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하루라는 시간의 총량은 일정하다.
이 세상에 몇 안되게 공평한 것 중 한 가지가 시간의 흐름이다.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지나간다.
세월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없고(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그것은 안될 거다.)
시간을 느리게 흐르게 만들 수도 없다만(시계가 고장 나지 않고는 그럴 리가 없다.)
가끔씩 다른 속도의 시간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 시간 순삭이라거나 아니면 1분이 마냥 길었다거나 하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어제가 각자 다른 속도로 지나가는 시간을 느꼈던 저녁이었다.
고마운 후배들과의 저녁 약속이 용산역에서 있었고
이제는 조금은 익숙해진 조치원역까지 버스를 탔고
가보니 하나 앞 기차도 가능할 듯 하여
20여분 시간을 세이브할 겸 기차표를 변경했고
ITX-마음과 ITX-새마을의 미묘한 차이까지는
아직 파악을 하지 못했다만
이제 기차 탑승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두려움을 떨쳐냈다.
경력직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집 앞 헤어숍 원장님은 젊은 분은 아니셔서
나의 비루한 머리카락의 상태와 문제점을 잘 알고 대처해주셨으나
아직 한 곳쯤은 더 가서 비교분석하고
단골집을 결정하면 될 것 같았다.
섣부르게 판단하지는 않으려한다.
내 헤어 스타일은 소중하니까.
그런데 편안한 기차에서 시간이 느리게 느리게 흐른다.
실내 디지털 시계가 고장난 줄 알았을 정도이다.
연구 자료도 살펴보고 SNS에 좋아요도 눌러주고
남아서 포장해왔던 샌드위치 1/5쪽도 먹고
창밖도 열심히 살펴보았으나
천안, 평택, 수원, 영등포, 용산까지의 길이 멀고도 멀었다.
역설적으로는 그만큼 서울에 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용산역은 4년간 바로 옆에서 내가 거주했던 곳이다.
그곳에서 밥을 먹고 지하 대형 마트에서 장을 봤던 슬리퍼 끌고 다니던 익숙한 곳이다만
어제 약속시간 10분전에 기차에서 내려서 꼭 해야할 일이 하나 있었다.
약국에 들리는 일이다.
조치원 집 주위에 약국이 없고 조치원역 앞 약국이 너무 비싸더라.
기억에 내가 다녔던 대형 마트 옆에 약국이 있었고
그 약사님 얼굴까지 선명하게 기억이 났으니
그곳을 들려보려했던 것이다.
물론 용산역에도 약국이 있었으나
그곳은 사이즈가 작고 사람이 항상 줄서있는 곳이었다.
아직은 신통하게도 기억력이 살아있었다.
약국의 위치도 약사님의 얼굴도 그대로였다.
헤어 스타일은 더 젊어졌더라.
영포티 스타일이셨다.
그리고는 용산역 맛집으로 유명한 곳에서의 저녁을 먹으면서
(유명한 곳이라고 다 맛난 것은 아니다. 내 입 맛에는 조금 느끼했다. 김치를 사이드 메뉴로 주었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학교와 과학교육과 연관된 여러 주제의 수다를 떨었고
나는 아니었지만 후배들은 꼭 승진하라고 당부를 했고
8시발 기차 시간에 맞추어 넓고 사람 많은 용산역에서 탑승에 성공했다.
올 때처럼 지루한 기차에서의 시간을 어찌 보낼까를 약간은 걱정하면서 말이다.
잠을 청해볼까도 했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월요일 8시 내 최애 루틴이었던
그러나 이제 당분간은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낙담했던
<불꽃야구> 영상이 올라온 것이다.
제작진들은 마음이 마음이 아닐텐데
그것을 극한의 작업으로 잊어버리고 있는 듯 하다.
슬프고 안스럽고 한편 감동적이다.
혹시하고 이어폰을 챙겨온 나 자신을 칭찬하며
재빨리 영상을 보면서 실시간 댓글을 보고
단톡도 읽고 관련 갤러리의 동향도 서치하느라
눈과 손이 빠르게 빠르게 움직인다.
그러다보니 조치원에 순식간에 도착한다.
과장을 많이 보태면 거의 빛이 속도로 지나갔다.
시간이란 것이 매우 객관적인 것임에 틀림없다만
시간의 속도를 느끼는 것은 이렇게나 매우 매우 주관적이다.
오늘 아침 일어났더니 기차 파업이 유보되었다는 알림이 떠서 다행이다 싶었고
어제 봤던 <불꽃야구> 영상이 내려갈까 싶어 다시 돌려보고 있고
어제 기차에서 봤던 한강의 아름다움을
급하고 서툴게 찍은 나의 사진으로 다시 보고 있다.
오늘은 조금 시간이 천천이 지나가는 날일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좋겠다.
느리게 가나 빠르게 가나 하루라는 시간의 총량은 일정하다.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