기와 딱지치기 그리고 기타 공놀이

(지금과도 많이 유사하다. 지금은 고무줄총 놀이는 안전의 문제로 하면 안되지만)

여자애들은 고무줄놀이(고무줄을 가지고 높이를 조절해서 뛰어노는 거다. 노래에 맞추어서),

공기놀이와 소꿉놀이이다.

남녀가 같이 놀수 있는 놀이는 가위치기(사방치기라고도 했다.) 땅따먹기 정도였고

가끔 공기놀이도 함께 하곤 했으나

남자애들은

우리가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으면 그 고무줄을 끊거나

소꿉놀이를 하고 있으면 잘 차려놓은 밥상을

일부러 뒤집어 엎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는 곧장 도망가기 일쑤였는데

나와 친구들의 달리기 실력으로

그들을 잡아내기란 불가능했다.

그래도 가끔은 잡아서 응징도 해주었다만.

그런데 그때도 공놀이를 좋아하던 나는

소꿉장난보다 구슬치기에 더 관심이 많았었다.

참으로 여성스럽지 못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머니 불룩 구슬을 따서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이 멋지게 보이기만 했고

나도 끼워달라고 종종 떼를 쓰기도 했다.

구슬놀이는 아마도 공간 능력과 거리 그리고

힘과 운동의 원리와 에너지보존법칙 등을 고려한

종합 과학 시스템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땐 몰랐지만.


그때 가지고 놀던 구슬은 그나마 크기가 어느 정도 크다만

학교에 와서 과학시간에 그 정도 사이즈의 구슬로 모델링을 하는 원자나 분자모형 실험이 종종 있기는 했다.

제법 큰 사이즈였다.

정말 은단 사이즈로 작은 구슬을 한꺼번에 만난 것은

교사 1년차 수은 기압계를 학생들이 장난치다가 깨트렸을때이고

그 때의 그 당혹감은 이미 한번 브런치에 글을 쓴 적이 있다.

엄청 작은 사이즈의 구슬이 굴러굴러 가는데

도저히 따라가거나 멈추게 만들거나

치울 엄두조차 나지 않았었다.

작은 구슬은 그렇게 나에게 애틋하기도 하고 힘든 존재로 다가왔다.


어제 강의가 끝나고 회의가 5분 앞으로 다가온 시간에 나는 마음이 바빴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셔틀버스 탑승장으로 빠르게 이동해야 했으므로

일단 내 짐을 챙겼어야는데

마땅한 가방이 없어서 기존 실험 물품 가방을 비우고 그것을 가지고 가자 마음먹었었고

지난 주 금요일 충분히 후숙시킨 키위를 학교에 가져다 놓았는데

오늘 회의 시간에 까서 잘라서 먹기 좋게 놓아두고 싶었던 거다.

두 가지를 다 5분안에 처리해야하니 마음이 급했고

그러다 보니 손이 미숙하게 움직였고

결국 실험 물품 속에 남아있던 혈액형 팔찌 재료로 사용하고 남은 구슬을 바닥에 흘리게 되었다.

마음은 바쁜데 구슬들이 사방으로 굴러가니

마치 그 수은기압계가 깨진 그 날이 트라우마처럼 떠오르는데 아찔하기 짝이 없었다.

할 수 없다.

치울수 있는 만큼 치우고 나머지는 수요일로 미룬다.

주로 책상 아래로 들어간 것들이니 통행에 지장이 될만한 것들은 치웠으니 되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키위를 손질하

테이블에 올려두고는 회의에 참석했다.

그러나 학교에 나가지 않는 강의가 없는 화요일.

내 머릿속에서는 바닥을 돌아다니던 내가 못치운 구슬이 돌아다니는 듯 찜찜하기 짝이 없다.

마치 예전 구슬치기를 하고 내가 어렵게 딴 구슬을 친구가 빌려가서 주지 않은 그 때 그 느낌이기도 하다.

수요일에 출근해서 해야할 일 첫번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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