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부
나는 초보 식집사이자 몇 년전부터 도시농부반이라는 동아리 지도교사이다.
환경교육에서 출발하여 생태전환교육이나 지속가능발전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지만
무조건적인 개발 반대의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개발을 통한 편리함이나 재정적인 이로움만 보지는 말고
개발을 하지 않았을 때의 평온함과 함께 재정적인 불리함과 생활의 불편함도 잘 따져보자는 중간론자이다.
회색주의자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겠다.
현재 상태가 그렇다는 것이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다.
사람은 안변하기도 하고 쉽게 변하기도 한다.
현재 상태에서 내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식물 생태계이다.
꽃이 눈에 들어오고 꽃 사진을 카톡 대문사진으로 놓는 일은
나이 든 사람이라는 것이 확실한 증거이다.
젊은 사람 눈에는 꽃이 보일리 없다. 사람만 보인다. 나도 그랬었다.
핸드폰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세밀화 수준의 식물 사진 촬영이 가능해지고 식물 수업에서도 자주 사용한다.
이전에는 핸드폰용 확대경을 사용했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성능이 좋아졌다.
세밀하게 식물 사진을 찍어보면
수술이나 암술의 개수도 보이고, 꽃봉오리의 색 변화도 보이고, 민들레 솜털 사이 사이도 보인다.
이렇게 식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일에서 생태전환교육이 시작될거라 생각한다.
2022 교육과정에서는 전 교과에서 생태전환교육을 포함하여야만 한다.
금요일 모처럼 여유가 생겨서 도시농부 동아리에서 심어둔 쌈채소들을 일부 수확하러 나섰다.
빗물 저금통을 활용해서 주말 대비 물도 줄 겸해서 말이다.
어느새 튼실해진 쌈채소들을 조금씩 솎아주고 나니 30여명 전체 선생님의 점심 야채가 될 정도였다.(물론 1인당 3~4개 정도였지만)
잘 씻어서 급식판 한쪽에 올려두었더니 작고 연해서 간단하게 쌈으로 먹기에는 최고라고 다들 엄지척 해주었다.
도시농부 동아리 학생들에게도 언제든지 따서 가져가라고 일러두었다.
농사 도구 모아논 곳에 수확용 가위와 비닐 봉지도 놓아두었다.
스스로 선택해서 도시농부반에 들어오고 모종을 심고 물을 주고 가꾸는 재미를 10대에 느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몇 개의 소중한 딸기와 무럭 무럭 크고 있는 방을 토마도와 샐러리가 기특할 뿐이다.
이번 연휴에는 비가 와서 텃밭 작물 걱정을 안해도 되니 마음이 편하다.
쨍쨍한 날씨였다면 내일쯤은 물 주러 출근을 했어야 하는데 말이다.
처음에는 이쁜 꽃이 보이고 그러다가 자잘한 야생화들도 보이고 큰 나무들도 보이는 것이 아마도 교육이론에서 말하는 개념의 확장일 것이다.
생태전환교육은 이렇게 체험에서 시작해야지 이론이나 강요가 되어서는 효과적이지 않다.
식물을 심는 것에도 그 해마다 유행이 존재한다. 올해는 어디를 가도 대형 튜울립이 대세였다.
원래 이쁜 튜울립이지만 크기가 너무 커지니 나는 오히려 신비감이 줄어든 것 같기도 했다.
그나저나 서울의 가로수들이 언제 하얀 이팝나무와 조팝나무 천지가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전에는 물푸레나무로 노래가사에 나오기는 했으나 이렇게 많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는데
최근에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나무가 되었다.
아마도 키우기 쉽고 유지관리가 쉽고 우리나라 기후에 알맞고 이뻐서 새로 가로수를 심을때 선택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꽃가루가 날리기 힘든 구조라서 선택되었을 수도 있겠다.
가로수를 선정하는 일은 참으로 신중해야 할 것 같다.
그 옛날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선정하신 그 분들께서는 왜 그러셨던것일까?
가을 은행잎이 노랗고 이쁘긴 하다만 은행열매의 냄새와 걸어다닐때의 불편함은 왜 생각을 못한 것일까?
전문가와 논의했다면 금방 답이 나왔을텐데 말이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해당 전문가가 꼭 필요한 이유이다.