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지치지만 반짝하는 날도 있다.
교사이자 엄마였던 나는 방학이 다가오면 솔직히
좋기도 힘들기도 했다.
일찍 학교에 나가 이것저것 일을 처리하느라 힘들고 긴장했던 삶의 패턴에서
(아무리 내가 일벌레나 일이 취미라해도 방학때쯤 되면 체력이 고갈되기 마련이다. 진이 빠진다.)
새삼 아들 녀석에게 모든 기력이 집중되면서
애정 가득한 잔소리 폭탄을 날리게 되곤했다.
분명 나는 애정인데 아들 녀석은 단지 잔소리와 구박이 된다는 것이 아쉽고 분하기만 하다만.
그리고 그 패턴은 지금까지도 쭈욱 계속되는 중이다.
학교 급식에 질렸을 아들 녀석에게 이것저것 신기한(가끔은 성공적이고 자주 망하는) 요리를 시도해서 총평을 맡긴다.
맛있지? 맛있지에 대한 답을 계속 갈구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급식이나 학원 앞 간편식의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진 아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묘수는 없었다.
또 그 당시에는 지금 정도의 요리 역량이 구축되지 않았을 때이다.
따라서 노력을 다하느라 힘은 힘대로 드는데
결과는 나오지 않는 매일 매일 요리사 시험 보는 입장일 때가 많았다.
물론 각종 먹거리를 사느라 엥겔지수는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아들 녀석이 어렸을 때는 방학 기간에 무언가
문화적인 이벤트를 해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매주 과학관이나 전시관이나 궁이나 또 다른 무언가를 보러 시내로 나가는 이벤트나
아니면 교보문고에 가서 책이라도 보는 행사를 기획하고
그 경로를 짜고 근처 맛집을 찾느라 피곤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 검색이나 SNS 정보가 활발할때가 아니었다.
오로지 입소문으로만 행사를 기획하려니 퀄리티가 떨어질 때도 있었고
괜히 피곤하고 얻은 것은 없는 그런 나들이가 될 때도 있었다.
아들이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이브 날 사람으로 꽉찬 명동 나들이에 나섰다가
(왜 그런 무모한 용기를 냈었는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만)
아들 손을 놓칠까봐 사람에 밀려 넘어질까봐 바들바들 떨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아들 녀석은 그날 최초로 방송국 인터뷰를 한 재미있는 날로 기억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기획대로 모든 이벤트가 구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래도 가끔 낮잠을 푸지게 자고 각자의 방에서 나와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눈 내리는 창밖을 함께 내다보거나
그 당시 재밌었던 드라마를 함께 보거나
오랜만에 마음 맞는 이슈로 이야기 불꽃을 피던
아스라한 가족의 기억이 방학때 만들어지곤 했다.
학기 중에는 각자 바쁘고 아등바등대느라 절대로 이런 평온한 일상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엄마 입장에서 방학이란 힘들지만 그래도 가족이라는 끈끈함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지나고보니 그렇다.
물론 해가 중천에 떠오를때까지 늦잠을 자고
밥은 다차렸는데 도통 나오지를 않고
방에서 게임만 하루종일 하고 있는 뒷통수를 보면
어서 개학을 해야하는데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날들이 훨씬 많았다만
그 조차도 다시 할 수 없는 추억이 되어버렸다.
방학이 다가온다고 마음이 무거워진 이 땅의 어머님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힘들 그날들도 절대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