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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글 돌아보기 첫 번째

과거는 현재의 열쇠일까?

by 태생적 오지라퍼

어려서부터 책읽기가 취미였었고

(딱히 다른 취미가 있기 힘든 시대였다만)

글쓰기는 특별한 계기는 없었는데

그냥 이야기하는 것처럼 글을 쓰면 되는 것 아닌가하는

막연한 생각이 언제부터인지 있었던 것 같다.

어찌보면 글쓰기에 대한 겁이 선천적으로 없었던 듯 하다.

다른 일은 지독한 겁보에 안전빵 주의자인데 말이다.

수다를 좋아하듯이 글을 써내려가는 것이었이 일상이었다.

그래서 학창시절 백일장은 내게는 설레는 행사일이었고

사생대회날은 부담스러운 미술 실기 수행평가일이었으며(미술 실기는 젬병이었다.)

체육대회날은 마냥 신나기만 했고(달리기나 공놀이는 좋아라했으니까)

합창대회날은 잘해야는데 하는 부담감이 강한 날이었다.

(무언가 특별 역할을 맡은 날이었다. 지휘가 되었던 반주가 되었던.)


방학을 맞아 나의 옛 글을 한번 다시 읽어보고 돌아보고

지금이라면 어떻게 썼을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를 확인해보는

그런 시리즈를 엮어보고 싶었다.

왜 지금인지는 모르겠다만.

나의 그 시절의 감성이나 섣불렀던 취기나 마음을

다시 읽어보는 것이

앞으로의 나에게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아서이다.

지질학자들은 <과거는 현재의 열쇠>라고 이야기한다.

내 삶을 돌아보는 것을 지질학과 연결시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만

여하튼 겨울 방학맞이 오늘 아침부터 그 시리즈를 시작해본다.

어제의 <불꽃야구>에서 기인한 꿀꿀함은

당분간 계속될테지만 그 또한 지나가고 이겨내리라.


먼저 나의 공식적인 자체 출판 첫 책인 <스물 한해의 이야기> 중에서 골라보았다.

저 표지는 친구 작품이다.

어느 카페에서 한 시간 정도 공들여서 나를 그려준 것이다.

아마도 자서전적인 글들이라는 뜻을 담은 제목을 정했고 그래서 어울리는 표지를 만들었다만

그 친구가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저렇게 보인다는 것에 많이 놀랐었지만 안 놀란척 했다.

그림그리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이 아닌지를

저날 한 시간 정도의 모델을 하면서 알게 되었었다.

한땀 한땀 자필로 글을 쓰고 표지를 붙여서 아마도

학교 앞 복사집에서 50권 정도를 만들었지 싶다.

라디오에 방송된 작품도 있고(물론 상품에 혹해서 적어보낸 것이다.)

고등학교 개교기념 교지에 실렸던 것도 있고

어버이날에 학교에서 쓰라해서 썼던 것도 있고

교내 백일장 장원 작품도 있다.(와. 나도 장원도 했었구나.)

그 중 하나를 다시 옮겨본다.

지금 나와는 전혀 다른 나의 삶이 묻어나는 글이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다.

그중에 하나를 골랐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고 2때의 내가 씀.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작디작은 나의 방에서

그날의 신문을 펴들고 구석구석 샅샅이 뒤지기를 좋아하고

버스에서 가볍게 깡총 뛰어내리며 <수고하세요> 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 막내 동생이 정성들여 쓴 위문편지 훔쳐보기를 즐겨하고

어느 기분 좋은 날 나의 모든 빨래를 깨끗이 빨고 그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 보기를 좋아한다.

화장실. 내가 지독하게도 예뻐보이는 작은 거울을 좋아하며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지는 날. 우연히도 우산을 갖고 가게한 나의 직감을 좋아한다.

또 나는 잘 따여진 친구 머리를 좋아하고

버스에서 최후의 한자리를 채우게 되는 행운에 감사하며

커다란 가방을 들고 바삐 걷는 학생들의 반짝거리는

그 눈을 사랑한다.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담겨있는 일기장 탐독을

조금이라도 올라간 성적표를 진정으로 좋아한다.

수업 끝종과 동시에 나가시는 선생님을 한없이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내가 싫어하는 것보다

두 서너가지쯤 많다는

작고도 커다란 사실을 최고로 좋아한다.


(지금 읽어봐도 좋아하는 것들이 비슷하기는 하다.

사람 안바뀌나보다.

손빨래는 안한지 오래되었고

그 좋아하던 신문은 핸드폰으로 제목만 훑고 지나간다는 점은 분명 다르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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